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의료기기 분야의 유통체계 공정화를 위한 노력으로 표준계약서 도입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6개 업종에 대해 필요에 따른 실태조사를 한 뒤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유통구조개선TF 위원장을 맡은 입장에서 의료기기의 유통체계 개선을 위한 정부의 관심에 깊이 환영하는 바다. 더불어 이 기회에 고질적인 사업자와 대리점 간 불공정 거래행위가 해소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익히, 우월적 지위를 가진 사업자와 대리점 간의 갑질로 인해 사회적으로 문제로 불거진 남양유업 사례가 의료기기산업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대부분 의료기기는 의사가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비슷한 제품이더라도 사용 용도가 다르다. 또 독점으로 공급되는 제품이 많은 유통구조로 인해 그동안 지적되었던 불공정행위 문제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의료기기산업의 특수한 유통구조로 인한 불공정행위는 대리점의 일방적 해지, 판촉비용 전가, 리베이트, 영업기밀 제공 강요, 허가증 양도 강제, 대리점 인사 개입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있었다. 이번 공정위의 의료기기 분야의 표준계약서 도입을 통해 이런 악습을 없애고 공정한 거래 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공정위는 의료기기 분야의 표준계약서를 도입하기 전 업종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실태조사 진행 시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의료기기산업의 거래 구조를 필수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만약 국내 의료기기 산업계의 특수한 유통구조 현황을 표준계약서에 반영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유통구조의 심각한 왜곡을 가져와 모처럼 정부의 노력이 불공정 행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리점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간접납품회사(이하 간납사)이다.
협회 역시 업계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자 2020년도 협회 사업목표의 가장 우선순위에 뒀으며 부회장 주도하에 유통구조개선 TF를 구성·운영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시장조사, 실태 파악, 불공정사례 조사 등 업계 전반의 피해 사실 수집과 더불어 유관기관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제약산업을 예로 들면 병원재단에서 출자해 설립한 재단 직영간납사의 경우 병원재단과 간납사 출자 지분율에 제한을 두는 방식으로 약사법을 개정해 간납의 횡포를 막았다.
하지만 자리를 잃은 간납사가 눈을 돌려 의료기기산업에서 오히려 활황을 이뤘다. 이로 인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이 간납사의 이윤 추구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간납사는 외부 형태로만 보면 의약품 도매업 또는 의료기기 수입업이나 판매업 허가를 받고 있어 법적으로 대리점과 구분이 어렵다. 일부 간납사는 미국의 구매대행업체(GPO)와 같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가납과 구매는 실체가 엄연히 다르기에 우리나라에 GPO라는 구매대행업체는 없다.
미국의 구매대행업체와 다른점은 최종 납품처가 특정 병원에 한정됐다거나, 세금계산서상의 절차만 있을 뿐 실제 대리점이 하는 납품이나 창고 등이 매출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점이다.
결국, 정부 입장에서 간납사를 구별하고 유통구조 개선 효과를 위해서는 협회와 같이 공신력 있는 단체와 협업을 통해 일방적인 거래 관행에 대한 조사가 선행되고, 이를 통해 마련된 대책을 계약서에 반영해야 한다.
간납사는 의료기기 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건강보험제도의 실거래가상한제라는 제도적 허점이 간납사 이윤 추구에 이용되고 있으며, 이는 건강보험재정의 분명한 손실이다.
지난 5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발표한 표준계약서의 도입에 의료기기업종이 선정됨에 따라 그동안 적체됐던 불공정거래행위를 행하는 간납사 문제를 대리점과 사업자의 공정한 거래조건 확립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협회의 유통구조개선TF 위원장으로서 국민이 누려야 할 혜택을 국민에게 주고 산업계에게 불리한 불공정거래행위를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러한 국민과 산업계의 염원에 대한 해결을 모색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