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헬스가 장치산업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규제 개혁이 필수다. 아무리 품질 좋은 주사용 의료용기를 만들어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사용할 업체가 거의 없다.”
30여년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약무행정을 담당하며 의약품 정책통으로 꼽히는 이정석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장[사진]은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 조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11년 설립된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는 정부와 산업계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민관협의체 ‘다이나믹바이오’는 선제적인 제도 개선과 규제 합리화 채널로 자리잡았다.
코로나19를 계기로 ‘K-바이오’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정석 회장을 만나 국내 산업계 현주소를 진단하고,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Q. 국내 바이오 산업 현주소를 진단한다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도약의 기회를 가졌다. 셀트리온이 항체치료제 개발에 성공했고, SK바이오사이언스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화이자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다국적제약사 제품의 위탁생산 기지 역할을 담당했다.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바이오시밀러를 넘어 제대로 된 글로벌 블록버스터가 될 바이오 신약이 나와야 한다.
Q. 겨냥해야 할 틈새시장이 있다면
그동안 케미칼 의약품 시장은 유럽과 일본이 주도해왔다. 매년 50여 개 신약 중 30여 개가 이들 국가에서 나왔다. 그러나 2000년부터 글로벌 시장 판도가 달라졌다. 미국이 바이오 산업을 육성하며 주도권을 가졌다. 우리나라도 2011년 처음 바이오시밀러를 허가했고, 줄기세포치료제도 등장했다. 이후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바이오 산업에 뛰어들면서 생산과 R&D 역량이 풍부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엑소좀, 마이크로바이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치료제 개발이 이뤄지는 중이다. 이 같은 첨단바이오의약품 분야가 틈새시장이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도 개발을 시작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뒤쳐지지 않는 분야다.
Q. 대기업들 위탁생산(CMO) 치중 논란에 대한 견해는
그렇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한 제약사가 R&D, 독성시험, 제조 및 판매까지 모두 도맡았다. 직접 개발하고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의약품 개발과 판매 등 전 과정이 분업화와 전문화됐다. 임상에 특화된 CRO, 제조 전문 CMO, 개발생산 전담 CDMO, 판매 전문 CSO 등이 독자적 역할을 수행한다. 각 과정이 사업화됐다는 얘기다. 이때 빅데이터와 AI(인공지능)는 각 과정을 유기적으로 이어준다. 예컨대 제작사가 영화를 만들면 넷플릭스가 배급하는 것처럼 화이자 등 대형 제약사들도 이미 이런 방식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과감한 규제 개혁 등 첨단바이오의약품 틈새시장 주목"
"위탁생산, 제작사가 영화 만들고 넷플릭스가 배급하는 것"
"바이오 소재·부품·장비, 원료의약품 등록제도처럼 관리해야"
Q. 현행법에는 아직 이들 사업영역에 대한 규율이 없다
그렇다. 현재 CRO, CMO, CDMO는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앞서 말한 사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해한다면 이들 사업을 하루속히 약사법에 포함시켜야 한다. 코로나19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백신을 위탁생산했지만 내국인에게 공급하지 않으면 식약처 관리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WHO(세계보건기구)가 1980년대부터 의약품 수출시 자국민에게 공급 가능한 수준을 갖추도록 권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용 의약품은 약사법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수입국에서 수출국 규제기관의 허가 증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식약처가 선제적으로 관련 법 정비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Q. 바이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육성도 화두다
의약품 산업은 생산 및 품질관리, 자료까지 허가증에 모두 담는다. 세포 배양에 쓰는 배지 규격까지 허가증에 포함한다. 만약 배지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기존 배지와 비교해 나쁘지 않음을 입증해야 한다. 실제 두산이 업그레이된 주사용 유리용기를 개발하더라도 제약사들이 이를 사용하려면 기존 유리용기보다 나쁘지 않음을 증명하는 시험을 해야 하고, 허가 변경 절차도 거쳐야 한다. 복잡한 과정을 감수하면서 신제품을 쓰려는 기업들이 있을까. 소부장 산업이 발전하려면 결국 식약처가 개입해야 한다.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소부장도 원료의약품 등록제도(DMF)처럼 관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Q. 바이오 산업 발전 속도 대비 규제기관 대응을 평가한다면
식약처 내부에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새 정부에서 규제 혁파를 강조하고 있지만, 바이오헬스는 규제를 업그레이드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산업 성장을 위한 규제를 정비하는 게 중요하다. 규제를 배제한 산업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Q. 향후 협회 역할은
고부가가치 치료제인 첨단바이오의약품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다이나믹바이오를 통해 식약처와 산업계의 긴밀한 소통의 장으로서 역할을 강화하고, 현장 목소리가 반영된 제도 및 정책이 입안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