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전문대학원 도입후 어떤 변화 있었나
2009.12.28 21:47 댓글쓰기
[기획 4]지난 1996년 2월, 교육과학기술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의학·법학·신학 등 전문직을 전문대학원 체제로 육성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 반세기동안 대한민국 의사 양성을 책임져온 의과대학 체제에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이란 존재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의전원은 이후 숱한 반대와 갈등에 부딪히며 오늘에 이르렀다. 대학자율로 의대와 의전원 중 선택하게 했던 시범실시 기간이 종료된 현재, 의전원 도입이 낳은 변화는 무엇이었는지 짚어본다.

나이 많은 의전원생

가장 눈에 띈 변화는 학생들의 연령대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학했던 의대생들과 달리, 의전원생들은 대학은 물론 군대와 결혼, 사회생활을 거쳐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의대생과 의전원생 사이에 10살 넘게 차이나는 경우도 다반사. 그러다보니 의전원 후배보다 의대 선배 나이가 더 어려, 양쪽 다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난감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연령과 학력, 전공, 사고 등이 다양한 학생들이 모인 만큼 의전원 안에서도 과거 의대체제에 비해 공동체 의식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교수들은 나이 많은 의전원생들이 어린 의대생들보다 머리가 굳어 학습능력이 좋지 않다고 우려했고, 의전원생들은 이에 질세라 학부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너무 비싼 등록금

의대와 의전원의 또 다른 차이점은 등록금이었다. 의전원의 등록금은 의대의 2배 수준으로 책정됐다.

사립대 의전원의 경우, 한 학기 등록금이 1000만원에 육박했다. 올해를 기준으로 이화여대 999만원, 아주대 995만원, 건국대 992만원, 차의과대 981만원 등으로 14개 사립대 의전원 평균 등록금은 932만원이었다. 이는 의대 1년치 등록금에 해당하는 액수다.

대학원 수준으로 높게 책정된 등록금은 대학 재정 안정에 기여한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비싼 등록금이지만 의대에 비해 더 나은 교육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의전원, 의대보다 유급률 상대적으로 낮아

의전원생 나이와 높은 등록금은 유급률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본지가 의전원을 도입한 몇몇 대학의 최근 3~7년간 유급률 변화 추이를 조사한 결과, 의대와 의전원의 유급률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의전원 유급률이 의대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전원 도입 이후에는 한번도 유급을 안 시킨 대학도 있었다.

A대학 교수는 “의전원 학생들에게 F를 줄 자신감은 없다”며 그 이유에 대해 “학생들이 등록금으로만 1년에 2000만원씩 내고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 어떻게 낙제를 줄 수 있겠나. 낙제를 줄 경우 그만큼 사회진출이 더 늦어지는데 학생들 인생에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여학생 비율 높아져 여의사 배출 기여

의전원은 여학생 비율을 높여, 여성 의사를 배출하는데도 기여했다. 2010학년도 의·치의학교육입문검사에 응시한 지원자의 성별은 여성이 54%로 남성(46%)보다 많았다.

의대 여학생 비율보다 높은 수치다. 지난해 의과대 졸업생 1417명 중 여학생은 28.3%인데 반해, 의전원은 졸업생 1671명 중 53.2%가 여학생이었다.

학부 졸업 후 서른 즈음에 입학하는 의전원은 남학생에 비해 결혼으로 인한 경제적, 군복무로 인한 시간적 부담이 덜한 여학생에게 더 넓은 진입통로가 되고 있다.

군의관·공중보건의 수급 차질 우려

이 같은 여학생 증가는 남녀평등을 실현한다는 면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나, 안타깝게도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의전원 남학생도 이미 학부시절 군대를 다녀온 경우가 많아, 군 의료인력 부족을 부추기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 전 폐지됐던 공중보건장학제도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제도는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은 지급하고 졸업 후 몇 년간 공공의료기관에서 근무토록 하는 방안이다.

이공계 우수인력, 의전원으로 빠져나가

국비를 들여 훈련시킨 이공계 우수 연구인력 상당수가 의학계열로 유출되는 현상도 의전원 도입으로 인한 변화 중 하나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카이스트(KAIST)로, 올해 졸업생 620명 중 약13%(82명)가 의전원에 진학했다. 2005년 31명이었던 카이스트 졸업생의 의전원 진학은 2006년 35명, 2007년 49명, 2008년 50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의전원 뿐만 아니라 치전원으로 진로를 변경한 학생까지 합하면 의·치전원제를 도입한 2005년부터 올해까지 카이스트 졸업생 2150명 중 약8%(166명)가 이공계에서 의학계로 전공을 바꿔 국가적 손실로 지적되고 있다.

생물학 인기, 의대 대입 합격선 상승

대학 입학 때부터 의전원을 염두에 두고 학과를 선택, 지원하는 학생들이 생기면서 의전원 입시에 유리한 생물학 계열학과가 인기를 끌고 있다.

2010학년도 의전원입문검사에 응시한 수험생 가운데 생물학 전공자가 38.2%로 가장 많았다.

이와 더불어, 의대 합격점수도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 상당수 의대가 의전원으로 전환해 남아있는 의대 입시의 문이 더욱 좁아지자 기존 의대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대학의 합격점수가 상향평준화되고 있는 것이다.

졸업후 대학 남을 거란 기대와 달리 개원가로…

당초 의·치전원제 도입 취지와 달리, 학생들의 졸업이 늦고 의사면허 취득연령이 높아 개원이나 진료업무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 짙게 나타나고 있다.

의전원의 경우,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했으나 전공의 과정을 마쳐야 하는 특성상 98%에 달하는 학생들이 인턴을 지원해 아직 이들의 정확한 진로를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반면, 치전원 졸업생은 대부분이 개원가로 직행했다. 이에 G대 치전원 졸업생 A씨는 “교수님들은 대학에 남을 줄 예상했던 저희가 오히려 안 남으니까 싫어하신다”면서 “당초 제도 도입 취지를 벗어난 게 사실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가정이 있는 기혼자여서 경제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치전원 입시 전문 사교육 과열

이외에도 생물·생명공학 등 관련학과가 의전원 준비코스로 전락하고, 대학 입학 후에도 학생들이 전공 공부보다 의전원 입시를 위한 입문검사 시험 준비에만 집중하는 등의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 의·치전원 입시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 등 사교육이 들끓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입학해 배출되는 의사들에 대한 자질 논란도 일었고, “의사국가고시만 잘 보면 된다”는 의견과 ‘의전원이 국가고시 학원처럼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맞서기도 했다. 다행히 의전원 첫 졸업생들은 의사 국가고시 전원 합격이란 쾌거를 올려 이러한 우려를 잠재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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