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개발이 다 되고 나서야 규제를 만들고 허들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개발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허가·급여 요건을 기업과 동행해야 한다. 규제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연구자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처음부터 같이 고민을 해야한다.”
신약개발이 완료된 이후 규제기관이 허가 기준과 평가 요건을 제시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연구개발 초기부터 정부와 기업이 함께 규제 대응 방안을 설계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신약개발이 상당 부분 진행된 뒤 추가 시험이나 자료 보완을 요구하는 구조를 개선하고, 연구개발부터 임상시험, 허가심사, 건강보험 급여까지 연결되는 규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새로운 규제를 마련하거나 심사 절차를 추가하기보다는 개발 초기부터 함께 참여해 허가·평가에 필요한 기준을 안내하고, 불확실성을 줄이는 ‘사전 규제설계제’ 도입 필요성이 강조됐다.
양성일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 규제특위 위원장(前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지난 5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넥스트 엔진: 바이오 대혁신, 국가 미래성장을 잇다’ 공동포럼에서 이 같은 규제혁신 방향을 제시했다.
양 위원장은 이날 ‘바이오규제, 혁신을 가속하는 제도로의 전환’ 주제 발표에서 “신약개발이 다 되고 나서야 규제를 만들고 허들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개발을 시작할 때부터 허가·급여 요건을 기업과 동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자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처음부터 같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신약개발 후 뒤늦은 규제 검토…추가 연구·자료 보완 반복 지적
양 위원장이 제안한 사전 규제설계제는 신약이나 첨단바이오 기술의 연구개발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규제당국이 참여해 향후 허가 및 평가에 필요한 요건을 함께 설계하는 방식이다.
현행 신약개발 과정에서는 기업이 연구개발을 진행한 이후 허가심사와 급여평가 단계에서 추가적인 근거자료를 요구받거나 새로운 평가기준에 직면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진행한 연구를 보완하거나 추가 시험을 실시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개발기간이 늘어나면서 시장 진입까지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 위원장은 “지금은 연구가 시작되고 완료된 다음에야 규제당국에서 요구하는 근거를 확인하기 시작한다”며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면 다시 추가 연구를 하고 기다리는 등 뒤늦게 보완하는 구조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R&D를 기획할 때부터 규제당국과 경로를 공동으로 설계하고, 임상과 개발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함께 살펴보자는 것”이라며 “개발이 완료된 이후에야 허가와 평가 요건을 검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 초기부터 향후 입증해야 할 안전성·유효성 등의 근거와 제출자료, 평가기관별 요구사항 등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증거 생성 기획’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입증해야 하는지, 어느 기관에 어떤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지, 개발 과정서 변경사항이 발생하면 당국과 어떻게 협의할 것인지 등을 사전에 계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허가와 급여평가 지표를 처음부터 함께함으로써 뒤늦게 추가 자료를 요구하는 일을 줄이자는 것”이라며 “식약처 사전상담제도와 연계해 R&D부터 허가, 평가, 급여 적용까지 확장하는 제도를 원칙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복지부·식약처·심평원 공동 검토체계 강조
현재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연구개발부터 임상시험, 허가심사, 건강보험 급여, 생산·공급에 이르기까지 여러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심사 및 평가를 거쳐야 한다.
각 기관이 담당하는 절차와 판단 기준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기업들이 유사한 내용을 반복 설명하거나 자료를 추가 제출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 위원장은 새 규제기관을 만들기보다 기존 기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검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플랫폼에 연구, 규제 관련 내용을 접수하면 복지부, 식약처, 건보심평원 등 관계기관이 함께 설명을 듣고 검토하는 방식이다.
양 위원장은 “새로운 창구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공동 책임과 일정, 공동기록을 만드는 것”이라며 “기업이 하나의 플랫폼에 접수하면 관련 규제당국이 함께 설명을 듣고 공동 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무원은 2년마다 바뀌다 보니 과거 논의를 다시 시작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협의 이력과 판단 근거를 기록해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기존 원칙이나 답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처 간 협력을 확대하더라도 기관 별 법적 권한과 고유한 심사 기능은 유지해야 한다고 봤다. 규제혁신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봤다.
양 위원장은 “규정 개선 건수나 상담 횟수는 보조지표로 사용하고, 실제 기업과 연구자들이 의미 있게 생각하는 시간과 신뢰 관점에서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는 부처 사이 소통과 협업, 조정을 책임지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규제가 길을 막는 브레이크가 아니라 방향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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