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사망사건 이후로 국내 필수의료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이 예고되는 가운데 병원계가 정부에 다소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언 발에 오줌 눗는 '동족방뇨(凍足放尿)'식 접근이 아닌 본질적인 문제부터 해결해 보자는 취지로, 그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여러 의제들이 제시됐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다양한 병원계 각 직역과 직능단체들이 기탄없이 제출한 의견인 만큼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중론이다.
대한병원협회가 최근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필수의료 종합대책 수립 관련 제안서에는 수가를 포함 인력, 시스템 등 다양한 부분에서 병원들의 요구사항이 담겨 있다.
병협은 작금의 필수의료 문제는 의료기관 간 자원 중복 투자와 무한경쟁을 유도해 온 각종 제도에 기인한 결과라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용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무래도 여러 제안 사항 중 수가와 관련한 부분이 가장 눈길을 끈다.
병원계는 "필수의료 분야의 야간 및 휴일 검사, 수술, 그리고 고난도 수술에 대한 가산 비율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야간 및 휴일에 이뤄지는 처치 및 수술에 대해 50% 수가 가산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를 최대 150%까지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휴일, 시간 외, 야간으로 세분화 해 각각 가산을 적용하는 일본과 같이 법정근로시간 외에 시행되는 수술행위에 대해서는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필수의료 개선의 단초가 된 뇌졸중 환자 치료시 응급 협진수가 신설과 응급 동맥 내 혈전제거술, 응급 스텐트 삽입술 수가 재산정 등을 요구했다.
또한 필수의료 인력에 대한 대기수당 등 시스템 유지에 필요한 인건비 등 고정비용에 대해 정부가 직접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로는 필수의료 강화가 불가하다는 진단도 내렸다. 특수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수가를 적용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다.
가령 코로나19 확진자가 출혈이 의심돼 내시경 검사를 시행할 경우 27만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하지만 일반 수가와 동일한 10만원을 적용하는 방식은 문제라는 얘기다.
병원계는 필수의료 활성화를 위한 재원의 다양화도 제언했다. 건강보험 재정만으로는 필수의료 지원에 한계가 분명한 만큼 별도의 기금을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담뱃세 등을 활용해 필수의료 확충 기금을 마련하고 건강보험과 별도로 필수의료 인프라 개선에 아낌없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종병 필수 개설 진료과목서 제외" 요청
특히 이목을 끄는 제안 중 하나는 종합병원 필수 개설 진료과목 조정이다.
현재 300병상 이하 종합병원은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중 3개 진료과목, 영상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와 진단검사의학과 또는 병리과를 포함한 7개 이상 과목을 개설해야 한다.
하지만 병원계는 "이중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를 삭제해 실제 필수의료 현장에 의료인력이 원활하게 배치될 수 있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병원계 한 인사는 “보건복지부에 전달한 건의문은 각 직능, 직역 의견을 두루 취합한 종합 의견”이라면서도 “병원들이 너무도 힘들다 보닌 푸념과 바람(희망) 수준으로 이해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