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들어 발생한 안타까운 비극으로 인해 당뇨병 치료기기의 급여화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2024년 1월 9일 충남 태안경찰서는 주택가에서 일가족이 사망한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번개탄을 피운 흔적과 함께 아동 보호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도 발견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가족은 1형 당뇨를 앓고 있는 8세 딸을 수년 간 치료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남편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에는 “딸이 힘들어해서 마음이 아프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고인이 된 부부는 맞벌이 부부로 지내면서 딸의 치료를 병행하고 지역사회 봉사활동도 활발히 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안타까움을 샀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영호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에서 소아당뇨를 앓는 학생은 지난해 4월 기준 3,855명이다. 이는 2011년 3,111명, 2022년 3,655명보다 증가한 수치다.
1형당뇨는 심한 경우 저혈당 쇼크 등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고, 이 경우 긴급한 응급처치가 필수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19세 미만 소아청소년 1형 당뇨병 환자의 관리기기인 ‘인슐린 펌프’ 본인부담액을 380만 원(30%)에서 45만 원(10%) 수준으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국민 정서를 감안, 당초 금년 3월 말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이 같은 계획을 2월 말로 앞당겼다. 보건복지부는 조규홍 장관은 입장문을 통해 “하루 빨리 소아당뇨 환자와 가족들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준비기간을 단축하겠다”고 취지를 전했다.
이재명 대표 “내가 병실 누워있을 때 한 가족은 삶 포기…각자도생 정치 타파”
정부 발표 후 올해 초 부산서 흉기 피습 후 당무에 복귀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소아당뇨 환자 일가족 사건을 언급했다.
1월 31일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 승리 다짐 의사를 밝히면서 해당 사건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대표는 “제가 병실에 누워있을 때 태안의 한 가족은 삶을 포기했다. 아홉 살 딸의 투병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불의의 사고에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살아돌아왔지만 이 순간에도 눈물 흘리며 생사(生死)를 고민하는 분들을 살리는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며 “각자도생으로 내몰아 죽이는 정치가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당뇨병학회 등 의료계 “치료인력 풀(Pool) 고갈”
정부와 야당 대표의 공감에 이어 일선 당뇨병 치료현장에 있는 의료계 인사들도 이번 사건의 후속 조치를 주목하고 있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이번 일가족 사망 사건은 예견된 참극으로 일종의 사회적 타살”이라며 “제2, 제3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책임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의료시스템이 제1형 당뇨환자 진료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동병원협회는 “소아당뇨 환자 진료는 장시간이 소요되지만 감기환자와 동일한 진료수가가 적용되는 탓에 제1형 당뇨 소아환자를 진료하려는 의료기관이 줄어들고 있다”며 “소아당뇨 환자는 제도가 만든 의료사각지대에 내몰릴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대한당뇨병학회도 입장문을 통해 “일가족 사망 사건과 관련해 비통함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전(全) 연령층에서 발생하는 1형당뇨병을 난치성 질환으로 인정하고 체계적인 교육 및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현장에서는 중증 당뇨병 환자가 매일 사용해야 하는 인슐린 펌프 등 주입기기는 의료기관도 환자도 처방·사용을 꺼려 “있는 기기도 제대로 못 쓰고 치료인력은 고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월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종성 의원(국민의힘)이 주최하고 대한당뇨병학회가 주관한 ‘인슐린이 필요한 중증 당뇨병 관리체계 선진화 방안’ 토론회에서 김재현 당뇨병학회 췌도부전당뇨병TFT팀장(삼성서울병원 당뇨병센터장)은 이 같이 주장했다.
김재현 교수는 “혈당 조절에 도움을 주는 기기는 연속혈당측정기(CGM), 이와 연동되는 디지털 펜 및 인슐린 펌프”라며 “이들을 활용해 치료하는 이론은 환상적이지만 현실은 도저히 치료 풀(Pool)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그 이유로 ▲치료·관리 수가 부재 ▲요양급여가 아닌 요양비 제도 ▲높은 가격 및 렌탈 제도 부재 등을 꼽았다.
이에 현재 수면무호흡증 양압기처럼 인슐린 펌프의 렌탈 제도를 도입하고, CGM·디지털펜·인슐린 펌프의 요양급여 전환 및 기기 치료·관리 수가를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 입장이다.
김종화 대한당뇨병학회 전(前) 보험·대관이사(부천세종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은 “다른 질환은 의사에게 진단 받고 약을 잘 먹으면 되는데 당뇨병은 진단 후 치료 시 환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연속혈당측정기(CGM) 교육 수가는 도입돼 있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다. 결국 인력 풀이 중요한데 병원 입장에서도 수익이 나야 의료진을 더 투입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환자단체 “소아 → 성인당뇨 지원 확대”…政 “경제성만 고려하지 않는다”
환우단체에서는 "소아 뿐 아니라 성인 1형 당뇨병에 대한 국가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형 당뇨병 질환 상 특징과 치료법이 소아·청소년 환자와 성인 1형당뇨병 환자 간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차별에 항의하면서 “정부는 대상 확대 조치를 추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는 “소아당뇨병 환자 본인부담액 감면은 재정적인 고려보다는 성인보다 어려운 위험성 관리 측면을 염두에 뒀다”며 “경제성을 중시한 결정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1형 당뇨병 환자에 대한 지원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모든 지원을 다 할 수는 없다. 부담을 완화키로 한 것과 더불어 여러 지원 방안을 계속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