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병원은 손 털고 대학병원은 답답 '백내장 수술'
수술실 폐쇄하는 개원가·부분마취 권유하는 교수 ‘자괴감’
2014.01.06 17:55 댓글쓰기

[기획 4]2011년 국내 수술건수 1위를 차지할 만큼 빈번한 질환인 백내장이 포괄수가제에 묶이며 안과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미 개원가에서는 백내장 수술을 하나 둘씩 포기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동네에서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백내장 수술을 하기 위해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가능성도 농후하다.


또한 중증·응급 환자들이 몰리는 대학병원 역시 포괄수가제에 손·발이 묶였다는 자괴감을 내비치고 있다. 


포괄수가제 시행 이후 개원가에서는 백내장 수술을 시행해온 병원이 수술실을 폐쇄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10여년 넘게 백내장 수술을 시행해 온 서울 소재 A 안과의원에서는 올해 7월부터 더 이상 백내장 수술을 하지 않는다. 한 달에 5~10건 시행되는 수술로는 기계 소모품 및 인건비를 충당하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수술실 폐쇄를 결정한 A 안과의원 원장은 “수술을 하려면 진료보조 이외에 수술을 돕는 간호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또한 수술에 들어가는 재료는 수정체를 비롯해 7만원~10만원가량 하는 점탄물질(Healon) 등 소모품이 많다”며 “수술비용만 놓고 따지면 적자는 아니지만, 수술에 필요한 재료, 인력비용 등을 고려하면 수술을 하는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실제 수술을 중단한 이후에는 간호사 1명을 정규직에서 오전에만 근무하는 시간제로 전환했다. 병원 운영을 위해 퇴사를 권유하려 했지만, 가족같이 일해 온 간호사를 하루아침에 병원 밖으로 내쫓을 수 없어 마련한 고육지책이다.


또한 수술을 그만뒀지만 안과의사로서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그는 “눈이 침침한 고령의 환자들이 와서 수술을 하고 ‘선생님 덕분에 잘 보인다’고 말해줄 때 안과의사로서 보람을 느꼈다”며 “이제는 ‘왜 수술 안 하냐’는 질문에 미안하다는 대답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수술실 폐쇄는 A 안과의원만의 극단적인 결정이 아니다. 앞서 대한안과의사회가 회원 301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7%에 해당하는 21명이 수가인하 사태 후 백내장 수술실을 폐쇄했다고 답한 바 있다.


이들은 수술실 폐쇄 원인으로 ‘안과의사로서의 자부심이 흔들려서’,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서’, ‘환자 감소’ 등의 이유를 들었다. 백내장 포괄수가제가 향후에도 수가 개선 없이 시행되는 이상 수술실 폐쇄는 심화될 것으로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재 백내장 수술을 시행하고 있는 곳조차도 난이도 높은 수술에는 고개를 젓는다는 것이다.


서울소재 B 안과병원에서는 백내장 수술을 원하는 환자에게 녹내장, 당뇨병 등의 질환이 있거나 환자 나이가 고령인 경우 대형병원에 가길 권유하고 있다.


B 안과병원 원장은 “수술을 하는데 위험요소가 있다면 웬만해서는 다른 병원으로 보낸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수술을 하다가 응급상황이 생기면 추가 수술을 실시하거나 검사를 해야 하는데, 백내장이 포괄수가제로 묶여 있는 이상 나머지 하위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수가를 받을 수 없다”며 “이익을 남기려는 것이 아니라 의료행위를 하는데 적자가 난다면 어떤 의사가 병원을 경영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했다.

 

대형병원 몰리는 환자…손·발 묶인 교수들


이 같은 개원가의 수술실 폐쇄 및 고위험 환자 수술 기피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수술행위 자체로 수익이 나지 않는 포괄수가제에서 백내장 수술에 사용되는 고가의 장비에 투자를 할 병원이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대한안과의사회 김대근 회장은 “새로 개원하는 안과병원들은 애초부터 고가의 수술기계를 살 생각을 못 한다”며 “기존 병원들 역시 수술기계가 고장 나거나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경우 투자를 할 수 있겠느냐. 결국 지금까지 안과 의사들이 투자하고 노력해서 발전시킨 기술은 후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 6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포괄수가제 청구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포괄수가제가 의무화 된 의원과 병원급 의료기관의 백내장 수술 건수가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포괄수가 의무화 전인 2012년 상반기 19만5085건에 이르던 백내장 수술은 제도 시행 후인 2012년 하반기 15만3920건으로 4만여 건이 줄어들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환자는 대형병원으로 몰리지만, 대형병원이라고 해서 포괄수가제로부터 자유롭게 의술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7월 포괄수가제가 종합병원급 이상에도 의무 시행된 이후 대학병원 교수들은 “손·발이 묶였다”고 토로한다.


먼저 수술 전 환자를 마취하는 것부터 제약이 따른다. 전신마취, 부분마취에 들어가는 실제 비용은 30만원가량 차이가 나지만, 백내장 수술에는 동일한 수가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전신마취와 부분마취 선택 시 병원재정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대학병원 안과 교수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서울 소재 C 대학병원 안과 교수는 “병원에서 전신마취 대신 부분마취를 하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마취 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전신마취를 할 경우 병원 재정에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누이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백내장 수술의 경우 환자가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얼마든지 부분마취가 가능하지만, 어린아이나 치매 혹은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의 경우 전신마취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눈 수술은 굉장히 예민해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은 필요하면 당연히 전신마취를 하지만, 이런 수가체계가 지속된다면 결국 의사들은 환자에게 부분마취를 하자고 하거나 수술 자체를 하지 말자고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학병원의 경우 중증도가 높은 환자와 응급환자 등이 많다는 점에서 예외사항을 둬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 소재 D 대학병원 교수는 “상황에 따라 수술법과 이에 필요한 재료들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경우엔 예외사항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병원 적자·환자 불편 야기하는 맹점 드러나


이외에도 실제 포괄수가제 때문에 병원이 적자를 보거나 환자가 불편을 겪는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한안과학회는 지난 7월 포괄수가제가 상급병원으로 확대된 이후 드러난 문제 점검에 나섰다.


안과학회에 따르면 시력이 저하된 만성 폐쇄각 녹내장 환자의 백내장 수술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해 수술을 진행하다가 병원이 큰 낭패를 봤다.


해당 병원은 수술과정에서 모양체 소대 해리가 120도 정도 범위에서 관찰돼 ‘안정링(Tension ring)’을 삽입해 전낭을 안정시키는 시술을 진행했다.


수술은 무사히 마무리됐지만 문제는 수술이후 비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해당 수술은 포괄수가제 대상으로 수술 중 사용한 안정링에 대한 원가 자체도 보장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대한안과학회 관계자는 “안정링을 삽입하지 않고 ‘인공수정체 공막고정술’을 시행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합병증 및 수술 후 시력회복 측면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환자의 만족도를 고려해 시행된 수술은 고스란히 병원 손실로 이어진 것이다.


또한 포괄수가제에서는 타과진료 및 동시 추가수술에 대한 별도청구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환자불편으로 이어졌다.


기존에는 다른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에게도 백내장 수술을 함께 진행해왔다. 환자가 입원 중 안과진료는 물론 수술과 경과확인까지 끝내고 퇴원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포괄수가제에서는 백내장 수술과 함께 시행된 하위수술 및 진료에 대해서는 수가 보장이 안 돼 병원은 동시수술을 꺼리게 된다. 실제 폐쇄성 호흡기 질환으로 내과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환자는 병원에 있을 때 백내장 수술을 받으려 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이 내과와 안과 치료 수가를 보장받기 위해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 퇴원하고, 다시 외래접수를 통해 진료를 봐야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평소 지방 거주로 통원이 힘들었던 환자는 퇴원 후 통원해야 한다는 병원 측의 설명에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안과학회 관계자는 “타과 입원 중 백내장 수술을 하는 경우 수술 후 모든 치료비를 백내장 수술비로 묶어버리는 것은 환자의 타과 치료 및 협진 치료에 있어 심각한 불합리 및 환자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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