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병원계에 여의사 위상 변화가 확연한 모습이다. 수도권 대학병원들이 잇따라 최초 여성 병원장 탄생 소식을 전하며 달라진 시대상을 방증시키고 있다.
의대생 성비(性比)가 역전된지 오래고, 전체의사 중에서 여의사 비중이 30%에 육박할 정도로 저변이 확대됐음에도 그동안 대학병원장 자리는 쉽사리 허락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최근 수도권 대학병원들에서 여성 병원장 취임이 잇따르면서 성역 같았던 병원장실 유리천장이 깨지는 양상이다.
수도권 대학병원 중 가장 선도적으로 금녀(禁女)의 벽을 허문 곳은 고려대학교의료원이다.
고대의료원은 지난 2020년 마취통증의학과 김운영 교수를 안산병원장에 임명했다. 고려대학교 역사상 최초의 여성 병원장이었다.
정진택 고려대학교 총장은 “최초의 여성 병원장을 모시게 돼 영광”이라며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섬세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발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고대의료원은 2년 후에는 산하 3개 병원 중 2개 병원을 여의사에게 지휘권을 부여했다. 안산병원 김운영 병원장 연임과 함께 구로병원에는 감염내과 정희진 교수를 병원장에 임명했다.
정희진 병원장은 “최근 상황이 많이 변해 여의사에게 불리한 구조는 많이 개선됐다”며 “성별 보다는 조직과 구성원의 발전을 위해 일한다는 원칙이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가톨릭의료원도 시대 흐름에 순응하기 시작했다. 2021년 9월 은평성모병원장에 외과 최승혜 교수를 임명하며 의료원 역사상 최초의 여성 병원장 탄생 소식을 전했다.
최승혜 병원장은 국내 여성 외과의사가 10여 명에 불과하던 시절 결코 녹록지 않은 외과의사 길을 걸어간 1세대 여의사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이듬해인 2022년 8월에는 연세의료원 138년 역사상 최초 여성 병원장이 취임했다. 연세의료원은 영상의학과 김은경 교수를 용인세브란스병원 신임 병원장에 임명했다.
김 교수는 연세의대 영상의학교실 주임교수 임기를 1년 남긴 상황에서 개원을 앞둔 용인세브란스병원에 지원하는 열정을 발휘하며 조직 내부적으로 신임을 얻었다.
여성 병원장 시대를 연 대표적 인물은 김봉옥 前 충남대병원장이다. 김봉옥 원장은 지난 2013년 국립대병원 최초의 여성 병원장에 이름을 올리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2018년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병원장을 맡았고, 2021년 인천힘찬종합병원 원장에 취임하며 여성 병원장으로서 종횡무진 중이다.
김봉옥 원장 이후 공공병원에도 서서히 유리천장이 깨지기 시작했다. 국립암센터는 지난 2017년 이은숙 원장을 임명했다. 암센터 출범 18년 만의 최초 여성 병원장이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역시 지난 2018년 재활의학과 김성우 과장을 신임 병원장으로 낙점했고, 지난해 연임된 이후 지금도 일산병원을 이끌고 있다.
수도권 대학병원, 공공병원들이 잇따라 여의사에게 경영 책임을 맡기고 있지만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은 아직까지 여성 병원장 시대를 열지 못하고 있다.
한편, 2021년 기준으로 국내 전체 의사수 10만9937명 중 남성은 8만1681명으로 74.30%를 차지했다. 여성은 2만8256명으로 25.7% 비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