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장기화로 대학병원 전문의 이탈이 잇따르면서 병원장들이 퇴사자 면담에 하루 일과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누적되는 체력적, 정신적 부담에 번아웃을 호소하며 사직서를 제출하는 전문의들이 급격히 늘고 있어 병원장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지방대학병원들은 전문의들이 계속 사직하면서 정상 운영이 불가한 진료과들이 속출하는 등 그야말로 개원 이래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국립대병원 교수 223명이 사직했다. 이는 2023년 사직자의 80%에 육박하는 수치다.
사직 교수들은 주로 비(非)수도권인 지방 국립대병원 소속이었다. 사직률이 가장 높은 곳은 강원대병원으로, 전년도 대비 올해 상반기 사직 교수 수가 150% 늘었다.
그다음으로는 충남대병원 125%, 창원경상국립대병원 110%, 경상국립대병원 100%, 충북대병원 94% 순이었다.
대학병원 교수 이탈은 지방과 필수의료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주요 대학병원 88곳에서 사직한 전문의는 275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559명) 대비 약 8% 늘었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이른바 ‘바이털(vital)과’를 중심으로 사직 비율이 높았다. 내과가 86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소아청소년과(194명), 정형외과(185명), 외과(174명) 순이었다.
한 대학병원장은 “교수 등 전문의들이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지만 점점 지쳐가고 있다”며 “근무 여건이 더 열악한 지방은 전문의 추가 채용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는 대학병원의 전공의 의존도를 낮춰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지만 이러한 정책이 오히려 전문의 기근현상을 키우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 등의 영향으로 각 대학병원들이 경쟁적으로 전문의 인력 확보에 나서면서 의료인력의 수도권 쏠림현상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실제 지방 국립대병원 사직 교수 상당수는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병원 또는 인천, 부산 등 대도시 대학병원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된다.
또는 명예로 버티던 교수직을 버리고 2차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은 대학병원에서 받던 연봉의 3~4배를 보장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 상급종합병원 전문의 수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의 경우 지난해 165명이던 상급종합병원 전문의가 올해 151명으로 8,48% 줄었다.
광주도 같은 기간 462명에서 436명으로 5.63% 감소했고, 강원 4.43%, 충북 4.25%, 전북 4.2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과 경남, 대구도 각각 3.64%, 1.61%, 1.45% 감소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장은 “8월부터 퇴사자 면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최근들어 횟수가 부쩍 늘었다”며 “하루에 3~4명씩 면담을 하지만 설득이 이뤄지는 비중은 극히 드물다”고 토로했다.
이어 “동일 진료과에서 한꺼번에 사직서가 제출되면 가슴이 철렁한다”며 “힘든 진료과목일수록 전문의들의 도미노 사직이 이뤄지고 있어 걱정이 크다”고 덧붙였다.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살리자는 취지로 추진된 의과대학 증원 정책이 역설적으로 지방 대학병원과 지역 필수의료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히고 있는 셈이다.
병원장들은 새학기가 시작되는 내년 3월이 최대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3월에도 사직 전공의과 휴학 의대생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대학병원 교수들의 사직은 더욱 가속화 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 지방 대학병원 원장은 “내년 3월 진료현장과 교육현장 정상화라는 실낱 같은 희망마저 무너진다면 교수들 이탈은 급격하게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료를 중단하는 과가 속출하고 수련기능은 사실상 멈추게 될 것”이라며 “지방 대학병원들은 존폐 위기에 처할 수 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