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확실한 수술만이 환자 생명 살릴 수 있다'
구자일 대구 구병원장
2021.04.06 05:34 댓글쓰기

∥대한외과학회-데일리메디 공동기획∥
‘대한민국 필수의료 책임지는 지방 외과병원을 가다’ ②구병원
"외과의사들 헌신으로 '응급수술' 정착, 정책적 제도적 지원 절실한 상황"
 
[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필수과이지만 기피과이기도 한 대한민국 외과. 암울한 상황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외과의 위기는 대한민국 의료의 위기’라는 경고가 무색할 정도다. 세계적 수준의 술기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처우에 지원자까지 줄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수 십년 동안 묵묵하게 ‘수술’ 외길을 걷고 있는 병원들이 적잖다. 데일리메디는 대한외과학회와 함께 힘겨운 저수가, 인력난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외과의 뚝심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 병원들을 발굴, 조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익만을 좇았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그 숭고한 고행을 알림으로써 외과의 중요성을 각인시킴과 동시에 보다 많은 외과병원들이 ‘술기’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조성하는 울림의 시작이기를 고대한다. ‘대한민국 필수의료 책임지는 지방 외과병원을 가다’ 그 두 번째 행선지는 메디시티 대구에 소재한 구병원이다. 이번 역시 대한외과학회 이우용 이사장이 직접 동행했다. [편집자주]


치핵수술 성지(聖地), 세계가 주목


사실 구병원에 ‘지방’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장·항문 분야에서 이미 전국구 병원으로 정평이 나 있다.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수술실적과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수술방식 등 구병원의 위상은 내로라하는 대학병원들 그 이상이다.


1991년 구외과의원으로 출발할 당시만해도 기대 보다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수술’을 기반으로 하는 외과의사의 개원은 그야말로 모험이었다.


‘수술은 큰병원에서 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이었고, 무엇보다 ‘수술만으로는 병원을 운영하기 힘들다’는 편견이 강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구자일 병원장은 개원을 강행했다. 대신 ‘대장·항문’이라는 특정 영역에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전공의 시절 치핵환자들에게서 많이 발생하는 수술 수 항문협착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완성도 높은 치핵수술을 하고 싶다는 포부의 결과였다.


우려와 달리 병원은 급성장했다. 개원 후 4년 만에 의원에서 병원으로 거듭났고, 1996년에는 11개 진료과에 211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으로 승격했다.


이후 탄탄대로를 걸으며 대장항문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구병원의 위상은 다양한 수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연간 이 병원에서 이뤄지는 대장항문질환 수술건수는 6000례 이상이다. 누적 10만례를 돌파한지 오래다.


2019년 연간 수술건수 7000건을 넘겼고,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여파로 모든 병원들이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도 6229건의 수술을 시행했다.


뿐만 아니라 구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사람이 연간 2만명 이상, 위내시경 검사는 3만명을 훌쩍 넘는다.


단순히 수술이나 검사 건수로 구병원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환자들은 물론 의사들도 구병원을 찾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세계 각국 의료진이 연수를 위해 구병원을 찾는다. 지금까지 해외 18개 의료기관, 수 백명의 의사들이 구병원을 거쳐갔다.


이들이 그토록 배우고 싶어하는 술기는 원형자동봉합기(PPH)를 활용한 치질수술이다. 구병원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투영된 만큼 ‘구병원 방식(Goo's Methods)’이라는 별칭도 존재한다.


이 수술방식은 기존 수술에 비해 통증이 10분의 1 수준이고 치료기간도 현저히 짧다. 무엇보다 재발 확률이 낮아 치질수술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고 있다.


배변장애 역시 구병원의 존재감이 절대적이다. 별도의 협력팀을 구성해 출구폐쇄형변비, 변실금, 직장탈출증, 자궁탈출증 등 배변장애 질환 치료에 새지평을 열고 있다.


특히 구병원 의료진이 개발한 ‘MRI 배변조영술’ 검사는 골반 근육과 장기, 인대의 움직임과 배변 기능을 역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염증성장질환 진료에도 독보적이다. 잦은 수술과 지단한 관찰이 필요한 탓에 대부분의 병원들이 기피하는 질환이지만 구병원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진료했다.


지금까지 치료한 환자만 크론병 500명, 궤양성대장염 2000명에 달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병원 의료진과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구자일 병원장은 “개원의도 수술하면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달려왔다”며 “작금의 여러 성과들은 흔들림 없는 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술회했다.


이어 “무엇보다 외과는 단독 개원이 힘든 진료과라는 편견을 불식시킨 게 가장 고무적”이라며 “환자를 위한 진료와 수술이 곧 경영”이라고 덧붙였다.


외과 전문의 14명이 지켜내는 생명 보루 '응급실'


대한외과학회가 구병원을 지목한 것은 그 명성과 화려한 실적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 이면에 가려진 필수의료 행보를 조명하기 위함이었다.


연일 환자로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구병원은 외과병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응급실 불을 밝히고 있다.


14명의 외과 전문의가 복막염, 장파열, 장폐색 등 촌각을 다투는 복부 응급수술을 24시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빠르고 확실한 수술만이 환자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구자일 병원장의 진료철학이 투영된 결과물이다.


그는 병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미완의 숙제였던 ‘응급수술’에 대한 소신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외과병원인 만큼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응급수술은 당연한 책무라는 생각이었다.


외과 전문의가 14명이나 포진해 있는 만큼 응급수술의 질적 수준은 이미 담보돼 있었다.


다만 의사들에게 야간에도 응급실로 내달려야 하는 고달픈 생활을 감내해 달라는 얘기를 꺼내기가 미안했다.


차마 얘기를 건네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그에게 정진식 진료부원장을 비롯한 외과 의사들이 “14명이니 2주에 한 번 밖에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먼저 응급수술 당직을 자청했다.


외과의사 중심의 응급실은 환상의 조합일 수 밖에 없었다. 신속한 수술과 베테랑 써전(surgeon)들의 술기는 수 많은 생명을 살렸다.


그 결과 2015년에 대구광역시 외과계 질환 응급수술 병원으로 지정됐고, 2019년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역응급의료기관’ 자격을 부여 받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공휴일 응급수술 병원으로 지정되며 대구·경북지역 필수의료의 중추 역할을 수행 중이다. 야간 및 공휴일에 구병원이 시행한 응급수술 건수를 보더라도 그 존재감이 확연하다.


구병원은 2019년 급성충수염 257건, 담낭염 44건, 복막염 18건 등 총 423건의 응급수술을 시행했다. 야간 및 공휴일 건수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수치는 1000건에 육박한다.
 

사실 구자일 병원장이 응급수술에 더 큰 애착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10년 11월 대구에서 발생한 4세 장중첩 여아 사망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장중첩 진단을 받은 여아가 경북대병원을 비롯해 대구 시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응급실을 전전하다 제때 치료받지 못해 끝내 사망한 사건이었다.


해당 여아가 구병원 인근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구자일 병원장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 구병원도 응급실을 운영 중이었지만 응급의료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어린 생명을 지켜낼 수 없었다는 사실에 자괴했다.


그가 지역응급의료기관, 응급수술 지정병원 등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도 맥을 같이 한다.


구자일 병원장은 “응급의료체계가 구축돼 있었다면 살릴 수도 있었던 소중한 생명이었다”며 “응급의료에 대한 필요성과 사명감을 절감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비정상적인 수술환경 가중되면서 의료진 희생 '인계점' 도달


구병원에 재직 중인 의사 34명 중 무려 14명이 외과 전문의다. 이는 전국 종합병원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무엇보다 이들 의사의 평균 근속 연수가 10년을 훌쩍 넘는다. 부원장급 의료진은 20년 이상이다.
 

야간당직 후 진료를 보는 게 일상이고, 새벽에도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서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지만 구병원 의사들은 그 고단함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그 고된 삶을 알면서도 이 병원에 들어오기 위해 대기 중인 외과 의사들이 적잖다. 일선 병원들의 의사 구인난이 적어도 구병원은 예외인 셈이다.


구병원이 외과 의사들의 선망의 대상인 이유는 구자일 병원장의 경영철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일단 이 병원은 실적에 대한 압박이 전무하다. 환자를 살리는 숭고한 의술에 비용이란 잣대를 드리워서는 안된다는 게 구 병원장의 소신이다.


물론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경영’에 대한 고민을 안할 수 없지만 그는 경영자인 본인의 몫이지 의사들에게 그 짐을 지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구자일 병원장은 “의사들에게 실적을 종용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최선의 진료가 최상의 경영이라는 신념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에서나 볼 수 있는 의사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 역시 높다.


구병원은 매년 해외에서 개최되는 각종 학술대회에 의사들을 보내고 있다. 물론 일체 비용은 병원이 지원한다. 가까운 일본부터 미국, 유럽 등 술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OK’이다.


술기 발전이 빠르게 이뤄지는 만큼 의사들이 해외 학술대회에서 새로운 수술법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물론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이 처럼 명성과 위상에서 남부러울 것 없을 정도의 반열에 오른 구병원이지만 ‘응급의료’에 대해서는 고민이 적잖다.


사실 현행 제도 하에서 공휴일이나 야간 응급수술은 ‘적자’가 불가피하다. 나름의 가산수가가 적용되지만 현실과는 확연하게 동떨어진 수준이다.


구병원은 마진이 적은 수술로 어렵사리 발생시킨 수익을 고스란히 응급실 운영에 재투입하고 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형국이다.


구자일 병원장은 “외과병원의 소임이라는 생각과 자부심으로 응급수술을 시행하고 있지만 영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병원이 돈을 내면서 생명을 살리는 구조가 과연 정상적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봉사와 희생도 인계점에 도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외과학회 이우용 이사장 역시 “정부가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외과병원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며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외과병원들의 상황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를 위해 올바른 길을 가려는 병원들이 그 뜻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의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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