2020년 3월 28일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시하는 개정 의료법이 시행된다. 전문간호사제도는 1973년부터 부족한 의사인력의 보완재로 사용되고 있는 법에 명시된 전문인력이다. 전문간호사들은 주로 환자에 대한 전문간호와 특성화된 교육 및 상담을 수행한다. 의사 감독 하에 수술지원 업무, 환자 처방 관련 업무 등을 수행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처럼 전문간호사 업무가 의사 및 일반 간호사 업무 중간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제도 초기 전문간호사는 의료현장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보완재 역할이 주를 이뤘다. 반면 현재 의료계에서는 전문간호사 제도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편집자주]
2020년 3월 28일 시행 예정인 전문간호사제도 개정 의료법은 2018년 3월 27일 공포됐다.
이전 전문간호사법에는 자격 관련 규정은 있었지만 명확한 업무범위나 자격요건에 대한 세부사항이 없었다. 개정 의료법에서는 ‘제 78조 전문간호사’ 조항에 전문간호사 업무범위 규정 관련 근거를 명시했다.
기존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에 있던 요건은 상위법인 의료법으로 옮겨 명시했다. 현재 전문간호사 분야는 13개(보건, 마취, 정신, 가정, 감염관리, 산업, 응급, 노인, 중환자, 호스피스, 종양, 임상, 아동)다.
일반 간호사는 전문간호사가 되기 위해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한 교육기관(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야 한다.
지난 2018년 기준 전국 38개 교육기관에서 분야별 전문간호사 교육과정 88개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기관에는 해당 분야에서 3년 이내에 실무경력이 있는 간호사가 입학할 수 있으며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에는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근거 법령이 마련된 것은 1973년이 처음이지만, 전문간호사 태동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료인력이 부족했던 시절, 의료기관들은 자체적으로 간호인력 가운데 일부를 전문인력으로 양성해 운영했고, 기존 간호사 면허 소지자들과 구분하기 위해 이들을 전문간호사로 칭하던 것이 전문간호사의 시초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간호계 차원에서 전문간호사제도 필요성이 제기됐고, 1973년 당시 의료법에 보건·마취·정신 등 3개 분야에 대해 ‘분야별 간호사’가 도입되면서 전문간호사 제도에 관한 법률적 근거가 마련됐다.
분야별 간호사는 2000년 ‘전문간호사’로 변경됐고, 자격인정 범위 또한 기존 보건·마취·정신 3개 분야에서 가정전문간호사가 추가돼 4개 분야로 확대됐다.
2003년에는 응급·산업·노인·호스피스·중환자·감염관리 등 6개 분야가 추가됐고, 2006년 아동·임상·종양 등 3개 분야가 더해지면서 현재 총 13개 분야에서 전문간호사 자격이 인정되고 있다.
의사 업무와 간호사 업무 중간, 불법 or 합법
전문간호사들은 주로 환자에 대한 전문간호와 특성화된 교육 및 상담을 수행한다. 의사 감독 하에 수술지원 업무, 환자 처방 관련 업무 등을 수행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처럼 전문간호사 업무가 의사 및 간호사 업무의 중간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대법원의 2010년 판결은 전문간호사 활동을 결정적으로 위축시켰다.
당시 대법원은 ‘마취 전문간호사는 의사 지시에 따라 마취행위를 할 수 있다’는 기존 복지부 유권해석과 달리 의사 지시에 따라 시행한 마취전문간호사의 척수마취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전문간호사라 해도 마취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간호사의 자격을 인정받은 것 뿐이어서, 비록 의사의 지시가 있었다더라도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직접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간호사와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2014년 프로포폴에 의한 수면마취에 대해서도 의사가 현장에 참여해 구체적인 지시·감독을 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며, 이를 위반해 간호사 등에게 프로포폴 주사를 위임할 경우 무면허 의료행위가 된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판결들은 전문간호사 업무를 위축시켰으나 이번 전문간호사 관련 의료법 개정안에 따라 향후 법원의 판단은 변화할 가능성이 생겼다.
하지만 내년 3월 전문간호사 업무를 명시하는 의료법 개정안시행이 확정된 상황에서, 의사와 간호사는 전문간호사 역할에 대한 의견 합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간호사 “의료서비스 질 높인다” vs 의사 “의사 업무범위 침탈 막을 것”
간호계는 이번 전문간호사제도 개정 의료법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적극 피력하는 모양새다.
그간 전문간호사 업무 범위에 대한 별도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일반간호사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전문 업무만 별도 수행할 수 있는지 혼란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같은 입법 미비로 인해 마취전문간호사의 경우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으로 인정됐던 업무 범위가 2010년 대법원 판결로 사실상 축소돼 활동에 제약을 받아 왔다는 것이 대한간호협회 주장이다.
대한간호협회는 “산하단체인 마취간호사회와 함께 의료법에 전문 간호사 업무 범위에 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될 수 있도록 지난 19대 국회 때부터 노력해왔으며 이번 의료법 개정안 통과로 결실을 보게 된 것”이라고 평했다.
전문간호사 제도 활성화를 통해 국민들이 얻는 이점에 대해서는 “현재 일반 간호사가 주로 의료행위를 하는 군·읍·면 등 지방 의료취약지에 전문간호사가 배치되면 보다 다양하고 질높은 의료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더 나아가 질병예방과 치료기관 단축으로 의료비 절감이 가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보다 전문적인 환자 관리가 가능해진다는 점도 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대형병원은 간호사 근무 진료과를 주기적으로 옮겨 배정해왔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약물이나 환자들의 상태가 과마다 명확히 다르기 때문에, 전문간호사의 경우 자신의 특화 분야에서 계속 근무하면 의료진 간 의사소통이나 환자 관리를 더 전문적으로 할 수 있을 것”고 전했다.
간호협회는 전문간호사 업무범위 법제화를 앞두고 지난 10월 23일 국회에서 ‘마취전문간호사 역할 정립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후 대한의사협회는 “의사 면허범위를 침범하는 불법마취행위 적발시 고소·고발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며 성명서를 통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의사협회는 “지난 국회에서 해당 의료법 개정 시 의사면허 행위를 침범하지 않고 간호업무에 한해 범위를 정하도록 법적 근거를 명확히 마련한바 있다. 전문간호사는 보건복지부장관의 자격인정을 받은 해당 분야에서 간호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 3월 시행일을 앞두고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에 대한 보건복지부령 등 세부 논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 논의에 앞서 불법마취행위를 인정해달라며 국회 토론회 등을 개최하는 등 이슈 몰이를 하는 것은 우리나라 면허체계를 무시한 몰상식한 행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사협회는 현재 ‘전문간호사 논의를 위한 간호제도특별위원회’를 구성·운영 중에 있다. “마취전문간호사와 같이 전문간호사 업무범위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견제하고 전문간호사의 의사 진료권 침해 및 전문간호사 제도가 의료기관의 규제로 악용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것이 의협의 목적이다.
의사협회는 “특위 논의를 통해 올바른 전문간호사 제도 마련 및 전문간호사 역할 범위에 대해 의료계 안을 마련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정부에 건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재 모든 의료기관에서 실시하는 마취전문간호사 행위와 관련, 대법원 판례에 따른 불법 마취행위가 아직도 시행되고 있다면 이를 확인하겠다”며 “의사 면허범위를 침해하는 마취전문간호사들의 불법마취행위를 법적으로 고소·고발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 잘못된 관행에 엄중히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