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이 장기화 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를 겨냥한 범정부 차원의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집단휴진, 축소진료 등으로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연이어 의료계의 치부를 들추면서 의사들의 투쟁 입지가 좁아지는 모습이다.
의료계에 대한 정부의 압박은 지난달 18일 개최된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기점으로 본격화 되는 모양새다.
특히 리베이트, 마약류 의약품 불법 투약 등 비윤리적인 사건들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의료계를 향한 사회적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 경찰은 의료계 궐기대회 하루 전날 대규모 리베이트 사건 수사 경과를 폭로했다. 고려제약 리베이트 사건과 관련해 1000명 이상의 의사가 수사선상에 올라있다고 밝혔다.
특히 현금을 직접 받았거나 가전제품 또는 골프 접대 등 구체적인 리베이트 사례까지 언급하며 수사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의료계는 집단휴진 전날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경찰청장이 직접 피의자의 규모나 사건의 내용을 언론에 알리고 나선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대 증원 사태 초기부터 의사에 대한 압박책으로 리베이트 사건 활용 가능성을 엿보던 정부가 결국 집단행동을 앞둔 시점에서 공론화 시켰다는 분석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대증원 사태가 가시화된 직후인 지난 3월 21일∼5월 20일을 '의약품·의료기기 불법 리베이트 집중신고기간'으로 운영, 의료계 반발을 샀다.
복지부는 신고 내용을 토대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로, 고려제약 사건 외에도 연이은 리베이트 사건 수사가 예상됐다.
실제 지난 4일에는 또 다른 리베이트 소식이 전해졌다. 강원도 소재 종합병원 병원장 부부가 25억원에 달하는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병원장과 재무이사인 아내는 의약품 도매업자로부터 특정 의약품을 납품받아 사용하는 대가로 대금의 15%를 현금으로 되돌려 받은 혐의다.
이에 경찰 측은 병원장 부부를 구속했다. 의과대학 증원 사태 이후 불법 리베이트로 의사가 구속된 첫 사례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병원장 등이 특정 의약품을 사용하는 대가로 불법 리베이트를 챙긴 혐의를 받은 경기도 소재 종합병원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지기도 했다.
의료계의 치부 들추기는 비단 리베이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환자들에게 마약류 의약품을 불법 투약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의사들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경찰은 해당 의사들이 사회적 공분을 샀던 일명 ‘롤스로이스남’과 ‘람보르기니남’이 이용하던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뿐만 아니라 “더 투약해 달라”며 의사에게 빌거나 비정상적으로 몸을 떠는 모습 등이 담김 CCTV 영상까지 공개했다.
경찰은 일련의 사건들이 의정 갈등과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의료계는 보복성 수사를 의심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의료계 인사는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하기에는 시점이 너무나 절묘하다”며 “여론전을 통해 의료계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물론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연일 수사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납득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서도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임현택 회장을 비롯한 대한의사협회 임원 7명에게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송달했다.
복지부는 “환자안전을 저해하는 진료거부, 휴진 등 집단행동을 하거나 이를 조장·교사하는 행위는 의료법에 따라 1년 이내의 면허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주에는 경찰이 집단휴진에 참여한 서울대병원 교수 등 의사 총 5명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