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이식’이라 쓰고 ‘기다림’으로 읽는다
촌각 다투는 절박한 심정···불법 유혹 흔들리는 환자·보호자
2016.04.19 12:10 댓글쓰기

[기획 5]기다림의 끝은 어디일까. 사람들은 달콤한 기다림의 끝을 기대하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크다. 특히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심각한 장기이식 분야는 더더욱 그러하다. 자원이 한정되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다림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장기이식 대기자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

장기이식은 의료진과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자가 신체기능을 유지하는게 치료의 최선이지만 더 이상 불가능할 때 타인의 장기로나마 생명을 유지시켜야 한다.

하지만 장기이식은 험로(險路) 그 자체다. 당장 장기를 확보하는 과정부터 어렵다. 대량 생산된 공산품이 아니기에 신체 일부를 누군가에게 제공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어렵게 장기를 확보했다고 해도 끝나지 않는다. 장기이식은 여전히 고난도 의술 분야에 속한다.

실제 높은 수준의 의학적 기반이 요구되는 만큼 장기이식을 수행하는 기관은 전국적으로 70여곳에 불과하다.

더구나 대부분의 기관이 신장과 간장만을 다루고 있어 심장이나 폐, 췌장 등을 이식하는 곳은 손에 꼽는다.
심지어 소장은 서울아산병원 등 4곳이 전부다. 장기이식을 받고 싶어도 정작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얘기다.

그나마 소수라도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다면 행운이다. 장기가 부족해 이식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질병관리본부 산하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 이하 코노스) 보고에 따르면 지난 2000년 5343명이던 대기자는 2015년까지 5배가량 늘어나 2만7112명에 육박한다.

더 큰 문제는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이들의 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를 기증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식이 필요한 환자의 증가폭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코노스 통계대로라면 한 해 장기이식을 받는 이들은 전체 대기자의 15%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략 8% 정도는 이식을 받기 이전에 사망하고, 기다림에 지쳐 수술을 포기한다.

그럼에도 해마다 2000~3000명씩 대기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당연하지만 악순환이 거듭될수록 장기이식만이 살길인 이들의 대기시간은 계속 길어진다.

2015년 기준 이식대기자 평균 대기시간은 1493일이다. 그나마 장기이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친족기증을 포함했을 때 얘기다. 만약 친족 중 기증자를 찾지 못한 경우 대기시간은 평균 1년 이상 길어진다.

이와 관련, 코노스 관계자는 “최근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 해마다 기증자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순수 기증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이식 대기자들 ‘평균 4년’

이처럼 장기이식을 기다려야만 하는 이들은 일상이 고통이다. 평균 4년이라는 시간을 적합한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임시방편으로 생명을 유지하며 애를 태워야 한다.


# 투석을 받던 중 연락을 받고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3순위이긴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사를 받았습니다. 음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선 순번의 분들도 모두 음성판정을 받았습니다. 결국 1순위이신 아주머니가 이식을 받을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저는 3순위라 이번엔 아마 힘들겠죠? 어머니는 다음을 기약하자며 눈물을 감추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기증자가 70세 할아버지여서 20대인 제겐 조금 안 맞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듭니다.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오겠죠? 그렇게 믿고 기다려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장기이식 환자들의 온라인커뮤니티 사이트에 게재된 20대 학생의 경험담이다. 그는 신장이식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기대와 좌절, 씁쓸함과 두려움을 한 순간에 느껴야했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은 앞으로 수차례 반복되거나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때문인지 사례 속 주인공과 달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불법의 유혹에 흔들리는 이들도 있었다. 일명 원정 이식, 또는 불법 장기매매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 중국에서 장기이식 정보 아시는 분 연락 부탁드립니다. 사람이 살아야 하는 일이다 보니 불법이고 뭐고 가릴게 아닌 듯합니다. 부작용에 대해 우려하는 분도 있는데 중국에서 장기이식 잘 받고 살아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 안하면 한 두 달 내로 죽을 상황인데 한국에서는 기증자가 없습니다. 
 

지난해 중국 유학생과 여행자를 위해 개설된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이 이야기는 죽음을 목전에 둔 지인을 살리려 중국으로 장기이식 원정을 떠나려는 이의 비뚤어진 절박함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처럼 유사한 유혹에 직면하는 이들이 매년 2000여명씩 생겨난다.

대한이식학회 조원현 회장은 “기증자가 늘어도 대기자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기다리다 사망하는 이들이 대기자의 8%에 달한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들 중 일부가 ‘장기거래’라는 불법에 눈을 돌려 자신의 생명을 위해 타인의 존엄을 짓밟는 일을 벌이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에는 10대 고아 3명의 장기를 노리고 인신매매를 공모했던 장기매매조직 12명을 포함해 장기매매 대상자 등 3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주변에서 실종신고를 하지 못할 대상자를 물색, A(18)군과 그 동생, B(18)군 총 3명을 고액 마약배달로 속여 인신매매를 계획했던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심지어 지난해 12월에는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려 거짓으로 입양절차를 거친 후 가족기증 형태로 장기매매를 시도한 이들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중국의 인신매매조직에 의한 장기밀매와 납치, 감금, 불법 장기적출 등에 대한 보도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온·오프라인 불법장기매매 모니터링을 총괄하고 있는 코노스 관계자는 “해마다 수 천 건의 장기매매 의심 광고나 온라인 게시물 등이 확인돼 수사의뢰가 이뤄진다”고 전했다.
 

기증자 확보, 묘안은 없나

이런 상황에서 코노스와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뇌사자 장기기증이 500명을 넘어섰다며 자축했다. 2001년 52명에서 15년 새 10배나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기증된 장기로만 따져도 2001년 212개에서 2015년 1961개로 9배가 늘었다. 생존자들의 장기기증을 포함하면 지난해에만 4063건의 장기이식이 이뤄졌다.

이를 두고 코노스 관계자는 “국민들의 장기이식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며 “지속적인 홍보와 인식개선 노력의 결과”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기증을 권하고 이식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넘어야할 벽이 높다.
기증 희망자로 등록을 했더라도 기증 시기가 도래했을 때 돌연 취소를 하거나 친인척 또는 직계가족의 반대로 기증이 무산되는 경우도 적잖다.

게다가 의료진의 인식부족으로 인한 기증자 확보나 뇌사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는 “(주치의의) 환자에 대한 애착이나 장기기증 권유에 대한 꺼림이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뇌사판정 전(前) 예비뇌사자 정보가 제대로 취합되지 않거나 뇌사자의 장기관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 관계자도 “병원별 기증체계 미흡, 의료진 및 시민 의식 부족 등이 기증취소 현상을 유발하는 이유”라고 꼽았다. 여기에 기증자에 대한 예우정책에서 생명윤리와 국민요구 상충 등도 난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인구 100만명당 뇌사장기기증자수(pmp)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9.7명인데 반해 스페인은 35.1명에 달한다”면서 “국민의식과 정책지원이 부족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장례비 등 예우 차원에서 지원되는 비용의 경우 양면성을 갖고 있다. 순수한 기증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세계이식학회 등에서는 개선을 요구하고 있어 점진적으로 정책을 변화시켜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 개선과 기증자의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는 예우정책 외에는 대기자들의 하염없는 기다림을 줄일 묘안이 별달리 없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도 장기이식을 희망하는 이들은 지금도 적합한 장기를 찾았다는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불법에 대한 유혹과 질환으로 오는 육체적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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