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가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의료기관 중 가장 먼저 의료진을 파견한 고대의료원의 따뜻한 행보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물론 전장의 한 복판에 뛰어든 것은 아니지만 주변국으로 피난길에 오른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아낌없는 의료 지원으로 온기를 전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의료원 우크라이나 의료지원 봉사단(단장 조원민)은 지난 19일 출국 이후 2주 동안 폴란드 전역을 돌며 난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중이다.
봉사단은 현지에서 피난민을 돕는 구호단체들과 협력관계를 논의하고 주요 NGO와 한인회, 한국선교단체들을 찾아 의약품을 전달하는 등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의약품을 지원받기도 한 봉사단은 향후 우크라이나 상황이 안정될 시 긴급재건구호 등 현지 요구에 맞는 의료지원 활동에 추가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봉사단은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의료봉사 중인 한국선교단체에게 외상처치 및 응급키트, 갑상선약 등의 의약품을 전달했다.
아울러 25일과 26일에는 폴란드 교외지역 난민 보호소에 머물며 난민들을 위한 치료비 등 의료지원금과 선물 등을 전하고 보호소에 답지한 구호물품을 정리하기도 했다
27일에는 바르샤바 인근에 난민 보호소를 찾아 우크라이나 전쟁터로 향하는 NGO 단체에게 코로나19 검사키트와 방역물품 등을 전달하고 교육했다.
폴란드 전역 돌며 난민 건강 살펴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달째에 접어들며 국경을 넘은 피난민만 380만을 훌쩍 넘었다.
가장 많은 피난민이 머물고 있는 폴란드가 폭넓은 지원을 하고는 있지만 난민숫자가 늘면서 현지 응급의료시스템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 이스라엘 NGO 관계자는 “이미 난민들의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가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 폴란드 의료시스템이 감당하기 어렵다. 의료지원 등 여러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실제 봉사단에 머물던 난민 보호소에 있던 갑상선종양이 의심되는 중장년 여성 역시 병원진료조차 쉽지 않았다.
어렵게 현지 병원을 찾아 폴란드 의사에게 정식진료를 받아 5cm나 되는 큰 혹이 발견됐다. 악성일 경우 생명의 위협이 될 수 있어 빠른 정밀검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고대안암병원 이식혈관외과 정철웅 교수는 “휴대용 초음파로 살펴봤는데 심상치 않아 병원 진료를 권했다”며 “난민생활이 길어지면서 고통이 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지에서의 활동이 제한돼 있어 안타깝지만 도움이 절실한 분들을 저버릴 수 없는 만큼 생명을 지키는 의사로서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봉사단은 자정이 넘은 시간 갑작스런 발생한 심정지 환자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고대안산병원 가정의학과 김도훈 교수는 “먼 이국땅에서 왔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며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 어디든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봉사단은 28일에는 폴란드 바르샤바 교외지역인 나다르진에 사무실을 임대해 폴란드 내 흩어져 있는 고려인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만남을 시간을 가졌다.
고려인들에게 건강 관리에 대한 조언과 함께 상비약과 방역키트는 물론 고추장과 된장, 김치 등 한국 식품과 생필품도 전달했다.
한 고려인은 “폭격 장면을 보며 부리나케 몸을 피했는데 그 때문인지 아이가 틱장애가 심해졌고, 무엇보다 아빠를 두고 왔다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불안해한다”고 호소했다.
김도훈 교수는 “혹독한 경험을 한 아이들이 상실감이 큰 부모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며 “상실감 치유가 급선무”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애절한 동포애, 현지 고려인 아픔 치유
하지만 이곳을 찾은 고려인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연신 감사인사를 전하며 오히려 봉사단의 건강을 챙겼다.
여동생과 두 조카를 데리고 가까스로 폴란드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 거주 고려인 마르하리따 림 씨(39·여)는 “머나먼 곳까지 와서 위로의 시간을 마련해 준 봉사단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철웅 교수는 “긴장감 속에 전쟁터를 빠져나오느라 트라우마가 커 보였다”며 “난민생활이 길어지면서 기저질환을 관리하지 못해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의료지원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봉사단장인 고대안산병원 흉부외과 조원민 교수는 “강제 이주의 참상이 다시금 드러난 것 같아 안타깝다”며 “어려움 잘 극복하고 평화를 되찾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봉사단은 29일과 30일은 폴란드 LG전자 므와바 법인을 찾아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인구 3만여명의 작은 도시인 이 지역에서 LG를 비롯한 협력사까지 더해 우크라이나 출신 직원수만 2500여명으로, 일부 난민들도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봉사단을 찾은 한 엄마는 “10살배기 아이와 가족 모두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오지 못해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신장이 안좋은데 약도 끊겨 몸이 망가진 상태”라며 도움을 청했다.
고대안암병원 신생아중환자실 김양희 간호사는 “아기를 안고 불안에 떨고 있는 난민들의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려 밤새 잠을 못 이뤘다”며 안타까워 했다.
조원민 봉사단장은 “다양한 연계 기관과의 파트너십 구축 등 협력관계를 확장해 나갈 예정”이라며 “우크라이나 상황이 안정되는데로 직접 들어가 아픔을 치유해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지금의 봉사활동이 전세계 평화에 대한 갈망과 도움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치하했다.
한편, 고려대학교의료원은 지난 19일 국내 의료기관 최초로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했다.
의사, 간호사, 약사 등 재난의료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된 지원팀은 장장 2주 동안 난민들과 현지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의료지원 활동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