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이슬비 기자] “병원약사는 약대에서 배운 지식을 가장 많이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이다. 내년 약대가 통합 6년제로 개편되고 2023년 4월부터는 전문약사가 국가자격이 된다. 이 흐름 속에서 약사는 의사·간호사 등 타 전문가처럼 전문성이 고도화되고 직능이 확대될 것이다. 한국병원약사회는 전문약사제도를 안착시키는 데 주력하겠다.”
최근 동네약국을 넘어 제약사·학계·공직·연구·의료기관 등 약사들의 사회 진출이 다양해지고 있는 가운데 병원약사가 인기 직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병원약사들의 처우 개선 및 전문성 확대를 꾀하며 출범한 병원약사회가 금년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새내기 약사들에 병원 인기, 생생한 교육·전문성 발휘 가능 등 장점"
병원약사회를 이끌고 있는 이영희 26대 회장은 데일리메디와 만난 자리에서 “병원약사가 새내기 약사들이 경험을 쌓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30세 미만 새내기약사들이 첫 직업으로 병원약사를 선호한다고 한다. 의료기관은 다양한 질환에 대한 약물치료학을 배울 수 있는 생생한 교육 현장이고 의사·간호사 등 타 직종과 다학제진료팀으로 활동하며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어 타 직역과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소 몇 년 병원약사로 근무 후 약국·제약사 등으로 이동하더라도 병원에서의 임상지식·경험이 약사로서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병원약사는 계속 늘고 있다. 대한약사회 회원 신상신고통계에 따르면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약사는 ▲2010년 2989명 ▲2012년 3164명 ▲2014년 4288명 ▲2016년 4933명 ▲2018년 5415명 ▲2020년 5448명 등으로 매년 증가했다.
전문약사제도 법제화, 약사 위상 강화 큰 기여
2000년대 이후 의료기관 내 다학제진료팀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지닌 전문약사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영희 회장에 따르면 미국·일본 등에서는 이미 전문약사제도가 시행되고 있고, 미국은 전체 약사의 15.4%, 일본은 15.7%가 전문약사 자격을 보유 중이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 국내보건의료인력의 세분화·전문화 추세에 맞춰 병원약사회는 지난 2010년 전문약사자격시험을 도입해 운영했으며, 현재까지 1416명의 전문약사를 배출했다.
자격 분야는 감염·내분비질환·노인·소아·심혈관계질환·영양·장기이식·종양·중환자 약료 및 의약정보 등이다. 이 같은 전문약사자격을 국가자격으로 인정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지난해 4월 통과돼 오는 2023년 4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이영희 회장은 병원약사회의 주요 성과로 전문약사제도 법제화를 꼽기도 했다. 그는 “전문약사가 국가자격이 된다는 것은 의사·간호사 등 타 전문가단체 뿐 아니라 국회·정부가 전문약사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어 “병원약사 뿐 아니라 개국 약사 및 약사 면허를 취득한 모든 약사들이 원하면 전문약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며 “전문약사제도 범위가 전체 약사사회로 확대되므로 미래지향적인 약사 역할 모색, 약사의 위상 강화, 약사 직능 발전 등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약사제도 법제화를 이끌어낸 병원약사회는 해당 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금년 3월 병원약사회는 대한약사회·한국약학교육평가원과 공동 주관으로 ‘전문약사제도 시행 준비를 위한 TF’를 만들고 한국산업약사회·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유관단체와 회의, 보건복지부와의 연석 회의 등을 진행했다.
현재 보건복지부 용역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내년까지 전문약사제도 세부 시행방안을 담은 약사법 시행령·시행규칙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전문약사자격시험 가운데 인기 분야는 지난 2017년 신설된 노인약료다. 286명이 응시해 244명이 합격한 금년도 시험에서 노인약료분야는 응시인원 98명, 합격자 86명으로 가장 높았다.
이 회장은 “인구고령화에 따라 노인환자 비중이 늘고 의료기관에서도 노년내과·노인클리닉이 신설되고 있다”며 “의료서비스가 양·질적으로 확대되면서 노인환자 대상 다제약물 관리와 환자특성에 맞게 전문약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환자 수·업무량에 따른 구체적 병원약사 인력기준 마련 필요
약사들이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는 늘고 있지만 이들이 활동할 무대가 적은 것이 사실이다. 이 회장은 현재 의료기관들이 약사 인력 최소 기준만 충족하고 있어 궁극적으로 환자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38조2에 의거, 상급종합병원 및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은 입원환자 수 등을 고려해 약사 인력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약사 정원을 ‘연평균 1일 입원환자를 30명으로 나눈 수와 외래환자 원내조제처방전을 75매로 나눈 수를 합한 수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300병상 미만 종합병원은 1인 이상의 약사만 확보하면 된다. 또 병원·치과(30병상 이상)·한방병원 등은 100병상 이하, 요양병원은 200병상 이하일 경우 주당 16시간 이상 시간제 근무 약사를 둬도 무방하다.
이 회장은 “최저 기준의 정원만 정해져 있고 환자 수·업무량에 따른 구체적 인력기준이 없다. 이에 시간제 약사로 대체 가능한 병원·요양병원은 인력 공백이 발생한다”며 “모든 의료기관에 정규 약사를 최소 1인 이상 배치해야 하며 환자 수·업무량에 따른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병원약사회 26대 집행부는 ‘병원약사 업무 재평가를 통한 인력기준 지표개발 TF’를 신설하고 적정 인력 지표를 개발했다. 향후 각 기관 기준 수립에 참고가 되도록 용역 연구를 실시한다는 설명이다.
환자 입원부터 퇴원까지 관리, 입원환자 수가 신설 필요
병원약사들의 수가 범위 확대도 과제다. 현재 ‘다학제진료팀에 의한 환자 치료 성과 향상’에 대한 수가가 책정돼 운영되고 있지만 ‘입원환자 약제관리제도’ 신설이 시급하다는 것이 병원약사회측 입장이다.
이영희 회장은 “우리나라는 약사가 입원 병동별로 책임지고 관리하는 제도가 없다”며 “환자 입원 첫날부터 퇴원까지 자가약품 식별 및 알레르기·부작용 이력여부 확인, 약품 관리·조정, 복약·투약 지도 등의 행위가 있어야 환자가 가장 안전한 약물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약사들의 활동이 활발한 일본의 경우, 병동에 전담약사가 배치되면 이들이 포괄적 약물 검토·약제를 관리한다는 의미로 정액 수가를 지불한다”며 “국가 입장에서도 재입원율 감소 및 약품 사용량 절감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코로나19 유행 속에 병원약사회를 이끌게 된 이영희 회장은 선거 당시 공약 중 ‘안전성 강화’ 사업 일환으로 코로나19 백신관리사업 의료기관인증기준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회장은 “연초부터 코로나19 백신 전국예방접종센터에 약사인력을 배치해서 약사에 의해 안전하게 백신 접종이 이뤄지도록 노력했다”며 “백신관리 매뉴얼·백신 비교자료·위탁의료기관 백신관리 담당자 영상 교육자료 제작 등을 진행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