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의료계 역시 항상 갈등에 봉착한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각 직역별로 나누는 형태에서 비롯된 구조는 서로를 동반자가 아닌 경쟁자로, 바운더리(boundary) 침해라는 예민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최근 불거진 현대의료기기 공방전을 봐도 그 심각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간 지속된 직역 갈등이 결국 과별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 병원 내에서 근무하는 의사들끼리도 진료권 경쟁의 시대를 맞게 됐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갈등, 보다 세부적으로 이 문제를 들여다봤다.
●의사 vs 한의사, 의료기기 갈등의 골 악화일로
서울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재활의학과 개원의 A씨는 같은 건물에 위치한 한의원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층 하나만 내려가면 보이는데 아직 인사도 나눈 적이 없다. 그 한의원은 인터넷을 통해 허위·과대광고를 하고 있다. 마치 오십견의 대명사처럼 여겨진다.
몇 년 전부터 환자를 계속 뺏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매년 진료인원이 줄어든다. ‘상생’이라는 말은 이미 강을 건넜다.
보다 치열한 수를 꺼내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뒤늦게 마케팅 회사에 연락을 취해봤지만,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다보니 포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A씨는 동일한 증상을 두고 다르게 해석해야만 하는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전히 의료현장에서는 과학적 근거가 최우선이 돼야 한다. 전문의 타이틀은 환자안전을 생각하는 보증수표라고 여겨져야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나저나 연일 뉴스에서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한 내용이 보고되고 있다.
한의사협회장은 초음파 골밀도 측정기기를 시연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허가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점점 줄어드는 환자로 골치가 아픈데 현대의료기기까지 허용된다면 병원을 접어야할지도 모른다. 오늘도 아래층에 있는 한의원쪽을 흘깃 쳐다보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치과의사 對 의사, 보톡스 시술권 확보 충돌
서울 소재 치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 B씨는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치과 보톡스는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주장에 수심이 깊어졌다.
통상 보톡스는 치과계에서 주로 사용했기에 일부 환자를 대상으로 미간에 보톡스를 시술한 경험이 있다. 그렇게 문제될 부분은 없다고 생각했다. 법원도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지난 2011년 한 치과의사가 환자 2명에게 미용 목적으로 시행한 시술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 법원으로부터 1심과 2심에서 벌금 100만원의 선고 유예 처분을 받았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진행된 상고심 공개변론에서도 재판부는 “전문적인 문제에 대해 사법기관에 판단을 구해야 할 정도로 공익이 있는 문제인지 의문”이라고 질문을 던졌다.
C씨는 보톡스 관련 보도 및 재판을 지켜보면서 치과계와 의료계가 판이 갈려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에 다소 불쾌감이 느껴진다. 의료법에 명시된 ‘치과진료’는 구강악안면외과, 구강내과, 치아교정과, 소아치과에 해당하며 이 중 ‘구강악안면외과’가 구강과 턱, 얼굴 부위 등 안면 전체를 다루고 있어 법적 근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간 이갈이, 턱관절 치료 등 목적으로 보톡스를 사용했고, 치과약물 중 보톡스보다 위험성이 높은 약물도 큰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다.
밤잠을 설치며 공부했던 대학시절부터 일반적 의과교육과정 보다 더 보톡스에 대해 고민해왔다는 생각에 설움이 복받친다.
C씨는 대법원이 의료계의 손을 들어준다면 안면부 진료가 금지될 테고 진료 사각지대가 발생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무면허 의료행위’로 치과의사를 낙인찍는 의료계의 모습이 불편하기만 하다.
●흉부외과 vs 심장내과, 스탠트 팽팽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흉부외과 전문의 C씨는 이른바 ‘명의’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의료현장에서 20여년을 버텨왔고, 그 치열함이 흉부외과의사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그에게도 숨길 수 없는 아픔이 존재한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스텐트 협진’ 고시와 관련 심장내과와의 마찰이다.
심장내과 영역을 침해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스텐트 시술은 타 국가와 비교해도 너무 많다. 오남용을 줄이는 게 해답인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다. 협진체계가 필요한 이유는 환자 선택권을 보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말들은 많았지만, 결국 심장내과의 승리다.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르면, 흉부외과와 심장내과는 협진을 하라고 규정이 만들어진 상태다. 단, 강제규정이 아니라서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협진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결국 복지부는 심장내과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심장내과와의 갈등은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됐다. 마찰의 골이 깊어지니 협진을 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힘없는 비인기과의 설움이 깊어진다.
다른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심장내과 교수 D씨는 흉부외과의 의견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심장내과 죽이기’, ‘흉부외과 살리기’를 위한 제도를 설계했고 이것이 바로 스텐트 협진 의무화였다는 의혹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결국 유예로 결정됐지만, 그 이면에 담긴 ‘비인기과 살리기’는 과도한 정책 설계였다는 판단이다.
의료현장에서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간 의견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협진을 기다린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생긴다.
일분일초가 시급한 중증환자는 빠른 결정이 관건인데 이 시기를 놓쳐 심근경색 등으로 인한 사망이 벌어지면 책임은 누가 져야 할지 장기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D교수는 환자의 선택권 보장을 위해서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흉부외과가 스텐트 시술을 계속해서 반대할 경우 환자는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하고 또 시간은 늦어진다. 환자의 진료선택권을 위해서라도 협진의 강제성은 큰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 협진의 또 다른 문제점은 흉부외과 전문의가 없는 중소병원은 스텐트 시술을 아무리 잘해도 대형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같은 환자를 두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심장내과와 흉부외과의 갈등은 각자의 논리로, 제도적 탓으로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의료현장에서 수시로 맞닥트리면서도 말이다.
●비뇨기과 對 영상의학과, 위축되는 비인기과 설움
국립대병원 비뇨기과 과장 E씨는 오늘도 고민이 많다. 할 일은 많아지는데 후배들은 씨가 말랐다. 물론 답은 정해져있다. 비뇨기과에 와봐야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배들의 잘못인가, 홀로 생각에 잠긴다.
외과나 흉부외과도 수년 째 기피과로 낙인이 찍혔지만, 비뇨기과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 전공의들이 들어오면 가산수가를 반영해 월급을 주니까 전공의들도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다는 의견도 들린다. 정부 차원에서 차별을 하고 있는 것 같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답한 마음이 든다. 국내외 연구보고서를 수차례 들여다보면,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중요한 과로 인식되는 곳이 바로 비뇨기과이다. 그런데 타 과에서 자꾸 비뇨기과의 독점적 권한을 침해하려고 든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영상의학과 의사가 괜히 괘씸하게 보인다.
ESWL(체외충격파쇄석술)은 비뇨기과 전문의만 수행하는 것이 옳다. 예민하고 정교하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영상의학과에서 우리의 권한을 공공연하게 침범하고 있다. 일부는 법정싸움까지 가서 승전보를 울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줘야하는데 복지부는 묵묵부답이다.
실제로 복지부는 ESWL을 비뇨기과 전문의로 한정시키겠다는 내용의 연구용역을 진행했고, 이미 지난해 말 결론을 짓기로 했으면서 뒤를 미뤘다. 영상의학과 쪽에서 복지부에 로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진실여부는 모르겠으나 의혹은 계속 든다.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선배들은 후배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싶다. 타 과에서, 그리고 정부에서 비뇨기과 고유 권한을 뺏고 있는데 더 강한 목소리를 내고 싶다. 그런데 아직은 힘이 없다. 그래서 한숨이 다시 나온다.
이처럼 각자의 직역에서 또 같은 직역에서도 다른 과별로, 점점 세분화되는 ‘침해’의 문제는 좀처럼 그 간극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또 급여와 비급여 문제에서 수가결정 과정으로 연계된 모든 문제는 풀리지 않고 얽혀있다.
사실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건당국의 신호정리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현실은 일선 의료인들의 한숨을 자아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