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 간호법을 반대하는 목소리에서 공통적으로 듣는 주장은 ‘직역 간 갈등’과 ‘보건의료체계 혼란’이다. 과연 간호법의 어떤 내용이 이 같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일까.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문석균 연구조정실장에 따르면, 간호법에는 ▲법률 간 체계적 정합성 부족 및 보건의료정책 근간 붕괴 ▲간호사 업무범위 확대 따른 직역 갈등 증폭 ▲분절적 의료행위로 인한 국민건강 위해(危害) ▲간호사 단독 의료기관 개설 시도 등의 우려가 존재한다.
법률 간 정합성 차원에서는 간호법안이 담고 있는 대부분의 조항들이 현행 의료법 및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서 차용한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의료인 결격사유, 국가시험, 업무거부금지, 전자의무기록, 정보누설 금지, 취업신고, 중앙회 설립 등 다수 규정은 의료인에게 공통 적용되는 것으로 동일한 내용을 각각의 법률에 중복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법률 낭비라는 지적이다.
문석균 실장은 “간호법안에 따라 설치해야 할 위원회(간호정책심의위원회, 간호인력지원센터) 역시 기존 위원회와 역할이 중복됨에도 불구하고 별도 설치될 경우 사회적 비용만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문 실장은 “의료에 관한 법률은 ‘국민건강 보호’라는 목적과 가치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특히 보건의료인력 업무범위, 지도·감독 체계를 변경코자 할 때는 그것이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철저한 비교분석 및 실증적 연구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배타적·독립적 간호사 업무영역 구축 시도는, 곧 의사와 간호사 분절적 의료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환자 치료를 위해 상호 협력해야 할 의사와 간호사 협력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의사로부터 분리된 의료서비스를 조장할 수 있다.
문 실장은 “의료행위 중에는 간호사 의료행위를 의사 의료행위와 분리해 시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수술 또는 시술 후 드레싱 고정, 보호장구 부착 보조 등이 그 예”라고 설명했다.
이어 “간호사 업무범위를 배타적·독립적으로 허용하게 될 경우 환자 치료상 또는 편의상 의사 행위 이후 간호사 행위를 의사가 직접 수행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의료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서 결국 이로 인한 피해는 국민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미국 너싱홈처럼 독립 의료행위 가능성”
문 실장은 “과거 간호법 제정 및 의료법 전부개정 논의 때 간호사 업무범위 확대 시도 뿐 아니라 간호사 단독 의료기관 개설을 위한 시도가 이뤄졌지만 사회적 논란만을 초래하고 폐기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간호단독법이 제정될 경우 추후 미국 ‘너싱홈(Nursing homes)’과 같은 간호 의료기관 개설을 통한 독립적 의료행위 시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간호사 외 기타 의료보조인력들도 각각 단독법을 제정하고, 독립적인 의료행위를 주장할 가능성이 높아 의료체계 붕괴와 더불어 의료 질(質) 저하로 인한 국민들에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간호계 입장은 다르다.
“간호법, 직역 업무만 명확화 할 뿐 타 직역 업무를 침탈하지 않습니다.” 이는 대한간호협회가 제작한 유튜브 동영상 제목이다.
영상에 등장한 법률사무소 선의 오지은 변호사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는 간호법상에 ‘진료에 필요한 업무’ 문구를 삭제하고 현행 의료법 간호사 업무를 그대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간협은 또한 “현재 간호법에서는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책무 등 조문을 신설한 것까지를 포함해 생각하면 간호법은 의료법을 근간으로 한 민생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간호법은 어디까지나 간호사 업무범위를 명확히 규정해서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간호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제도라는 것이다.
간협은 “그동안 반대 단체들은 타 직역 권익을 침해한다면서 간호사 단독의료행위 및 단독개원, 의사 고유업무 영역 침범, 간호조무사 일자리를 침범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 핵심 근거로 간호법에서 "간호사 업무가 의사 등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보조에서 의사 등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개정되는 내용과 함께 다른 법률 우선 적용 조문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복지위에서 의결된 간호법 대안은 반대단체 주장 사실 여부를 떠나 직역 간 갈등을 해소하고자, 간호법 업무를 현행 의료법 그대로 ‘의사 등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보조’로 규정했으며 ‘다른 법률 우선 적용’조문도 삭제됐다”고 반박했다.
또한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규정된 간호사 업무 중 어느 부분이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등의 면허 업무를 침탈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간협 "간호법, 다른 직역 업무 침탈과 배제 아닌 간호영역 역할 등 명백히 정립하는 제도"
간협은 “만약 간호사 업무 중 ‘진료보조’ 모호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이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이미 구체적 내용을 하위법령에 규정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간호법은 결코 다른 직역 업무를 침탈하거나 배제하려는 목적의 법률이 아니라 오히려 간호 직역 업무와 역할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정립하기 위한 법률”이라고 강조했다.
즉, 그간 의료계가 비판해 온 독소조항이 어느 정도 삭제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자격에 학력을 제한한 위헌적 요소, 단독 개원 가능성 등 다른 직역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간호법에 가려진 ‘의사면허취소법’ 직격탄
의료계를 비롯해 여론은 간호법에 쏠려 있지만 의사들에게 직접적인 파장이 예상되는 것은 ‘의사면허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면허 취소 사유를 ‘의료 관련 법령 위반’으로만 규정하고 있으나 해당 개정안은 이를 모든 법령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로 대폭 확대했다.
또한 면허를 재교부받은 의료인이 ‘면허 정지’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면 면허를 취소하고 5년 간 재교부를 금지토록 했다. ‘면허 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는 재교부가 영구적으로 금지된다.
다만 의료인이 의료행위 중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범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등 경우에는 면허를 취소하지 않도록 ‘단서 조항’을 달았다.
해당 법안이 지난 2021년 복지위를 통과했을 당시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전국 시도의사협회는 ‘전국의사 총파업’을 언급할 정도로 격렬히 반발했다.
의협은 “금고 이상 형에 대해 면허를 취소하고, 5년 동안 재교부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형평성에 반하는 과잉규제라는 것이다.
복지위 통과 이후 법사위는 전체회의에서 여야 간사가 해당 법안을 아예 논의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등 처리를 미뤄왔다.
위반 법령 종류를 묻지 않는 ‘타 직역과의 형평성 위배'와 '직업 선택 자유 침해’ 논리가 맞섰다.
금년 1월 개최됐던 법사위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은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결국 법사위는 면허취소법을 제2소위에 회부시켰다.
2월 9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간호법과 면허법 모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국회 본회의 직행 후 3월 23일 첫 회의에서 국회 본회의 부의가 결정됐다. 3월 30일 예정된 다음 본회의에서 상정 표결을 거쳐 최종 입법 여부 판가름난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의사들에게 직격탄은 간호법이 아닌 면허법”이라며 “간호법 뒤에 숨어 있던 의사면허법을 방어할 수 있는 비책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