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장기화로 인한 의료공백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보건복지부 장관과 주요 대학병원장들이 모처럼 만났지만 별다른 성과는 도출하지 못했다.
장관은 추석 명절 기간 응급의료 역량 유지를 당부했고, 원장들은 의료진 부족에 따른 고충을 토로하며 간담회 내내 공회전이 이어졌다.
정부 입장 요지부동 인지한 참석 병원장들, 체념 분위기 지배적
특히 앞서 수 차례 간담회를 통해 이번 의대 증원 사태에 대한 정부의 요지부동을 경험한 원장들은 읍소 강도를 높이기 보다는 체념의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는 전언이다.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40여 명의 상급종합병원 및 종합병원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응급의료체계 유지를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번 간담회는 최근 응급실 의료진 이탈 및 그로 인한 진료 차질 우려 상황을 공유하고 현 상황의 확산 방지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조규홍 장관은 이 자리에서 추석 연휴 대비 응급의료체계 유지 특별대책에 맞춰 지역 책임의료기관들이 진료 역량 유지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응급실은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 만큼 각 병원은 응급실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말했다.
특히 추석 연휴를 ‘비상 대응 주간’으로 정하고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를 250%까지 올리는 등 응급의료 지원책을 마련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 장관은 “응급실 진료 역량을 높이고자 비상 주간에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를 기존 인상분인 150%에서 100% 올려 250%까지 인상키로 한 만큼 병원들도 적극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간담회 참석 병원장들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당장 응급실을 지킬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책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21일 기준 전국 44개 권역응급의료센터 중 70%가 넘는 31곳의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가 12명 미만으로 집계됐다.
건양대병원, 울산대병원은 4명, 순천향대천안병원과 삼성창원병원은 5명에 불과했다.
365일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한 근무조에 2명 이상, 최소 12명의 응급의학과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은 이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국 대학병원 응급실들이 당직 유지를 위한 최소 인력도 채우지 못하면서 진료 기능이 마비되는 곳이 늘고 있지만 정부는 응급실 인력난이 의료개혁 탓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 종합병원이나 공공병원을 가 보면 응급실 응급의학과 의사가 거의 없다. 의료개혁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원래부터 그랬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180곳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전공의 이탈에 따른 피로 누적 등으로 계속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응급의료 현장은 정부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병원장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전하며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주문했다.
A 병원장은 “응급의료 현장 상황은 정부가 얘기하는 것 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당장 환자를 치료할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100% 수가 인상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 대신 교수와 전임의들이 응급실을 지키고 있지만 한계에 다다랐다”며 “응급실 진료를 보더라도 다른 진료과로의 이관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B 병원장은 “환자들의 응급실 뺑뺑이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추석 연휴 의료대란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원인이 명확한 문제를 부정하는 정부 행태에 분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을 위해 얼마나 더 많은 희생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느냐”며 “그 의료개혁은 과연 누구를 위해 이루고자 하는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사태 해결 의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C 병원장은 “그동안 수 차례 간담회를 진행했지만 정부는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며 “아무리 읍소해 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에 이번 간담회에서는 별다른 의견을 전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문제 본질은 외면한 상태에서 응급실 정상 운영만 운운하고 있다”며 “의료공백 사태 시발점이 어디인지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