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국내 제네릭 의약품은 사용량 대비 전체 약품비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네릭 약가가 높게 책정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변지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정책연구부 부연구위원[사진 左]은 지난 14일 서울대 약대에서 열린 한국보건사회약료경영학회 전기학술대회에서 '국내 제네릭 현황과 약가제도 변화'에 대한 이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발사르탄 사태 이후 제네릭의 관리 시스템 및 약가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지속됨에 따라 청구자료 분석을 통한 제네릭 사용현황 및 다른 나라들의 제네릭 약가제도 등을 살펴보기 위해 추진됐다.
변지혜 부연구위원은 "캐나다의 특허 의약품 가격 관리기구(PMPRB)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제네릭 약가 수준은 1.56으로 OECD 평균 0.67보다 훨씬 높다"며 "멕시코, 칠레, 스위스에 이어 4번째로 제네릭 약가가 비싼 나라로 꼽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국내 제네릭 약품비 지출은 3위를 기록했지만 제네릭 사용량은 17위로 낮은 순위였다"며 "제네릭 사용량이 적은데 약품비 지출이 높은 것은 그만큼 국내 제네릭 약가가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방증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일본, 미국, 캐나다, 핀란드, 오스트리아, 스페인, 이태리, 프랑스, 독일, 영국, 호주 등의 선진국은 우리나라보다 제네릭 약가가 훨씬 낮았다.
정부가 제네릭 육성에 나선 까닭은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지만, 현재의 제네릭 약가는 '약가절감'이란 정책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영진 보건복지부 사무관은 "제네릭 활성화로 재정적인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12년 약가제도를 개편했다"며 "제도가 개선되면 제네릭 가격경쟁이 이뤄지면서 시장이 잘 기능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책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내 제네릭 약가가 이처럼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역설적으로 정부의 제네릭 활성화 정책이 제약사들로 하여금 가격경쟁에 나설 필요성이나 동기 부여를 막았다고 지적됐다.
변지혜 부연구위원은 "제네릭 가치는 오리지널과 비슷한 품질의 약을 싼 값에 쓰는 데 있지만, 자발적인 약가인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정부가 2012년 동일제제 동일 약가제도를 도입할 당시 오리지널 대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제네릭 품목의 자발적 약가인하를 기대했으나, 국내 제약사들은 오히려 53.55% 약가를 받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등재 품목 수 제한 없이 후발의약품에도 동일한 약가를 보장하는 제도나 기등재 의약품의 낮은 약가 제도 탓에 제네릭 품목 수는 대폭 증가했다. 게다가 약가가 싼 약이 아닌 비싼 약이 더 많이 팔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제네릭 시장에서 가격경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제네릭 등재순서 1~20위까지의 시장 점유율을 보면 2015년 91.5%, 2016년 91.2%, 2017년 89.9%, 2018년 73.5%로 집계됐다.
변 부연구위원은 "동일제제 동일약가 도입 이후 제약사들의 제네릭 전문 계열사 설립이 증가했다"며 "이전에 시행된 계단식 약가제도 하에 등재된 제네릭 품목 약가는 동일제제 동일가격제 내의 평균 약가보다 낮은 경우가 있다보니 제약사들이 계열사를 설립해 계열사의 새 품목으로 신규 등재해 높은 약가를 받는 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등재 3년이 경과된 품목들을 대상으로 약가 변화를 살펴본 결과, 단위 약가 또는 등재 품목 수에 관계없이 약가가 유지됐다"며 "여러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약가 사후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제네릭 우대 약값으로 번 돈 신약 개발 등에 안쓰이고 업무 외주화 등 사용"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들도 제네릭 약가제도에 대해 고민 중이다. 일본의 경우 신규 제네릭 품목 수가 10개 초과 시 일괄 인하한다. 기등재 품목 중 가장 비슷한 품목을 기준으로, 산정 금액의 절반을 할인한다.
캐나다는 여러 주 정부가 공동으로 신규 제네릭 약가를 자국 시장 내 이용 가능한 품목 수에 기반해 차등적으로 산정하고 있다. 제네릭 판매 제약사 수가 많으면 약가 인하 폭이 더 커진다.
북유럽의 경우 최저가 대체의무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싼 약가를 부르는 제약사의 제네릭을 선택한 뒤 시장 독점을 허용한다. 단, 의사와 약사는 제네릭 품목을 선택할 수 없다.
변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제네릭 약가를 보전해줬지만 이를 통해 충전한 총알이 신약 개발에 쓰이기보다 는 제조, 허가, 영업 등 주요 업무의 외주화로 이어졌다"며 "한국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제약사들이 연구개발비증가율은 2009~2012년 24.60%에서 2013~2017년 9.68%로 감소한 데 비해 판관비는 6.17%에서 6.52%로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심평원의 주요 역할은 환자를 대신해 품질이 우수하고 저렴한 의약품을 구매하는 것"이라며 "국내 제네릭의 경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며, 제약업계는 제네릭의 신뢰도 회복을 위한 품질관리 노력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같은 심평원 연구결과에 대해 제약업계는 "제네릭 약값이 높지 않다"고 반박했다.
김기호 CJ헬스케어 상무는 "제네릭 약가가 오리지널과 차이가 크지 않다고 심평원이 발표한 내용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며 "이 같은 결과를 산출해 내는 데 쓰인 원자료(Raw data)가 어떤 것인지, 여러 가지 사항이 고려돼 비교가 이뤄졌는지 등의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한 가지 더 짚고 넘어 가야 할 부분은 제약사들은 정부가 공동생동 규제 완화, 일괄인하 약가제도 등을 도입하려고 할 때 우려하며 반대했었다. 하지만 설득하기 힘든 근거를 갖고 제네릭 활성화가 재정절감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하며, 제약사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우지 말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박성민 HnL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분명한 것은 가치 있는 제네릭이 더 많이 사용되려면 그런 제품을 만드는 제약사가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며 "영업력이 있거나 관계가 좋은 제네릭이 많이 팔라는 것이 아니라 품질이 좋고 저렴한 품목이 더 많이 팔려 수익이 나는 구조로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