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업체도 몰랐던 '무조건 프레임' 16년
원칙인줄 알았던 '신의료기술평가제'…"신청 안해도 시술‧청구 가능"
2023.06.14 12:36 댓글쓰기



사진제공 연합뉴스

[기획 중] ‘신의료기술평가제’라는 중복적이고 강도 높은 규제로 혁신적 제품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사장되거나 환자들의 치료 기회가 제한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루트로닉이 개발한 ‘선택적 망막 치료술’은 세계 최초의 국산 기술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신의료기술평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최초’ 타이틀을 놓친 대표적 사례다.


회사는 세계 최초로 레이저 기술을 이용한 황반변성 치료기술을 개발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 후 신의료기술을 신청했지만 임상적 근거 부족을 이유로 번번히 탈락했다.


해당 기술은 2010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식경제기술혁신사업으로 개발된 장비를 활용해 개발됐지만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세계 최초 기술이었음에도 신의료기술평가에 좌절하며 국내 판매가 어려워졌고, 해외 진출의 꿈도 접어야 했다. 그러는 사이 호주에서 동등제품을 제조하는 업체가 판매를 시작했다.


큐렉소 수술보조로봇을 이용한 척추수술의 경우 신의료기술평가 실패 후 미국 FDA 문을 두드려 세상 빛을 본 사례다.


척추 유합술 및 고난이도 척추수술에 활용도가 높은 이 기술은 총 3차례 신의료기술평가에서 실패하며 시장 진입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해당 회사는 FDA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아 현재 미국에서 판매 중이다. 외국 제품에 맞설 수 있는 국산 기술이 국내가 아닌 해외 진출이 우선시 된 아이러니다.


신의료기술평가는 통과했으나 환자에게 치료 기회가 제한된 사례도 부지기수다.


시지바이오의 소화기 내시경하 분말지혈제를 이용한 지혈술은 그 가치를 인정 받아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했지만 2차 지혈술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토록 조건이 걸렸다.


제한된 적응증과 연구 개발비가 고려되지 않은 낮은 수가가 책정되면서 함께 개발된 분사기 또한 치료재료로 인정받지 못해 결국 사업화에 실패했다.


국립암센터는 되고 연세의료원은 안되고


이러한 상황은 의료계도 산업계도 몰랐던 ‘무조건’ 프레임에 기인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그동안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시술을 할 수 없거나 하더라도 환자에게 비용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정설이었다.


병원과 보험사가 법정공방도 바로 이 부분에서 비롯됐다. 병원들은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지 않은 시술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보험회사와 번번히 다툼을 벌여야 했다.


하지만 이는 ‘무조건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해야 한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이라는 지적이다. 평가제 도입 이후 무려 16년 동안 국가적인 오해가 원칙으로 적용돼 온 셈이다.


의료계 및 법조계 전문가들은 의료법과 국민건강보험법 등을 면밀히 들여다 보면 신의료기술평가는 무조건 받아야 하는 의무사항이 아닌 선택사항임을 강조했다.


그 근거로 ‘신의료기술이라 함은 새롭게 개발된 의료기술로, 복지부 장관이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명시된 의료법 제45조 3항을 지목했다.


특히 ‘평가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라고 명시돼 있음에도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은 ‘평가한 의료기술’을 신의료기술로 잘못 안내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연구원과 심평원의 주장대로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신의료기술에 대한 시술을 금지할 수 있는 법률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의료법 제56조 2항에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은 신의료기술의 경우 시술 자체가 아닌 ‘광고’를 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는 게 전부다.


결국 신의료기술평가 없이도 시술할 수 있고 비용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최초로 중입자가속기를 통해 암치료의 새시대를 예고했던 연세대학교의료원의 경우 신의료기술평가가 늦어지면서 당초 예정 보다 한달 늦게 치료기를 가동해야 했다.


반면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암센터는 지난 2007년 신의료기술평가 없이 양성자치료를 시작했다. 모르면 못하고 알면 할 수 있는 게 신의료기술평가의 실체였던 셈이다.


제도 맹점 바로잡은 법봉…“진료비 지급하라”


결국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기 전에는 관련 시술을 할 수 없거나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은 전부 오해였다는 얘기다.


사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관련기관인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주장과 달리 법조계나 다른 부처에서는 이러한 신의료기술평가제도의 맹점을 지적해 왔다.


지난 2012년 대법원은 요양급여 목록 또는 비급여 목록에 오르기 전의 신의료기술 등은 모두 비급여 대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2020년 서울지방법원 역시 신의료기술평가 전에도 신의료기술을 시술할 수 있고, 그에 관한 진료비도 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맘모톰절제술이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하자 실손보험 회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지만 법원은 환자 손을 들어줬다.


이러한 판결에 기초해 금융감독위원회는 보험업계에 신의료기술평가 전 시행된 신의료기술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잘못된 오해 탓에 십 수년 동안 환자들은 신의료기술 시술을 받지 못했고, 의료계는 신의료기술의 시장 진입을 원천봉쇄 당했다.


한 중소병원 원장은 “의도성 여부를 떠나 정부의 잘못된 프레임으로 인해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계의 자유권이 오랜기간 침해 당했다”며 “이는 명백한 불법 규제”라고 힐난했다.


이어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금이라도 신의료기술평가와 무관하게 비급여 대상 진료를 할 수 있다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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