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폭행·성추행 등 추문으로 얼룩진 의료계
의대생·전공의 심지어 서울대 교수들까지 연루된 사건 잇달아 발생
2017.10.28 08:08 댓글쓰기

고귀한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다른 직업군보다 더 철저한 윤리의식이 필요한 집단이 바로 의사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의사들이 벌인 일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어이없는 사건들이 최근 잇달아 발생했다. 일부는 과연 이런 사건까지 벌어지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의아함이 가득하다. 예비의사의 성희롱을 비롯해 젊은의사들 간 폭행, 심지어 전공의 및 환자들에게 사표(師表) 역할을 하는 교수들의 성추행 및 폭행 사건도 연이어 터졌다. 지방대병원은 물론 분당서울대병원, 서울대병원까지 의료계 전체의 고개를 수그리게 하는 추문으로 얼룩졌다. 워낙 이 분야 종사자가 많다 보니 일부의 일탈로 볼 수도 있겠지만 사건의 내용이나 의대생, 전공의, 교수 등 피의자들의 다양성이 간과하고 넘어가기에는 심각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들이 내부적으로 곪아 있었다가 수면 위로 부상한 문제이기 때문에 차제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최근 연쇄적으로 발생한 의료계내 참담한 사건들을 정리해보고 개선책을 살펴봤다.[편집자주]


2017년 의료계는 의사들의 돌발적인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적잖은 홍역을 치렀고 국민들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금년 2월 전북대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김모(34)씨가 3개월간 폭언, 폭행, 얼차려, 금품갈취 등으로 시달리다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선배 의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처벌을 요구,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김씨는 1년이 넘는 기간 정형외과 전공의로 교육을 받으면서 선배로부터 폭언을 비롯 폭행·금품 갈취 뿐 아니라 개인 문자 메시지와 SNS를 감시당했다고 폭로했다. 더욱이 해당 과 교수까지 폭행에 가담했다고 주장해서 병원은 물론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다.

3월에는 예비의사들인 인하대 의대 남학생들이 같은 과 여학생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파렴치한 발언을 한 성희롱 사건이 벌어졌다.

의예과 2015, 2016학번 남학생 11명이 지난해 3~5월 축제 기간 중 주점과 인근 고깃집에서 여학생들을 언급하며 성적인 대화를 나눈 것이 드러난 것이다.

15학번 남학생 3명은 16학번 동성 후배 3명을 불러 점심을 사주며 “여학생 중에서 ‘스나마’를 골라보라”고 했다. ‘스나마’는 이들 학생들이 만든 은어로 '얼굴과 몸매 등이 별로이지만 그나마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후배들이 의대 여학생들을 거명하자 “걔는 얼굴은 별로니깐 봉지 씌워놓고 (성관계를) 하면 되겠네”, “걔는 지금 불러도 (성관계를) 할 수 있는 사람”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줬다.

올 6월 국내 최고 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에서 선배 남자가 교수는 후배 여교수를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 의료계내 성 관련 사건의 정점을 그었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소속 교수 A씨는 회식 자리에서 후배 교수 B씨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 성추행 피해자인 B교수가 병원 측에 문제를 제기했고 병원이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의대 교수들의 일탈은 또 발생했다.

금년 7월 지방도시인 전라북도 익산시의 원광대병원 소화기내과 C교수가 저녁에 만취 상태로 후배 교수들을 대로변에 꿇어앉힌 뒤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C교수는 후배 교수 4명을 익산시 신동 대로변에서 30분 넘게 폭행했다. C교수는 이날 병원장 주제로 간담회를 겸한 저녁식사를 마친 뒤 자리를 옮겨 2차 술자리를 하던 중 일행끼리 언쟁이 붙자 후배 교수 4명을 길거리로 불러내 버스정류장 옆에 꿇어앉힌 뒤 발로 얼굴을 차는 등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을 당한 교수들은 일부 얼굴이 찢어지거나 멍이 들고 안경이 깨지는 등의 피해를 봤다.

같은 달 부산대병원에서도 교수가 상습적으로 간호사에게 폭언하고 전공의를 폭행한 혐의로 대학 징계위에 회부됐다.

부산대병원 D교수는 수술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수술기구를 모아 둔 판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망가진 수술용 칼날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수술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남자 간호사에게 욕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D교수는 이전에도 상습적으로 폭언은 물론 폭행을 서슴지 않았다는 증언들이 쏟아졌다.

그는 수술 중에 어시스트를 제대로 못 한다며 전공의를 발로 차기도 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뺨을 때리거나 수술기구로 찌를 듯이 위협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D교수는 지난 2009년 레지던트가 실수로 보낸 응급환자 발생 문자메시지에 만취 상태로 응급실에 찾아와 소리를 지르며 레지던트와 간호사를 폭행한 일도 있었다는 전언이다.

가장 최근인 8월과 9월에 분당서울대병원 소속 의료진들의 일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산부인과 소속 여성 전임의가 병원 수술방에서 교수의 지도·감독하에 난소 양성종양 흡입 시술을 하던 도중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수술 방에는 간호사 2명 외에 중국 의대 유학생과 러시아에서 수련 온 전문의가 시술 참관을 목적으로 함께 있었다.

그는 “수술 도중 다음 단계로 진행하기 전 잠시 머뭇거리자, 교수가 주먹으로 자신의 등을 2차례 가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사건 뿐 아니라 평소에도 교수가 고성과 함께 “네가 그렇지 뭐”, “힘만 무식하다”, “초등학교 수준의 지식만 갖고 있다” 등의 폭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차례 수술 도중 손을 들어 위협한 일이 있었으며 상습적으로 때렸다”고 덧붙였다.

9월 6일에는 분당서울대병원 레지던트가 여중생들 앞에서 음란행위, 소위 발바리맨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H씨는 6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의 한 중학교 후문에서 지나가는 여중생들 앞에서 바지 지퍼를 내리고 음란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여학생들이 경찰에 신고해 그는 범행 30여분 만에 체포됐다.

H씨는 퇴근길에 “교복을 입고 학교 앞에 서 있는 중학생들을 보고 충동적으로 한 행위”라고 혐의를 시인했다.

사건 발생 후 징계 등 처리 과정
전북대병원 측은 징계위원회를 구성, 가해자에게 한 달의 정직 처분을 내렸다. 그는 폭행·금품갈취 등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전북대병원 관계자는 “향후 전공의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현재 제도를 마련해 시행 중이다. 하지만 아직 해당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아 방안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인하대는 의대생 성희롱 사건 이후 상벌위원회를 열어 5명에게 무기정학, 6명에게는 90일의 유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이들 중 15학번 7명은 징계가 부당하다며 인천지법 판사 출신의 대형 로펌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징계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후배 교수를 성추행한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소속 A교수는 6개월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서울대에서는 병원 측과 별개로 교원징계위원회를 통해 A교수에 대해 추가적인 징계를 내릴 방침으로 전해졌다.

원광대병원 교수 폭행 사건은 피해 교수 중 1명이 병원 측에 A교수 징계를 강하게 요구했고 병원 측은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난 뒤에야 A교수를 보직 해임하고 학교에 징계를 요청하는 선에서 사건을 일단락시켰다.

원광대병원 한 관계자는 “병원 내부에서 폭력 사건에 대해 문제의식을 크게 느끼고 있다”며 “추후 논의를 통해 제도와 교육 측면에서 개선책을 정립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부산대병원 측 역시 사건 발생 이후 인사위원회를 열고 해당 교수 징계를 결정하고 부산대학교 징계위원회에 회부를 요청한 상태다.

이 교수는 지난 2009년에도 간호사와 전공의를 상대로 폭언을 퍼붓고 폭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별다른 조치가 가해지지 않았다.

부산대병원 측은 “의료계 내부 도제식 문화 개선을 위해 병원에서는 교수들의 의식개선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 전했다.

수술실에서 여성 전임의를 폭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전문가평가제에 회부됐다.
전문가평가단에 사건을 정식으로 접수해 조사를 마쳤고 평가단 회의도 끝난 상태이며 추가적 조사와 회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평가가 내려질 예정이다.

음란행위를 한 분당서울대병원 레지던트는 아직 경찰 조사 중이며 병원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징계 등의 수위를 결정할 계획이다.

장기적 인식 개선 필요
의료인 간 폭행을 막기 위한 직접적인 제도는 법률적으로 마련되기 어렵다. 의료인들의 도의적인 윤리의식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법률적 접근의 한계를 벗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있다.

부산대병원은 의료인들의 장기적 인식 개선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부산대병원의 한 관계자는 “제도가 만들어지더라도 병원 내 갑인 교수들이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며 “교육을 통해 인식 개선이 이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병원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매월 교수회의가 있다. 이때마다 병원장은 교수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교육을 직접 맡아 한다. 그리고 교수들은 매번 본인이 속한 과 내 상황을 병원장에게 보고한다”며 “교수들이 직접 참여하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인식 개선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사건 이후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병원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개발했고 이를 필수교육과정으로 지정해 전직원이 폭언폭행 예방교육을 수강토록 했다. 또한 상호간 폭언폭행 예방, 근절을 위한 홍보동영상을 제작해 각종 회의와 교육 시간마다 수시 상영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한 관계자는 “전직원이 모이는 자리에서 동영상을 상영하고 교육 빈도를늘리고 계속적으로 공론화의 장(場)을 만들려 한다”며 “이를 통해 조직원들의 공유와 공감을 이끌어내고 결론적으로는 인식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의료계 내 문화와 제도,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아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 같은 폭력과 성폭력에 대해 문화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안치현 회장은 “일을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에서 일을 덜 했으니 벌 당직을 세우고 일을 잘하기 위해 폭력이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에 문제가 있다”며 “피해자가 연차를 쌓으면서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이런 문화에서 생겨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제도에 문제가 있어서 문화를 개선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실제 폭력 피해자들이 사건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더라도 폭력에 대응하는 프로세스가 확립되지 않았거나 프로세스 존재 자체를 알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설명했다.

현재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고 징계가 내려지 더라도 결국 과태료는 500만원 이하로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처벌이 보다 엄하고 강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앞으로 의료계 내 폭력과 성폭력을 묵과하지 않는 문화를 조성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대책으로 건전한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피력됐다.

안치현 회장은 “때리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알리는 캠페인은 분명 필요하다”며 “간단하게 스티커나 배지 등을 활용하는 행사를 계획 중에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제도적으로는 폭행 사건 대응 프로세스 표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대한전공의협의회 자체적으로 대응 프로세스를 마련할 것”이라며 “최근 전국 수련병원에 폭력/성폭력 대응에 관한 병원들의 지침 전문을 요청해 수집 중이고 대한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와 공조를 통해 학생 때부터 확실히 보호해 의료계 내 폭행 문화 근절에 앞장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보건의료노동조합도 병원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성폭력 등 부도덕한 사건의 근절을 위한 제도와 장기적 인식 개선 방안에 고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강경한 제도와 장기적 인식은 둘 다 꼭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포기해선 안 된다”며 “근본적으로 병원 사업장 내에서 폭언과 폭행을 예방하고 근절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의료계 문화가 개선될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문화가 팽배한 의료계 내에서는 교수가 ‘갑’이라 징계나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올해 있었던 일들이 마음 아픈 사건들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공론화돼 병원사업장 문화를 개선할 계기로 작용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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