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와 산업계의 불만이 끊이질 않았던 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대표적인 ‘킬러규제’로 지목되며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의료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오히려 환자 치료기회를 박탈하고 의료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정부는 14일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킬러규제 혁신 TF 2차 회의’를 열고 가장 시급한 ‘킬러규제 톱(Top) 15’ 과제를 선정해 과감하게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앞서 이달 초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의 투자를 막는 결정적 ‘킬러규제’를 걷어낼 것을 지시했고, 이번 15개 규제 선정은 그 첫 결과물이다.
킬러규제는 △입지 △진입 △신산업 △환경 △노동 등 크게 5개 분야에 15개 규제가 선정된 가운데 의료와 관련해서는 신산업 분야에 ‘신의료기술’ 규제가 지목됐다.
혁신적인 의술과 의료기기의 시장 진입 발목을 잡으며 환자들이 보다 나은 치료를 받을 기회가 박탈당하고 있다는 의료계와 산업계의 읍소에 정부가 응답한 셈이다.
신의료기술평가는 새로운 의료기술이 국민에게 사용되기 전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세밀하게 평가하는 제도로, 지난 2007년 도입됐다.
의료기술의 안전성 및 유효성을 객관적인 근거와 전문가 토론을 통해 평가함으로써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고 의료기술의 신뢰성 있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취지였다.
의약품, 의료기기, 치료재료, 내‧외과적 시술 등 의료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활용되는 일련의 모든 기기와 기술이 평가 대상이다.
의료법에 의거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 위탁해 신의료기술평가제도를 운영 중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5년 동안 3000여 건의 신의료기술이 평가를 받았고, 이 중 절반 이상이 안전성과 유효성이 인정돼 시장에 진입했다.
표면적으로는 신의료기술이 환자에게 적용되기 전 안전성과 유효성 검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신기술을 개발하는 의료진은 답답함에 가슴을 치고 있다.
의사들이 환자를 더 잘 치료하고 싶은 마음에 진료시간을 쪼개 연구를 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진료현장에 적용하기까지는 여간 고단한 게 아니다.
신의료기술 개발에 대한 의사들의 의지는 의술 혁신을 낳고 국가 의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지만 제도는 정반대로 작동하고 있는 탓이다.
서울대병원 한 교수는 “신의료기술평가를 경험한 의사라면 그 불편부당함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의료기술의 발목을 잡는 규제 수단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라고 힐난했다.
신의료기술평가제는 도입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중복규제’ 논란이 제기돼 왔다. 새로운 술기는 차치하더라도 치료재료와 의료기기 등은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통상 의료기기가 시판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기술에 대한 안전성, 유효성, 임상결과 등을 평가해 인허가를 받은 후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구조다.
식약처 허가를 받고도 병원에서 제품을 바로 활용할 수 없는 중복규제는 신의료기술평가의 구조적 한계라는 지적이다.
신의료기술 개발 경험이 있는 한 종합병원 원장은 “식약처가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통해 허가를 내준 기기와 재료에 대해 다시금 검토를 하는 것은 명백한 중복규제”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이번에 발굴된 킬러규제 15개와 관련해 규제별 전담작업반을 구성해 신속히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르면 다음달 예정된 제4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발표키로 했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선정된 킬러규제 15건은 기업들이 오래전부터 고충을 호소해 왔으나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사례로, 가장 개선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이 핵심규제 개선의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정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핵심 장애물을 해소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