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매출 1위 유한양행이 초대형 기술수출로 ‘대박’을 터뜨 렸다. 얀센 바이오테크와 체결한 이번 계약은 1조 4000억원 규모로, 폐암 신약 라이선스 아웃 및 공동개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일궈낸 비결로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이 꼽힌다. 기존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연구개발(R&D) 방식에서 벗어나 개방, 공유를 통한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처럼 달라진 제약산업의 패러다임을 감지한 타 제약사들도 바이오벤처 혹은 다국적제약사와 손을 잡으며 ‘오픈이노베이션’ 도입을 통해 라이선스 인/아웃에 성공하고 있다.
바야흐로 ‘기술수출 전성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유한양행을 통해 역동적으로 변모 중인 국내 제약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유한양행은 얀센 바이오텍(이하 얀센)과 비소세포폐암 치료를 위한 EGFR 저해제 레이저티닙(YH25448)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 5000만 달러(약 560억원), 단계별 마일스톤 12억500만 달러(약 1조4000억원)로 총 계약규모는 12억5500만 달러(약 1조4072억원)다.
향후 발생할 순매출액에 따라 경상기술료(로열티)도 수취할 예정이다. 계약지역은 한국을 제외한 미국, 유럽 등 전세계다.
이에 대한 대가로 얀센은 한국을 제외한 전세계 국가에서 레이저티닙에 대한 개발, 제조 및 상업화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가지며, 국내 개발 및 상업화 권리는 유한양행이 유지하게 된다.
두 회사는 레이저티닙의 단일요법과 병용요법에 대한 글로벌 임상시험을 공동으로 진행한다. 해당 임상시험은 2019년에 시작할 계획이다.
이정희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은 “유한양행은 폐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분들을 위한 효과적인 치료방안으로 레이저티닙을 개발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폐암 및 항암제 연구개발과 관련한 얀센의 우수한 과학적 전문성을 고려할 때, 얀센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상의 전략적 파트너”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산업 판도 변화 기폭제 ‘오픈이노베이션’
오픈이노베이션은 유한양행에 앞서 한미약품이 지난 2015년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라이선스 아웃 및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하며 변화를 주도했다. 이후 그 길에 타 제약사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연구개발 시 생기는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에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 자본, 인력 등이 투자되기에 각 단계마다 부족한 부분을 타 기관과의 정보 교류 및 협력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미국, 유럽 등지에선 이미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신약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신약개발을 위한 아이디어나 기술이 기업과 대학, 바이오벤처 등의 담장을 넘나들며 혁신을 낳고 있다.
미국 제약사 머크는 신약 개발에 필요한 유전자 마커 개발을 위해 대학 연구활동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일라이 릴리도 외부 연구자를 지원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신약 개발 프로그램 (OIDD)’을 개설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외부 연구자와의 공동연구에 자체 임상 관련 정보와 신약후보물질 일부를 제공하며, 프랑스 사노피는 ‘Access Platform’을 자체 구축해 대학·민간조직 등 파트너가 정보에 쉽게 접근하도록 한다.
실제, 오픈 이노베이션이 폐쇄형 모델보다 신약 개발에 있어 성공확률이 3배 더 높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 회계법인 딜로이트 발표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2년까지 281개 제약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종 승인 받은 신약 중 폐쇄형 모델은 11%, 오픈 이노베이션은 34%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제약사는 다국적 제약사에 비해 오픈 이노베이션 출발이 다소 늦었으나,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금년 11월은 제약·바이오업계 ‘결실의 달’로 꼽힐 정도다.
유한양행을 필두로 크리스탈지노믹스와 코오롱생명과학 등이 연달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 8월 JW중외제약은 덴마크 레오파마에 아토피 신약 ‘JW1601’을 4억200만달러(약 4500억원)에 기술수출했다.
이로써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기술수출 계약은 10건, 총 41억 5765만 달러(약 4조 6969억원)로 집계된다. 이는 지난해 8건, 12억3400만 달러(약 1조4000억원)보다 4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5년 한미약품 기술수출을 기점으로 국내 제약·바이오업체들이 라이선스 인/아웃에 관심을 가지며 뛰어든 그 결과물이 이제서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며 “기술이전 대상과 계약 유형도 다양해지면서 향후 R&D 투자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특히 눈여겨봐야 할 점은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이 다국적 제약사나 바이오벤처들과 오픈 이노베이션을 한다는 점”이라며 “이 과정에서 임상실험 노하우 및 해외시장에 관한 이해와 전략 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한양행이 한 뼘 성장하는데 많은 이들의 노력이 뒷받침됐다. 그 중 숨은 공로자로 최순규 연구소장[사진]이 꼽힌다. R&D성과가 비즈니스로 이어지도록 최일선에서 분투한 최 연구소장에게 레이저티닙 기술이전 과정 및 앞으로 계획 등을 들어봤다.
Q. 대규모 계약이 성사된 과정이 궁금하다
임상 2상까지 진행되면서 경쟁 약물 대비 레이저티닙의 장점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나왔다. 데이터를 담은 소개서를 만들어 여러 회사에 전달했다. 그 중 얀센의 모회사인 J&J의 바이오 스타트업 육성기관 제이랩스(JLABS) 아시아태평양 담당자와 지난해 12월쯤 연락이 됐다. 연구계획이나 임상 진행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논의를 이어가면서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 4월 미국암학회(AACR), 6월 미국임상 종양학회(ASCO) 등 국제행사에서 미팅을 가졌다. 7~8월이 넘어가면서 얀센에서 개발 계획이 나왔는데, 그 내용이 우리 방향성과 일치했다. 같이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시기다. 전체적으로 보면 연구자(과학자) 간 논의가 비즈니스적인 협상으로 이어지는데 1년 정도 시간이 걸렸다.
Q. 기술수출 추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파트너에게 라이선스 아웃을 할지 결정하는 일이 난제 (難堤)였다. 공동개발로 인한 성과가 도출돼야 하고, 개발된 약이 환자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 같은 방향을 가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파트너가 누구인지, 과제를 하면서 어떤 것을 배울 수 있는지 등을 검토, 판단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Q. 이번 계약을 두고 ‘오픈이노베이션’ 성과라고 평가한다. 유한 오픈이노베이션 현황 및 노하우를 소개하면
이정희 대표가 취임한 후 2015년부터 ‘오픈이노베이션’이 본격화됐다. 지금까지 18개 회사에 1200억원 정도를 투자한 것으로 안다. 현재 유한양행이 보유하고 있는 파이프라인의 절반은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들여온 것이다. 오픈이노베이션 시 주목해야 할 것은 자사의 강점, 약점을 파악하는 일이다. 파이프라인에 과제를 새로 부과해야 할지, 아니면 기존 과제를 확장·발전시켜야할지 판단해야 파트너든 후보물질이든 고를 수 있다. 후보물질의 경우 ‘퍼스트인클래스(first in class)’인지, 독창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지, 사업성이 있는지, 미충족 수요가 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내부 과제와 중복 여부도 살펴봐야 한다. 즉,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강화하면서 두 회사가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지가 오픈이노베이션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본다.
Q. 라이선스 인/아웃 시 기술평가가 중요하다.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에 따라 협상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인데, 유한양행은 어떤 방식으로 기술을 평가하고 있나
사실 기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미래 사업성을 현재 시점에 예측하는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유한양행은 기술성·사업성 평가 전담부서를 꾸려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Q. 레이저티닙을 얀센에 더 높은 가격에 팔아었야 했다는 주장도 있던데
글쎄요. 사실 레이저티닙은 단일품목으로 국내 최대 금액을 받았다. 적정가격이라고 생각하며 후보 회사들 가운데 글로벌 개발 역량을 갖췄다는 측면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물질을 라이선스 아웃한 뒤 임상을 하다가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레이저티닙의 경쟁 품목이 시장에 나온 상황에서 어떤 임상전략을 갖고 추진해 나갈지, 상업화할지 등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하며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있다고 판단했다.
Q. 국내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 조성을 위해 어떤 지원책이 필요한가
레이저티닙 기술수출은 국내 바이오벤처의 경쟁력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바이오벤처가 아이디어나 기술력을 갖춰야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자금력이 부족하다. 이에 정부가 바이오벤처들에게 신약 개발 시 재정 지원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고 본다. 물론 사업성과 임상시험 성공률 등의 요소들을 근거로 잘 판단해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Q. 향후 계획은
레이저티닙이 라이선스 아웃됐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하다. 임상 3상 성공 후 판매허가 신청서(NDA)까지 제출 해야 한다. 레이저티닙의 단일요법과 병용요법에 대한 글로벌 임상도 해야 하고, 상품화 전략도 짜야 한다. 레이저티닙이 치료제로 출시될 때까지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 외에도 또 다른 레이저티닙, 오픈이노베이션을 탄생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해외 오픈이노베이션 개척을 위해 미국 샌디에고에 ‘유한USA’도 설립했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삼아 도약하기 위한 기회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