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와 전임의에 이어 의대교수들의 진료현장 이탈이 가속화 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공백 최소화를 위해 꺼내든 정부의 조치에 일선 병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의사들을 진료실 밖으로 내몬 주체가 정부임에도 그 책임을 병원에 전가하는 행태라는 지적과 함께 가뜩이나 심화되는 경영난으로 걱정이 큰 병원들을 자극하는 행보라는 반응이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등에 공문을 보내 주치의 사직 및 휴직에 대한 일선 병원들의 적절한 조치를 촉구했다.
주치의 사직·휴직 등으로 진료 변경사항이 발생하는 경우 환자에게 피해가 없도록 병원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또한 병원들이 진료와 관련한 변경사항 및 사유를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진료계획 또는 주치의를 변경하거나 타 의료기관 안내토록 했다.
특히 “환자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진료계획 변경이 없는 갑작스런 진료 중단 또는 진료 예약 취소는 ‘정당한 사유없는 진료거부’에 해당할 수 있음을 유의하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병원들은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에 항거한 의사들의 이탈 책임을 병원에 전가시키는 것도 모자라 그에 응하지 않을 경우 ‘처벌’까지 운운하는 것은 명백한 ‘압박’이자 ‘겁박’이라는 지적이다.
전공의들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최근에는 의대교수들의 ‘주 1회 휴진’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병원들이 알아서 진료공백을 메우라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처사라는 반응이다.
한 대학병원 기획조정실장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에 직원들 월급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번 정부의 행보는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리는 격”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정부가 오히려 피해자인 병원을 윽박지르는 형국이 개탄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대학병원 원장은 “이미 남아 있는 의료진을 중심으로 진료공백 최소화를 위해 노력중”이라며 “이러한 협박성 공문에 힘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부와 의료진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책 실패의 뒷수습은 늘 병원들 몫이었다. 정부의 그 행태가 여전하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그동안 굵직한 보건의료 이슈 이후에는 병원들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양상이 지속돼 왔다.
의료기관 화재 사건을 계기로 스프링클러 등 소방설비 기준이 강화됐고, 메르스 등 감염병 사태 직후에는 병상 이격거리, 음압시설 의무화 등의 조치가 내려졌다.
지난해에는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각 대학병원에 엄포성 공문을 보내 의료진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복지부는 당시 공문에서 ‘전문의 부재 등을 이유로 24시간 응급환자 진료의무를 위반할 경우 시정명령, 재정 지원 중단, 수가 차감 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병원들을 압박했다.
한 상급종합병원 고위 관계자는 “이번에도 정부는 정책 실패 책임을 병원에 전가하려 한다”며 “주치의 사직과 휴직 원인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그 책임은 또 병원 몫”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무리한 정책 추진만 아니었더라도 정상 작동되고 있을 진료현장이었다”며 “병원들은 현재 존폐를 거론할 정도로 사상초유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