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공백에 대한 각종 루머가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구입 의약품 목록이 공개되면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청와대 의약품 구매 목록을 보면 전신마취제, 발기부전치료제, 영양‧미용목적 주사제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를 두고 모든 의약품을 박근혜 대통령과 결부시키며 추측이 추측을 낳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논란이 되는 의약품의 용처를 해명했지만 의혹은 쉬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제2의 프로포폴?, "응급약품" 해명
청와대는 전신마취제인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10㎖ 용량)를 30개 구입했다. 2014년 11월 20개, 2015년 11월 10개씩 총 300㎖를 사들였다.
에토미데이트는 프로포폴과 유사한 백색의 주사제로, 수면내시경 등 전신마취에 쓰인다.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세월호 참사 때 박 대통령이 프로포폴을 맞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술실도 없는 청와대가 해당 마취제를 구입한 것으로 확인돼 입길에 올랐다.
에토미데이트를 빼돌려 강남 유흥업소 여성 등에게 고가에 팔아넘긴 폭력조직원이 검찰에 적발되기도 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약을 마약류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응급상황이 발생할 때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일종의 근육 진정제"라며 ”신속 기관 삽관을 위한 응급약품으로 의무실장이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고 해명했다.
의약품 목록에는 2015년 8월 벤조티아민계 약물중독 확진 및 해독에 쓰이는 ‘플루닐주사’(5㎖) 용량도 5개 구입했다고 기록돼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 "경호원 고산병 치료용"
청와대는 발기 부전치료제도 구입했다. 지난해 12월 한국화이자제약의 ‘비아그라’ 60정, 한미약품의 ‘팔팔정’ 304개씩 총 364개 구입했다.
비아그라는 심혈관치료제로 개발됐지만 임상 과정에서 다른 효능이 발견되면서 발기부전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비아그라와 팔팔정의 주성분인 실데나필은 고산병 증상 완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의 구입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이날 하루 종일 비아그라가 오르고 SNS 상에는 각종 풍자 글이 나돌았다.
정연국 대변인은 "아프리카 고산지역 국가 순방시 경호원들의 고산병 치료제로 쓰기 위해 구입했는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그대로 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비아그라와 팔팔정을 구입한 같은 시기에 또 다른 고산병 치료제로 허가받은 ‘아세타졸정’을 200개 구입한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청와대는 올해 6월에도 아세타졸정 1000개를 구입했다.
정 대변인은 “남미순방과 아프리카 순방 당시 고산병 예방약으로 아세타졸정을 가져갔고 경호원들에게 개인 지급했다”며 “아세타졸정만 가져간 남미 순방 때 고생을 많이 해 아프리카 때는 비아그라를 함께 가져갔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말 에티오피아와 우간다, 케냐 등 동아프리카 고산지대 3개국을 순방했다. 해당 국가의 수도는 1000~2000m 고원지대에 있다.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비아그라 구입 파문은 커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Blue pills in Blue House(푸른 집 안의 푸른 알약)’이라는 제목으로 청와대의 비아그라 구입 사실을 인용 보도했다.
'대리처방' 의혹 주사제도 구입
청와대가 사들인 의약품 중에는 55세 이상의 불면증 환자 치료를 위한 ‘서카딘서방정’도 포함돼 있다. 2015년11월과 12월에 두 차례에 걸쳐 총 600정을 구입했다. 최근에는 나이와 관계없이 처방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여성 갱년기 장애 개선제로 쓰이는 ‘프로기노바’와 ‘본비바주’도 반입됐다.
2014년 3월부터 올해 8월까지는 ‘라이넥주·멜스몬주(태반주사)’, ‘루치온주(백옥주사)’, ‘푸르설타민주(마늘주사), ’히시파겐씨주(감초주사)‘ 등 영양과 미용 목적의 주사제를 대량 구입했다.
항노화나 중증면역질환에 처방되는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주'와 지방 분해 효과가 있는 ‘라식스주사'. 만성피로‧노화방지 목적의 ’마이어스 칵테일‘주사의 원료인 '마시 주사' 등도 구입 목록에 있었다.
미용목적 주사제는 ‘대리처방’ 혐의를 받고 있는 김상만 前 녹십자아이메드 원장이 차움의원을 사직한 2014년 3월 이후 청와대가 직접 구매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박 대통령을 위한 주사제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초대 주치의인 이병석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장은 이날 언론을 통해 "박 대통령이 취임 직후 주치의에게 이 같은 주사제를 놓아 달라고 요구했지만 의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완곡하게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병석 원장은 김상만씨가 대통령을 독대해 영양주사제를 놓는 사실을 몇 차례 보고받은 적이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진료 내용이 영양주사여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아 그대로 놔뒀다"고 전했다.
서창석 병원장은 2014년 9월 이병석 원장 후임으로 주치의에 임명됐다.
청와대 구입 의약품 리스트를 검토한 의약계 전문가들은 공급 내역만으로는 의약품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A대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같은 의약품이더라도 의사의 판단, 환자 상태에 따라 처방이 달라질 수 있다”며 “방대한 자료만 보고 처방 목적을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B대학병원 약제팀장은 “약제를 섞어 쓰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전을 봐야만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게 얼마나 처방됐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C대학병원 약사는 "의약품 구매 목록만으로 대통령 처방 목적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중년 여성이 한 사람만은 아니지 않느냐"며 "세월호 7시간 의혹이 규명돼야 억측이 잦아들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