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대중성 두마리 토끼 잡은 '국민 주치의'
오한진 교수, 의학한림원 정회원 선정…'고마운 환자들에게 편안한 의사 되고 싶어'
2014.04.09 22:30 댓글쓰기

각종 TV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국민 주치의’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스타의사 제일병원 가정의학과 오한진 교수. 그런 오 교수가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으로 선출됐다. 오 교수는 그동안 골다공증, 비만, 갱년기, 노인의학 등의 분야에서 9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10여편의 교과서 및 서적 집필에 참여해 왔다. 무엇보다 의학한림원은 의학, 치의학, 약학, 간호학, 보건학 등 관련 전문분야 최고 석학들로 구성돼 있는 단체로, 최고 권위를 가질 뿐만 아니라 엄격한 심사 기준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선출 의미가 남다르다. 방송, 언론 등에서 종횡무진 활약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가 가정의학 학문 분야에서도 ‘이름 값’을 톡톡히 하게 된 셈이다.


오한진 교수는 “의학한림원의 정회원으로 선출돼 뿌듯했다”면서 “한림원 같이 권위 있는 전문가 단체에서 가정의학 비중이 좀 더 커질 수 있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내 데이터·아이디어로 쓰는 논문 재미있어"

 

의학한림원은 SCI 등 전문 학술지 게재 논문을 비롯 전문 학술저서, 학술지 편집활동 등을 점수화해 심사하고 있으며, 회원 수도 한정돼 있어 진입 장벽이 높다.


그는 “사실 가정의학 학문에서 SCI 논문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 “극단적으로 임상 3상에 참여해 본 교수가 드물 정도다. 좋은 기회로 인해 임상 3상과 국가과제 등에 참여하면서 SCI 논문을 쓸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한진 교수가 논문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지난 9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처럼 의료보험 제도가 정착되기 전 하루 100명의 환자를 봤던 시절이다.


오 교수는 “의료보험이 정착되기 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하루에 환자를 100명 이상 봤다. 매일 환자 데이터를 개인 노트북 엑셀에 넣어뒀다”면서 “아이디어가 생길 때마다 통계 프로그램을 돌렸다. 전산실에 요청하지 않아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작업이었는데 당시 큰 즐거움이었다. 1년에 10편씩 쓰는 등 논문에 재미가 붙은 때”라고 회상했다.


이어 “당시에는 SCI라는 개념도 없었고 그저 무작위로 논문을 많이 써서 냈던 사람으로 학회 내에서도 유명했다”며 “당시 내 데이터를 갖고 논문을 쓰는 재미가 있었다”고 전했다.

 

가정의학의사 불구 정부과제·협업 등 열정적 연구활동


특히 레지던트 시절부터 새로운 분야에 대한 갈망이 컸던 오한진 교수는 일차의료학회 및 임상노인의학회 등의 창립 멤버로서 학회 학술 활동의 저변을 키웠다.


그는 “어떤 방향으로 새로운 분야를 도전해볼까 고민하다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학회 창립에 나섰다”면서 “당시 학회 활동은 학문적 발판이 됐다. 학회에서 한 번 발표할 때마다 엄청난 공부가 요구됐기 때문이다. 한 제목을 주면 정리해야 할 것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보니 모두 내 공부가 됐던 것”이라고 피력했다.


대전지역 병원 재직 시절 골다공증, 갱년기 분야 등을 공부하고자 토요일 오전 서울에 올라와 내내 공부하고 오후에 다시 내려가 진료를 보는 식으로 발품을 팔거나 사서 고생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학문에 대한 열정과 연구 아이디어 덕분에 타 분야와의 협업과 연구 및 정부과제 제안 등에 있어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일 수 있었다.


오한진 교수는 “질병관리본부에서 매년 실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에 골다공증 항목을 넣는데 작은 역할을 했다”면서 “이를 통해 3~4년 데이터를 축적하니 우리나라 골다공증에 대한 기본 자료가 나왔고 여기서 많은 논문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과정 중에 사선이 끼여 맘고생도 했지만 이것을 극복하고 즐거움 속에 일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마무리된 고혈압약 3상 임상에도 참여한 바 있는 그는 “가정의학 교수가 참여한 것에 의아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으나 워낙 환자 등록을 많이 하다 보니 다들 놀라는 분위기였다. 앞으로 가정의학 분야의 여러 연구에서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방면 사람들과 만나 가정의학 저변 확대 기여하고 싶어”


방송에 자주 노출되면서 오한진 교수는 스타의사로 거듭났지만 한편으로는 꼬리표가 돼 편견과 마주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쉽고 편안한, 인간적인 의사’로 대변되는 본인만의 소신을 풀어냈다.


가정의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싶었던 마음과 함께 그동안 의사 사회가 소홀했던 국민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의료인을 앞서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외래에 항상 의대생들이 뒷자리에 앉아 있다. 학생들에게 외래 현장에서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은 어떻게 치료하고 약을 무엇을 쓰는지가 아니다. 의사-환자간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 나가는지, 환자 반응에 의사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알려주고 싶다”며 “외래에서는 리포트가 아니라 말하는 법, 잘 귀담아 듣는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외래에서는 사람 사는 방식과 의사-환자간 관계를 볼 수 있다. 환자가 의사 앞에서 할 말을 제대로 못했다거나 이해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과적 색채가 강한 의대생들에게 이는 많은 훈련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약간은 엄하면서도 부드럽고 이해하는 느낌을 줘야 한다. 의대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점”이라고 역설했다.


방송 역시 이 같은 연장선에서 시작한 일이다. 전문가 영역을 보다 넓히는 동시에 본인의 소신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의사끼리만 뭉쳐 다니지 않고 다방면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는 점도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오한진 교수는 “지금까지 누가 시키지도 않은 CEO 과정을 5~6개쯤 한 것 같다”면서 “의사들은 의사끼리만 지내는 경향이 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국민들은 의사들의 생활을 궁금해 한다. CEO 과정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궁금한 점을 나에게 물어보고 나도 쉽게 설명해준다. 편안한 의사가 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방송에서 기꺼이 망가지면서까지 편안한 의사를 자처하는 그는 “앞으로도 가정의학 저변 확대에 노력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오한진 교수는 “환자들은 고마운 존재다. 환자가 없으면 임상의사로서 무의미 할 수 있고 환자 자료는 논문의 백 데이터가 되기도 한다”며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 그것이 방송이든 외래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환자를 대할 때도, 진료실 밖에서 보기에도 편안한 사람이 돼야 묻기도 부탁하기도 도움을 요청하기도 쉬울 것”이라며 “대화에 감정을 입히고 감성을 덧댈 수 있는 의사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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