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지난 4월
2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암질환심의위원회가 열렸다
. 코로나
19로 계속 연기되는 바람에 암환자 치료제들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여부가 계속 밀려 있던 상황이다
.
현재 암질환심의위원회 심의를 기다리는 항암제는 자이티가(전립선암), 레블리미드(다발골수종)와 면역항암제 바벤시오(피부암), 키트루다(폐암), 옵디보(폐암) 등이 있다.
전세계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한민국 보건당국의 신속한 심의와 방역체계를 보고 경탄과 부러움을 보내고 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자부심과 긍지가 느껴진다.
"암환자 치료제 승인 및 건보 적용은 신속하지 못한 현실"
하지만 유독 암환자 치료와 건강보험 적용 과정은 아쉬움이 크다. 아무리 다급한 치료제도 그 심의과정을 최소 2~3년이 기본이다.
담당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항암제 승인담당자가 5~6명에 불과해 신청된 치료제를 모두 처리하는게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해명이다.
각론하고 이번 암질환심의에서 논의딘 새로운 항암제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그 결과에 암환자들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재발 또는 전이된 4기 암환자들의 경우 수술은 의미가 없고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 감마나이프 수술에 의존한다. 방사선 치료와 감마나이프 수술이 아무리 잘 이뤄져도 결국 종양내과에서 약을 잘 만나야 예후가 좋다. 항암제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이 항암제에 대한 접근성이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많이 떨어져 있다. 일본의 경우 선(先) 급여, 후(後) 평가 및 비용효과성 판단을 하는 네거티브 제도를 선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선(先) 경제성 평가 후(後) 급여라는 포지티브 제도를 적용해 혁신 신약의 건보적용이 길게는 2~3년 이상 소요된다.
면역항암제의 경우 이미 국내에 6개 제품이 들어와 있다. 그런데 폐암과 흑색종, 방광암을 제외한 나머지 암종에서 계속 건보적용이 미뤄지고 있다.
복지부 보험약제과와 심평원 약제관리실 및 암질환심의위원회가 여러 암종을 한꺼번에 묶어 건보적용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가격협상력을 높이고 제약사에 대해 지나치게 낮은 마진을 요구하는 것은 공적인 건보재정을 보전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다.
"계속 미뤄지는 면역항암제 건강보험 적용"
하지만 사회의 최약자인 말기 암환자들 입장에서는 피를 말리는 일이다.
폐암, 흑색종, 방광암은 2017년 건보적용이 이뤄졌다. 지금이 벌써 2020년 4월말이다. 면역항암제에 대한 건보적용을 미루는 것은 말기 암환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암질환심의위원회 영향력이 상당하다. 특히 국회 세미나 및 정책토론회, 각종 학회 산하의 암환자를 위한 세션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폐암의 경우 비소세포타입의 말기 환자들은 1차든, 2차든 어차피 면역항암제를 거치게 돼 있다.
2차 이상에서 이미 건보적용이 이뤄지고 있는 면역항암제를 1차로 가져와 미리 쓰고 미리 건보적용을 받는다고 해도 건보재정 총량에 주는 영향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폐암 1차에 대한 면역항암제 건보적용에 난색을 표명한다. 미국 NCCN 가이드라인에는 이미 1차에 면역항암제를 권고하고 있다.
다 이유가 있다. 1차에 다른 약을 쓰고 2차에 면역항암제를 쓰는 것보다 1차에 바로 면역항암제를 사용하면 반응률 및 생존율에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의 건보적용 신청이 들어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이뤄지지 않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암질환심의위원회 개입이 또 하나 있다. 옵디보의 경우 2차 이상에서 PD-L1 발현률 10% 이상일 경우에만 건강보험 적용이 이뤄진다.
옵디보는 PD-L1 발현률 1~9%는 물론이거니와 0%에서도 폐암환자에 대해 치료반응이 임상시험에서 나타난 사례가 있다.
누가 무슨 권한으로 어떤 기준을 갖고 PD-L1 발현률 10% 이상일 경우에만 건강보험 적용이 이뤄지도록 만들었는지 이 또한 의문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암세포의 PD-L1 발현률 갖고도 벌어지는 것이다. 급여 확장을 통해 빨리 개정해야 할 부분이다. 환자 한명과 그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는 엄중한 사안이다.
건강보험 적용 뿐 아니라 암환자의 항암신약 접근성을 가로막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바로 허가초과(오프라벨)과 관련된 부분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FDA의 승인이 나면 통상적으로 반년 이상 지나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가 이뤄진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유전자 변이들에 대한 다양한 표적치료제 신약이 쏟아지고 있다.
면역항암제는 약제 특성상 다양한 암종에 효과를 보이며 적응증을 계속 추가하는 중이고, 심지어 옛날약이라 불리던 세포독성항암제에서도 훨씬 개선된 신약이 나오는 추세다.
항암 신약이 이렇게 쏟아져나오는데 한국은 미국에 비해 한참 뒤에야 신약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말기 암환자들은 하루 하루가 소중하고 급하다.
"한시가 소중한 암환자들 위해 허가초과 사전 승인 및 사후 승인 제도 확대 필요"
이러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 활용될 수 있는 좋은 제도가 바로 허가초과 사전 승인 및 사후 승인 제도이다.
2019년 11월까지만 해도 암질환심의위원회 인원 수는 18명에 불과했지만 2019년 12월부터 새로 구성된 위원회는 40여 명에 달한다.
문제는 허가초과 항암요법에 대한 심사가 자주 열려야 하는데 현재 1년에 8회 밖에 열리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허가초과 항암요법 심의 신청은 일선 상급종합병원에서 말기 암환자들이 더 이상 쓸 약이 없는 경우 본인들이 직접 논문을 찾아 약을 써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런데 무려 60일을 기다려야 하는 게 현실이고, 허가초과 심의 과정에서도 의학적 근거 부족, 타당성 부족, 대체 가능성 등의 이유로 불승인 사례가 허다하다.
환자가 자기 돈 내고 국가와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문서에 사인하고, 직접 논문 찾아 치료제 사용을 요청해도 거절당하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암질환심의위원회는 사랑하는 자기 가족이 똑같이 아파도 오프라벨 처방을 해주지 않을 것인가. 근거중심의학 근거는 무엇인가. 돈을 가진 제약사가 돈을 투자해서 임상시험을 거쳐 만들어지는 게 근거 아닌가.
제약사는 기업이고 경제논리를 따라갈 수 밖에 없는데 희귀암은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동일한 치료제에 대해 우선 순위를 다르게 한다면 그 근거가 만들어지는 시점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지금의 항암신약에 대한 접근성 제고를 위해 건강보험 적용을 더 넓히고 허가초과 심의 과정에서 지금보다 많이 완화된 기준으로 승인 및 불승인을 평가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