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이슬비 기자] 국내 최초 영리병원으로 설립된 제주도 중국 녹지그룹 녹지국제병원 허가취소 처분이 취소되며 시민단체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 영리화 논란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지난 18일 광주고등법원 제주 행정1부(왕정옥 부장판사)는 제주 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에 지난해 10월 내려진 원심의 “허가 취소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단을 뒤집고, 결과적으로 허가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해당 병원이 의료법에 따라 개설허가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 내 개원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병원 측 손을 들어줬다.
실제 해당 병원은 지난 2017년 준공과 사용승인을 완료하고 인력까지 채용한 후 그해 8월 제주도에 허가신청을 제출했다.
허가에 대한 민원처리 기간이 계속해 연기되고, 거쳐 2018년 12월 제주도 측은 내국인 진료를 제한 즉, 외국인 전용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조건부 허용 결정을 내렸다. 이후 개원은 미뤄졌고 제주도는 2019년 4월 허가 취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현행 의료법 제 64조 1항 1호에 따르면 개설 신고나 개설 허가를 한 날부터 3개월 이내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그 의료업을 정지시키거나 개설 허가의 취소 등을 명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녹지국제병원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입법 취지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병원 측이 조건부 허가를 예상할 수 없었고 허가 지연은 병원 귀책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제주도 측 조건부 허용에 따라 사업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했는데 이에 대한 기회와 시간 등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판결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단체 등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무상의료운동본부(이하 본부)는 지난 18일 성명서를 통해 “녹지국제병원 허가 취소를 뒤집은 광주고법 판결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본부 측은 “코로나19 유행의 끝을 알 수 없고 제주에서도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주고법은 공공의료와 국민 건강은 안중에도 없이 영리병원 설립을 정당화했다”며 “돈이 되지 않는 치료는 거부할 수 있는 영리병원은 팬데믹 상황에서 무용지물”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오히려 영리병원 확산을 초래해서 감염병 대응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도 19일 “해당 병원이 개설되면 전국 영리병원 물꼬가 트이고 병원은 돈벌이기관으로 변질돼 한국 건강보험체계를 무너뜨릴 것”이라며 “해당 병원 부지에는 공공병원이 더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번 사안의 초점은 처음부터 제주도 측의 ‘조건부 허용’ 통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의료법인의 우회 진출 문제 등은 위법 사항에 해당하는데 재판 과정에서 본질이 흐려졌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당초 병원 사업 경험이 없는 부동산 기업인 녹지그룹이 국내 영리병원 사업 허가를 위해 국내 의료법인을 파트너로 삼을 수밖에 없었는데, 국내 의료법인이 이러한 경로로 우회 진출했다는 것이다. 이는 의료법 위반 사항에 해당한다.
제주 보건의료 특례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의료기관 개설 사업자는 의료 관련 유사 사업 경험이 있어야 하고 국내 의료자본의 우회 투자 논란이 없어야 한다. 비록 조건부였지만 해당 병원이 승인된 것 자체에 논란이 불거지는 배경이다.
한편, 또 다른 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의 경우 외국인 정주 환경을 만든다는 방침으로 송도 1공구 부지 8만㎡를 국제병원 부지로 지정한 바 있다.
그간 이 국제병원 부지에는 외국인 투자가 일정 비율을 초과하고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영리병원만 유치가 가능했는데, 해외 유명 기업들이 유치를 시도했으나 수익성과 여론 등의 문제로 계속 무산됐다.
인천경제청의 수차례 시도에도 ‘사업성 부족’ 등으로 병원 유치에 어려움이 지속되자 2018년 국내 종합병원도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됐다.
송도 7공구에 세브란스병원이 오는 2026년 개원을 앞두고 있으나 아직까지 1공구 부지에는 자리가 남아있는 상황으로 이번 녹지국제병원 판례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