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대란 사태를 계기로 상급종합병원의 대대적 체질 개선을 예고한 가운데 앞서 정부 정책에 순응했던 병원들이 불이익을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명칭만 다를 뿐 내용은 대동소이한 정책이 몇 개월 새 잇따라 추진되면서 먼저 사업에 참여했던 병원들은 후속 정책에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발단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대형병원 환자쏠림 해소를 기치로 외래진료 감축 및 지역 의료기관과의 협력 강화를 골자로 하는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외래진료 감축에 따른 병원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각종 보상과 인센티브를 약속했고, 삼성서울병원과 울산대병원, 인하대병원 등 3개 상급종합병원이 시범사업 기관으로 최종 선정됐다.
외래진료를 최대 15% 이상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업인 만큼 병원 입장에서는 모험에 가까운 도전이었지만 이들 3개 병원은 정부 의지에 공감해 과감히 시범사업 참여를 결정했다.
하지만 불과 개월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의정갈등 사태를 계기로 ‘의료개혁’ 카드를 꺼내든 정부가 대형병원 체질 개선을 위한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지원사업’ 공모에 들어갔다.
상급종합병원이 일반병상을 줄이고, 중증·응급·희귀질환 진료에 집중하면서 전공의에게는 밀도있는 수련을 제공하는 등 안정적인 구조 전환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였다.
구체적으로는 상급종합병원의 일반병상을 최대 15%까지 줄이고, 중증진료 비중을 70%까지 늘림과 동시에 전공의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 참여가 전제조건이다.
지원사업 대상기관에 대해서는 중환자실, 입원료, 중증‧응급수술 등 수가 인상과 함께 일반병상 축소 및 중증진료 확대에 따른 성과 지원이 예고됐다.
오는 12월 말까지 접수가 예정된 가운데 세브란스병원 등 일선 상급종합병원들이 지원사업에 참여를 준비 중인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가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에 참여 중인 병원들의 구조 전환 지원사업 참여 불가 방침을 세우면서 해당 병원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두 사업 모두 상급종합병원이 경증진료를 줄이고 중증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목표로 하는 만큼 명칭만 다를 뿐 내용은 유사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복 지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삼성서울병원과 울산대병원, 인하대병원 3곳은 구조 전환 지원사업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물론 이들 병원이 자발적으로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 참여를 철회하고 구조 전환 지원사업 참여를 신청할 수는 있다.
중복 지원이 불가한 만큼 2개 사업 중 하나만 선택해 참여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하지만 3년 계획을 모두 세워 놓고 한창 사업을 진행 중이던 병원들 입장에서는 중간에 궤도를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중증진료체계 시범사업에 참여 중인 한 병원 고위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순응했음에도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두 사업을 병합하든 기존 병원들에게도 참여 기회를 부여하든 합당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는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고 일침했다.
정부는 ‘중복지원 불가’라는 원칙은 고수하되 기존 중증진료체계 시범사업 참여기관들에게 불이익을 받지 않을 방도를 모색 중이라는 입장이다.
중증진료 시범사업을 추진 중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아직은 해당 기관들로부터 정식으로 접수된 의견이 없는 상태”라며 “의견이 접수되면 논의를 통해 방안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