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방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지역필수의사제’ 도입을 선언했지만 정작 진료현장에서는 회의적 반응이 지배적인 모습이다.
특히 필수 진료과 의사들에게 지급되는 400만원 수당 외에 주택제공, 해외연수 등 여건 개선을 책임져야 하는 지방자치단체들도 기대보다 우려를 먼저 표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일 지방 필수의료 의사에게 월 400만원 수당을 지급하는 지역필수의사제 운영지원 시범사업 공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필수의료 진료과목 의사들이 지방 병원에서 장기간 근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월 400만원의 별도 근무수당을 지급하는 게 골자다.
대상 진료과목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신경과 △신경외과 등 8개다.
복지부는 공모를 통해 사업을 수행할 4개 지역을 선정, 지역별 24명씩 총 96명 전문의에게 근무수당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붕괴 위기에 놓인 지방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취지이지만 정작 진료현장에서는 시작하기도 전에 실효성에 대한 지적부터 제기되고 있다.
“근본적 원인 해결 없는 단순한 지원금 정책 등 탁상행정” 비판
근본적인 원인 해결 없이 단순히 지원금 몇푼으로 필수의료 붕괴를 막아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지방은 이미 대학병원과 중소병원을 막론하고 필수 진료과목 의료진 이탈로 남은 의료진의 업무 가중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수당’이라는 회유책이 통화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지방 종합병원 원장은 “인력난에 따른 과중한 업무 강도, 의료사고 위험 부담 등 여러 원인은 무시한채 단순한 지원금으로 필수의료 붕괴를 막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월 400만원이라는 수당이 이직과 개원을 계획 중인 필수 진료과목 의사들 마음을 돌려 세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언발에 오줌누기의 전형”이라고 덧붙였다.
인색한 지원 규모에 대한 반감도 상당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지역필수의사제 사업 예산은 총 13억5200만원이 편성됐다.
4개 시도별로 3개 지역의료기관을 선정해 필수 진료과목 의사 96명에게 수당을 지급하기 위한 예산으로 지급 기한은 6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내년에도 예산이 책정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병원으로서는 어렵사리 필수 진료과목 의사를 확보하고도 지원금이 끊기면 그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셈이다.
또 다른 중소병원 원장은 “수당이 6개월 지급 후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병원이 그 부분까지 보전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번 상향된 수입이 보전되지 않으면 의료진 이탈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병원 입장에서는 다른 진료과목과의 형평성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예산 13억5200만원 지속성 불투명하고 정주여건‧해외연수 등 지자체 부담
앞서 경험했던 ‘공공임상교수제’ 실패 사례도 섣부른 필수의료 회생책에 우려를 키우는 부분이다.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 구제를 위해 도입한 공공임상교수는 국립대병원 소속 의사로 채용돼 지방의료원 등에 일정기간 순환근무를 하며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사인력을 말한다.
하지만 시작과 동시에 인력난에 맞닥뜨렸다. 지원자 기근이 이어지면서 사업 예산도 대폭 감소해 좌초 위기에 놓였다.
목표 배정인원은 2023년 150명에서 2024년 50명, 2025년 31명으로 80% 가량 줄었다. 배정인원 감축에 따라 190억6900만원이던 예산은 63억5000만원, 39억4000만원으로 축thehotek.
일련의 상황은 ‘지원자 미달’에 기인한다. 공공임상교수제를 통해 채용된 교수는 2023년 28명(18.6%), 2024년 32명(64%)에 그쳤다.
공공임상교수 인력이 배치되지 못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흉부외과와 산부인과 인력은 채용되지 않아 공공임상교수제를 통한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은 “정부는 필수의사제를 통해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공공임상교수제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지역필수의료제’ 핵심 파트너로 지목한 지방자치단체들도 회의적인 반응이다.
월 400만원의 수당은 정부가 책임진다고 하더라도 필수 진료과목 의사 정주여건 마련은 오롯이 지자체 몫인 만큼 재정 여력이 없는 지자체는 참여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역필수의사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분담하는 국고보조사업인 만큼 지원 대상자 규모가 확대될수록 지자체 부담이 가중되는 구조다.
의사를 유인할 핵심 요소인 정주 여건 개선과 해외연수 비용은 지자체가 온전히 떠안아야 한다. 복지부 예산안에는 관련 비용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 역시 “이 사업은 지자체의 재정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며 “정주 여건 비용은 지자체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만큼 여력이 부족한 지자체 참여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정부가 지역필수의사제 정주여건과 해외연수 등의 비용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다”며 “작금의 필수의료 문제는 지자체 잘못이 아니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