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료기관, 정신요양시설, 정신재활시설 등 정신건강증진시설 입원‧입소 시 정신질환자의 의견을 더 반영코자 추진 예정인 '절차조력인제도'에 대해 의료계가 강하게 반대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발의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한 이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개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신질환자 등이 정신건강증진시설에 입‧퇴원할 때 이들의 의사가 충실히 전달, 반영될 수 있도록 절차조력인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협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우선, 이미 절차조력인 역할을 의료인과 진료보조인력이 수행하고 있으며, 절차조력인 지위가 모호해 효과성이 없다고 봤다.
의협 측은 "정신질환자 입원 및 퇴원이 해당 전문의의 의학적 판단에 의해 이뤄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절차조력자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결정될 우려가 높다"며 "심지어 이미 의료인과 진료보조인력이 이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절차조력인 지위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은 만큼 현재의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제도에서는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위기지원쉼터 대신 기존 정신건강증진시설 지원이 더 효과적"
또한 절차조력인이 민감한 환자의 진료정보를 열람할 수 있으며, 이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의료진에는 과도한 처벌이 내려진다는 점을 문제로 꼬집었다.
의협은 "개정안에서 절차조력인이 정신질환자의 의료 및 신상에 관한 자료열람이 가능하도록 한 조항도 문제"라며 "진료기록 열람 등에 관한 의료법 제21조에도 불구하고 민감한 진료정보의 불필요한 열람 대상자를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이로 인한 정신질환자의 진료정보 유출이 우려될 뿐만 아니라 정신의료기관 등의 장에게 이를 거부하거나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위반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은 과도한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협회는 "개정안에서 절차조력인에 대해 어떠한 자격기준을 설정하지 않으면서 대면심사 요청, 진단·심사과정에의 참여 권한을 허용하는 것도 문제"라면서 "현행 의료법 제12조제1항에서 의료행위에 대해 의료법이나 다른 법령에서 따로 규정된 경우 외에는 누구든지 간섭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과 충돌되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자살방지 등과 같은 긴급한 사유로 상담·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 등을 임시로 보호하면서 상담·치료 등을 지원하는 위기지원쉼터 설치, 운영도 현행 의료법에 배치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의협은 "자살방지 등과 같은 긴급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는 정신의학적으로 응급상황이며 이러한 응급상황에서는 즉각적으로 의료기관에서의 치료가 제공돼야 한다"며 "만약 즉각적인 대처가 되지 않을 경우 자해·타해는 물론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즉각적인 치료기관으로서 '위기지원쉼터'는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의협은 "오히려 위기지원쉼터를 마련하기 위해 예산을 지원하기보단 기존 정신건강증진시설 예산을 확대하는 것이 환자 안전은 물론 비용효과성 측면에서도 효율성이 더 높다"고 제안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반영된 것이다. 지난해 10월 여성 지적장애인이 정신의료기관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고 지체장에 의해 행정입원 조치된 바 있다.
인권위는 복지부장관에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하는 지적장애인 등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권리고지서를 개발하고, 지적장애인 등이 정신의료기관 입·퇴원 과정에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신건강복지법’ 등에 절차조력인제도를 신설하라"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