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업무 수행을 위해 의료기관에 환자의 진료기록 제공을 의무화하자는 개정 법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1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입법예고 기간은 지난 12월20일부터 29일까지다.
현행 의료법은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의료기관 종사자 등이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등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단, 검찰이나 경찰이 조사를 위해 요구하거나 다른 법률에 예외를 허용한 경우만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남 의원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거나 진정에 관한 조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 등을 해당 기관에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의료기관이 보유한 진료기록은 제외돼 있다"며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가 진정을 넣어도 의료기록을 열람할 수 없어 업무 수행에 제약을 받아 이 같은 법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원실은 "의료법 제21조 제3항에 제17호에 국가인권위를 추가하는 내용을 새로 명시했다"며 "진료기록부 열람 또는 사본 발급 요청시 들어가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으며, 조사활동을 보다 원할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인권위 진료기록 열람 의무화 법안에 대한 반대여론도 만만찮다. 입법예고 법안에 대한 의견제출 게시판에는 150건이 넘는 반대 의견이 올라왔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국가에 의한 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인권위의 진료기록 제공 요청 법제화를 통해 얻을 이익이, 현행처럼 제한돼서 얻는 손실보다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A씨는 “환자 본인이 서류를 떼어서 특정기관에 보내도록 하는 현행 제도가 합리적”이라며 “본인 이외에는 민감한 건강정보를 의료기관에 요청해 열람, 사본 발급하는 일은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B씨도 “수사권도 없는 인권위까지 왜 환자 진료기록을 열람해야 하느냐”며 “만약 이 제도가 악용되면 그 피해는 누가 보상해줄 것인지 모르겠다. 졸속꼼수 악법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개원의도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검찰이나 경찰뿐만 아니라 인권위에서도 자료제공을 요구한다는 것인데 너무 부담스럽다”며 “대학병원과 달리 소규모로 운영되는 개원가에선 앞으로 더욱 더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