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후 처음 맞는 명절
. 일선 병원들의 설 풍경이 확 달라졌다
. 영업사원들의 행렬이 줄이었던 교수 연구실은 한산하다 못해 삭막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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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평소 의료진에게 감사함을 표하려는 환자나 보호자들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줘도 안되고, 받아도 안된다’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잡은 모양새다.
사실 대학병원들의 명절 풍경은 지난 2010년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을 기점으로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업체로부터 받는 명절선물까지 리베이트로 간주돼 최고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면서 업체들의 선물 인심은 주춤했다.
물론 당초 개정안에 포함된 명절선물과, 소액물품과 경조사비 등은 규제개혁위원회 권고에 따라 삭제됐지만 ‘통상적 수준’이라는 모호함을 남겼다.
즉 원칙적으로 대가성이 아니라면 큰 문제는 없다고 하지만 관련 기준이 모호해 각 제약사들은 적잖은 혼선을 빚어야 했다.
때문에 대다수 제약사들은 쌍벌제 이후 의사들에게 제공해 온 명절선물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거나, 그 규모를 대폭 줄였다. 아예 논란거리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럼에도 본사 영업부가 아닌 지역 영업지점 차원에서, 혹은 영업사원 개인 차원에서 성의 차원의 명절선물은 여전히 존재해 왔다.
예전처럼 값비싼 선물은 아니더라도 평소 친분이 두터운 의사들에게 마음이라도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비를 들여 명절을 챙겼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김영란법’으로 대변되는 부정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이 마저도 사라지게 됐다. 특히 교직원에 속하는 대학병원 교수들은 원천봉쇄 수준으로 차단됐다.
물론 5만원 미만의 선물은 가능하다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 병원 내부적으로도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이제는 교수들이 먼저 손사래를 친다.
서울 강북지역을 담당하는 A영업팀장은 “요즘은 선물을 들고 연구실에 찾아가는 것 자체가 민폐”라며 “성의를 표하려다가 오히려 의료진을 곤란하게 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토로했다.
명절 선물 금지령은 비단 영업사원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치료나 수술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려는 환자나 보호자들도 예년을 생각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더욱이 김영란법 첫 번째 처벌대상이 경찰관에게 4만5000원 짜리 떡을 보낸 민원인이었던 만큼 병원은 물론 의사들도 환자나 보호자들의 호의를 사전에 정중히 거절한다.
충남 천안게 거주하는 B씨는 “암환자인 남편을 완쾌시켜 준 교수님께 매년 감사의 마음을 전했는데 이번 설에는 할 수 없다니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료진도 마음이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C대학병원 교수는 “미덕으로 여겨지는 관습이 악습으로 색안경 씌어지는 추세가 안타깝다”며 “오해 소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모습이 개탄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