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 의한 존엄사를 허용토록 하는 법안에 대해 의학계가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기존의 완화의료 시스템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나 급진적인 입법이라는 지적이다.
논란의 단초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최근 발의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를 신설하고 조력존엄사를 희망하는 말기환자가 신청해 심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즉,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가 의사에게 요청해 사망에 이르는 약물을 처방 받아 스스로 약물을 통해 목숨을 끊는 것을 허용한다는 얘기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이사장 이경희)는 우려를 표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6년이 지났음에도 호스피스 돌봄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과도한 행보라는 지적이다.
학회는 “의사 조력을 통한 자살을 ‘조력존엄사’라는 용어로 순화시켰을 뿐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린 환자가 의사 도움을 받아 자살하는 것을 합법화한다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정부의 완화의료 인프라 확충 노력을 지원하고 감시하는 데 무관심했던 국회가 다시 한번 의지 없는 약속을 전제로 자살을 조장하는 법안”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조력존엄사 논의에 앞서 말기환자의 운명 전(前) 존엄한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학회는 “매년 30만명의 사망하고 있고, 대부분의 환자가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임종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 대한 진정한 천착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이어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존엄한 돌봄이 선행돼야 한다”며 “국회는 조력존엄사 논의 전에 존엄한 돌봄의 유지에 필수적인 호스피스 시설과 인력 확충에 신경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일환으로는 치매 등 다양한 만성질환 말기환자의 완화의료 이용 기회 확대, 임종실 설치 의무화, 촘촘한 사회복지제도 등을 제시했다.
학회는 “전인적인 호스피스 돌봄은 연명의료 중단 혹은 보류를 선택한 국민의 존엄한 생애 말기와 임종기 돌봄에 필수적”이라며 “조력존엄사 논의는 그 이후 문제”라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