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암 극복이 문제였다면, 기술과 치료제가 발달하며 암환자 5년 생존율이 70%를 상회한 근래에는 암환자의 심리지원이 중요한 영역으로 떠올랐다.
이에 현재 국내서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동료지원가’의 심리지원 활동을 암환자에게도 확대, 지역 커뮤니티케어 사업과 연계하는 등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23일 국회 존엄한 삶을 위한 웰다잉 연구회가 주최하고 암치료 환경 개선을 위한 비영리단체 올캔코리아가 주관한 ‘ 환자 심리적 지원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유은승 고려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前 국립암센터 임상심리전문가)는 “암환자들이 전주기적으로 겪는 정신적 고통인 ‘디스트레스(distress)’는 우울·불안 등의 정신장애, 신체 증상, 의료비 증가, 치료순응도 저하, 나아가 자살까지 다양한 2차적 문제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암환자 동료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암 치료를 마친 암생존자가 비슷한 경험을 겪고 있는 환자와 심리적으로 공감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등 멘토링을 하는 것이 골자다.
이 동료지원가와 비슷한 형태는 현재 만성질환 관리사업이 이뤄지는 고혈압·당뇨병 등록교육센터에서도 포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교육, 모임 자리에 ‘선배 환자’가 치료를 시작하는 환자들과 교류하는 것이다.
유은승 교수 “암환자 멘토링 성과, 보건소 중심 지역 커뮤니티 형성”
유 교수는 해당 프로그램의 성과가 고무적이었다는 점을 토대로 프로그램 확산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실제 올해 6명의 동료지원가로부터 심리지원을 받은 암환자 10명의 우울검사 PHQ-9 평균점수는 7.56점에서 2.86점으로 크게 낮아지기도 했다.
그는 “동료지원 프로그램 제공체계를 마련해 병의원, 보건소, 지역사회 연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지역사회 커뮤니티케어 일환으로 활용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피력했다.
문제는 비슷한 결의 사업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립정신건강센터, 고용노동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시정신건강센터 등에서 정신장애인 및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동료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또 이미 2017년 시범사업을 거쳐 본사업으로 전환된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사업이 있는데, 13곳 권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암치료를 종료한 환자가 심리지원 대상이다.
양현정 올캔코리아 전문위원은 “동료지원가와 암환자의 질환이 비슷하고 지역이 가까우면 공감대 형성이 쉬우므로 지역 보건소를 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다”며 “기존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보다 보건소를 중심으로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 “인력 충원, 정보 제공자 동료지원가 관리·감독해야”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의료진들은 동료지원가의 암환자 심리지원에 적극 공감하지만 확대를 위해서는 추가 인력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실제 유방암 생존자인 고수진 울산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현재 의료자원으로 모든 암환자와 암생존자를 지원하기 어렵다”며 “심리영향을 주는 요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스크리닝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선별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동료지원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관리·감독하는 인력 역시 필요하다는 게 고 교수 입장이다.
그는 “암생존자들은 심리적 지지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동료지원가가 개인적 경험 또는 보편적이지 않거나 잘못된 지식을 주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이현정 국립암센터 암관리정책부 선임연구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기존 정신질환자를 관리하는 사업을 운영하는 센터에서 이 사업을 수행하려면 업무 포화상태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인력 충원을 강조했다.
이어 “인프라가 부족한 현재, 꼭 공공기관에 국한하지 말고 의지가 있는 민간 기관에서도 동료지원가 교육을 제공하는 게 좋아보인다”며 “‘정신’이라는 용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어 용어 사용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