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병리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개선되고 있으나 도입과 유지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어 많은 병원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개별 병원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정찬권 서울성모병원 병리과 교수(디지털병리연구회 대표)가 지난 7월 19일 루닛 본사에서 열린 ‘국내 디지털병리 활성화를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국내 디지털병리 발전을 위해 한 조언이다.
정 교수는 이날 디지털병리 안착과 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수가체계를 꼽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디지털병리(digital pathology)는 세포, 조직, 장기 표본을 육안이나 현미경을 통해 판독하며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던 전통적인 방식에 광학, ICT 등을 융합해 디지털화한 융복합 진단시스템을 의미한다.
그간 병리진단은 임상 병리사가 환자 암 세포 조직 등이 담긴 검체 슬라이드를 분류해서 병리 판독 의사들에게 전달하면, 의사가 고배율 광학현미경을 통해 판독하고 이후 판독이 끝난 슬라이드를 저장고에 옮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러한 방식은 검체 슬라이드를 저장고에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뿐 아니라 이동 과정에서 슬라이드가 바뀌거나 분실될 위험이 있다. 또한 의료진들 간 판독 결과가 다를 때 실시간으로 함께 보며 의견을 나누기 어렵다.
반면, 디지털병리는 슬라이드에 있는 검체를 디지털 스캐너를 통해 고배율 이미지 정보로 만든 뒤 파일화시켜 판독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단점을 보완, 개선할 수 있다.
특히 타 진료과에서도 병리 데이터에 접근이 가능, 다학제 진료 시 훨씬 수월하게 진행이 된다.
“서버 증설 비용만 연간 3억원, 초기 진입 돕는 정부 지원 필요”
“병리의사가 부족하거나 없는 소규모 병원들 의료공백 해소 가능”
우리나라는 2019년 디지털병리 시스템을 통한 병리진단을 시작했으며 서울성모병원,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주요 대형병원도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인식하고 도입을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병리 시스템 도입과 유지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가 없어 병원들이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정 교수는 “디지털병리는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스캐너와 운영 프로그램, 저장 서버 등 초기 비용 투자 부담이 큰 점이 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면서 “디지털병리 도입에 따른 추가적 이득이 없다 보니 병원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서울성모병원은 지난해 디지털병리 온프레미스 서버 증설 비용만 연 3억원 이상을 사용했다.
정 교수는 “정부에서도 디지털병리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이를 반영하는데 여전히 소극적”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보험수가 체계 개선과 데이터 저장·공유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적의 암(癌) 관리를 위해 아날로그 방식 병리진단을 디지털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교수는 또 디지털병리가 병리의사가 부족하거나 없는 소규모 병원의 경우 디지털병리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캐나다, 터키, 스페인 등의 국가에서는 나라 면적이 넓고 병리의사 수가 부족해 모든 지역에 병리의사를 배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디지털병리를 활용해 원격진단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정 교수는 “병리의사가 부족한 나라는 모든 질환 분야를 커버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부족한 부분은 다른 병원의 판독 자문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디지털병리 궁극적인 목표는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라면서 “국가 전체가 디지털병리가 확산될 경우 의료 비용 역시 확실히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