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3]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겪으며 우리나라 재난응급의료 시스템 전반에 문제점이 나타났다.
평상시 재난 대응 훈련을 해왔지만 예측하기 어렵고 대형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비효율적으로 작동해 사망자가 대규모 발생하는 비극이 초래됐다.
이에 국가적 참사를 되짚어보며, 우리나라 재난응급의료가 지닌 문제점 세 가지를 분석해봤다.
이번 사태를 통해 가장 많이 지적된 문제는 보건소장의 현장 의료지휘가 적절한지에 관한 것이다.
재난이 발생하면 현장에선 가장 먼저 소방서장을 단장으로 하는 ‘현장통제단’이 대응을 하며, 현장통제단 산하에 보건소장이 총괄하는 ‘현장응급의료소’가 설치된다.
현장응급의료소에서 응급환자에 대한 분류, 이송, 처치가 이뤄진다. 그리고 재난 현장과 가장 가까운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재난응급의료팀(DMAT)이 중앙응급의료센터 지령에 따라 출동해, 현장응급의료소에 합류, 진료를 개시한다.
그러나 재난 대처 경험이 전무한 보건소장이 현장응급의료소장이라는 직책을 맡으면서 재난 대응이 우왕좌왕했다.
실제 최재원 용산보건소장은 참사 발생 1시간54분이 지난 10월 30일 오전 0시 9분에 도착했다.
그 결과, 현장응급의료소가 제대로 운영된 것은 오전 1시경이었다. 보건소장이 도착하기 전까지 중앙응급의료센터와 소방, 의료진이 환자 이송을 전담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재난현장 총대응은 지역 소방서장, 응급의료는 보건소장이 맡는데, 큰 재난상황에서 통제가 어렵다”며 “전체 매뉴얼을 살펴봐도 보건소장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발언했다.
이만희 국민의힘 이태원 사고조사 및 안전대책특별회원회 위원장도 “용산보건소 신속대응팀의 늑장 도착 등으로 응급환자 및 사망자 이송을 총괄하는 현장 응급의료소 설치가 늦어져서 현장 대응에 많은 혼선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정부 재난컨트롤타워 소통 부재…DMAT 출동 지연
다원화된 재난 정보체계로 정부 재난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DMAT 출동이 지연된 것도 문제로 꼽혔다.
DMAT의 출동은 국립중앙의료원에 설치된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서 소방청의 요청을 받으면 이뤄진다. 즉, 재난이 발생하면 2단계를 거쳐야 출동 지시가 내려진다는 의미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이 같은 출동 매뉴얼은 현장 대응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경찰과 보건소, DMAT 간에 소통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이 비상상황 경계를 위해 이태원역과 녹사평역까지 교통을 통제하면서 현장에 출동한 의료진들은 “경찰의 신분 확인 과정 탓에 시간이 지체됐다”고 증언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한 의료진은 “핼러윈이여서 의사, 간호사로 분장하는 시민들이 있어 신분 검사가 까다롭게 이뤄졌다”며 “경찰이 막는 곳은 출입조차 하지 못하도록 해 힘들게 진입했다”고 말했다.
구급차도 진입이 안 돼 일부 대원들은 현장으로 뛰어가야 했다는 증언은 이미 여러 차례 나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가 거점병원별 DMAT에 출동을 요청한 시간과 도착시간 사이 간극이 상당하다.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DMAT 출동 요청은 14건으로, 이중 예상시간 내 도착한 DMAT팀은 서울대학교병원팀과 고대안암병원팀 2개 뿐이었다.
응급의료센터가 33분 걸릴 것으로 예상한 한양대 DMAT팀은 도착까지 50분이 걸렸고, 이대목동병원 DMAT는 28분이 예상됐지만 57분이 걸렸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국회 복지위에서 “초기 대응은 재난 응급의료 비상 매뉴얼대로 작동했지만 사고 규모가 너무 커서 미흡한 점이 있었다”며 “119와 경찰, 응급의료상황실, DMAT의 상황 공유가 원활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생존 가능성 낮은 환자를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 등 중증도 분류 허점”
현장응급의료소가 늦게 꾸려지고, DMAT의 현장 합류가 지연되지면서 환자 중증도 분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이송 및 처치도 구멍이 생겼다.
‘긴급구조 대응활동 및 현장지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송 우선순위는 긴급환자, 응급환자, 비응급 및 사망자 순으로 명시돼 있다.
심정지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해도, 의료진은 사망 선언밖에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서는 응급 처치를 받으면 살 수 있는 긴급 환자들 대신 사망이 확인된 많은 환자들이 가장 가까운 순천향대서울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순천향대서울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82명 중 79명은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응급실 재원 수는 30개. 격리실 2개를 제외한 28개 병상 중 5개가 비어있지만 수용하기 역부족인 상태였다.
순천향대서울병원 관계자는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들 대다수가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며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심정지 환자가 현장 근처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정작 응급처치가 필요한 부상자들은 더 먼 병원으로 이송됐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재난 상황 발생 시 환자 이송 매뉴얼에 따라 긴급-응급-비응급-사망 순으로 근거리로 이동한다”며 “그러나 이태원 참사 현장에선 의식장애, 호흡곤란, 실신, 마비 등 중증환자로 분류되는 20~30명의 환자가 대부분 6~27㎞ 떨어진 곳에 이송됐다”고 질타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은 “1989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며 “사고 발생지에서 직선거리고 1㎞ 남짓한 곳에 있는 강남성모병원에 사망자 100명이 이송됐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사실 가장 가까운 병원은 돌아가신 분이 아닌 중환자를 받아야 한다”며 “현장 지휘소를 거치지 않은 구급대나 개인 이송이 많았고, 대형 재난 상황이라 현장 통제가 어려웠던 점이 문제였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이태원 참사 발생 당시 인근 종합병원의 수용 가능한 중환자 수가 매우 적었다는 점도 환자 이송에 혼선을 빚은 이유로 꼽혔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의하면 당시 오후 11시 11분 기준 ‘사고현장 반경 10㎞ 내 병원별 사상자 수용능력’은 중환자 기준으로 국립중앙의료원 1명,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 1명, 고려대안암병원 2명, 강북삼성병원 1명,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1명 등 총 6명으로 집계됐다.
이후 반경을 21㎞까지 확대했지만, 이화여대부속목동병원 1명, 건국대병원 1명 정도만 추가됐다.
의료기관별 재난 핫라인이 가동된 이후 30일 오전 2시경에는 수용 가능한 중환자 수가 22명으로 늘었으나, 이 정도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이런 지적에 대해 안일하게 해명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인택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사망자 이송으로 순천향대서울병원 응급의료 제공에 지장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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