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제약사가 다국가 임상시험에서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 동남아시아 등으로 무대를 옮기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임상 비용이 상승이 주된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의정갈등에 따른 대형병원 휴진이 더 큰 원인으로 부각되는 모습이다.
한국임상시험참여포털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20일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6월 20일까지 4개월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임상시험은 총 328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428건과 비교해 30% 이상 줄어든 수치다. 월별 임상시험 승인 건수로 보면 3월 106건, 4월 91건, 5월 65건, 6월(1~20일) 54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 3월 25일 전국의대교수협의회가 의대 증원과 전공의 처분에 반발해 외래진료 최소화 등 첫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임상시험 승인은 급격히 줄었다.
실제 전국 단위 의대 교수 집단행동이 본격화된 4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13건 줄었고, 5월 21건, 6월 46건 등 큰 폭으로 감소했다.
대학병원의 교수들도 파업에 참여하면서 임상시험승인계획서(IND) 작성과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심사 등 임상 과정에 제동이 걸렸다.
IRB 심사는 연구에 참여하는 대상자의 권리·안전·복지 보호와 연구 대상자 임상 연구 참여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임상시험의 진행 여부를 승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전문가들은 의정갈등이 임상시험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상황이 지속될수록 임상시험 감소폭은 더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글로벌 임상시험 시장에서 국가 기준 5위, 서울은 도시 기준으로는 1위에 오를 만큼 시장을 주도했지만 갈수록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수련병원을 둔 의과대학과 함께 개원의까지 무기한 집단휴진을 시행·검토하면서 신규 임상시험 감소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CRO(임상시험수탁) 기업 관계자는 “진행 중이던 임상시험이 전공의 공백으로 일정이 지연되거나 예정된 스케줄보다 기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 제약사에서 임상 자체를 하지 않고 미루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의정갈등 상황에 대해 한 글로벌제약사 대표는 “임상을 위해선 신규 환자들이 등록(enroll)돼야 하는데 한국만 코로나19 때랑 비슷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코로나19 당시에는 한국이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해 신규 환자 등록율이 높았다. 아직까지는 KRPIA 차원의 공식 입장 표명 계획은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임상시험이) 다른 나라로 모두 넘어갈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