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 요양급여 기준 설정 및 허가초과 항암요법 사용 승인 등 전문 평가를 담당하는 ‘암질환심의위원회’ 구성에 대한 현장 불만이 나오고 있다.
현재 위원회에 참여하는 전문의사는 대부분 고형암 전문가로 약제 심의는 이들 의견으로 결정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혈액암 관련 약제들 급여 결정에 잘못된 선택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지적이다.
혈액암 특성상 항암화학요법이나 조혈모세포이식의 효과가 크다 보니 부작용 위험을 줄이고 삶의 질을 개선한 새로운 치료제들이 등장해도 급여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암질환심의위원회는 의사협회, 병원협회, 의학회, 환자단체연합회, 보건경제정책학회 등 13개 단체에서 혈액종양 및 보건경제 분야 전문가를 추천받은 42명으로 구성됐다.
위원회는 고형암과 혈액암 구분없이 한자리에서 심의한다. 참석자는 심평원 실무관계자, 고형암 전문의사 6~8명, 혈액암 전문의사 2명이 참석한다.
혈액암 전문의사는 배정인원이 적은데다 의료기관 내 업무 가중으로 참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위원장도 항상 고형암 전문의사다. 따라서 고형암 전문의사가 회의를 주도, 약제에 대한 심의가 결정되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대한혈액학회,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 등은 “위원회에서 일부 고형암 전문의사는 현실과 동떨어진 의견을 내고 있다. 심지어 혈액암 전문의사의 의견을 틀리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우려감을 피력했다.
위원회 고형암 전문의사들에 대해 “혈액암 환자를 거의 보지 않는 비전문가”라는 지적도 나왔다.
혈액암은 고형암에 비해 매우 작은 빈도로 발생하는 질환이면서도 다양한 종류를 가지기 때문에 전문의사가 아니고는 질환에 대한 심도 있는 지식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 고형암과는 달리 혈액암은 진행된 암일지라도 항암치료 및 조혈모세포이식이라는 강력한 치료법으로 인해 완치가 가능한 질환들이 많다.
또 고형암 환자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혈구감소증이라는 질환 관련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생명이 잃거나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혈액암 치료제 연이은 급여 '불발·지연'
현재 성분명 젬투주맙 오조가마이신(제품명 마일로탁), 다라투무맙(제품명 다잘렉스)과 길테리티닙(제품명 조스파타) 등은 다른 항암제와의 병합이 보험급여 불허된 상황이다.
또 베네토클락스(제품명 벤클렉스타)와 데시타빈(제품명 다코젠) 병합요법, 레날리도마이드(제품명 레블리미드)와 같은 일부 항암제는 보험 급여가 지연된 사례다.
대한혈액학회,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 등은 최근 보건당국에 혈액암 환자를 보는 의사로 구성된 ‘혈액암 심의위원회’ 또는 혈액질환 관련 약제를 모두 심의하는 ‘혈액질환 심의위원회’를 제안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견서를 보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건국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성용 교수(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 보험위원장)는 “전공의 훈련 과정 중에 본 환자가 전부인 고형암 전문의사들이 혈액암 약제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심의위원회 구조로 인해 혈액암 관련 약제들의 급여 결정에 잘못된 선택이 된 경우가 많다”면서 “암질심에서 분리된 혈액암 전문의사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혈액질환을 보는 의사로 구성된 ‘혈액암 또는 혈액질환 심의위원회’가 신설된다면, 무엇보다 혈액암 질환의 특성에 맞는 약제 급여 심의가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김 교수는 “고형암과 같은 기준으로 천편일률적인 약제 심의하지 않게 되면 혈액암 환자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보험급여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평원 “10기 위원 구성 때 혈액암 전문의 참여 확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특정 암종만을 위한 위원회 구성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평원은 “매 회의시 참석위원 18명 중 암전문가 15명의 경우 안건에 따라 각 암종별 참여위원 비중을 조정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회의 안건에 따라 고형암의 경우 암종별 1~2명의 위원이 참석하는 반면 암종 특성을 고려해 혈액암은 2명에서 최대 5명까지 참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심평원에 따르면 과거 암질심은 고정위원제로 18명으로 구성돼 있었으나 진료분야가 전문화, 세분화되면서 지난 2019년 12월부터 풀제로 변경됐고 45명 이내(현재 42명)의 위원을 위촉했다.
고정위원제로 운영될 당시 암 전문가 15명 중 혈액암 위원이 1~2명이었지만 풀제로 바뀌면서 그간 암종별 안건 현황을 고려, 암 전문가 35명 중 혈액암 위원이 9명으로 늘었다. 이중 성인 혈액암 위원은 5명, 소아 혈액암 위원 4명이다.
심평원은 “여기에 더해 한정된 재원하 부득이 임상적 유용성 등을 고려해 보험급여 우선순위와 범위를 정함에 있어, 암종간, 약제간 형평성 있는 심의가 필요해 암질심 회의는 암전문가들을 비롯해 보건의료 전문가, 약학전문가, 식약처 위원 등으로 전체 위원을 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암전문가 중에서도 모든 암종의 위원들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특정 암종만을 위한 위원회 구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상황을 전했다.
다만 심사평가원은 “최근 혈액암 심의 안건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 올해 말 10기 암질심 위원을 새로 구성할 때 암종별 현황에 따라 풀에서 혈액암 관련 위원 증원이 필요할지 검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혈액암 관련 학회 “위원 증원만으로는 한계” 지적
이 같은 심평원 측 입장에 대해 대한혈액학회,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 등은 혈액암위원회 분리를 촉구했다. 혈액암 종류가 워낙 다양한 만큼 풀(Pool)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학회들은 “혈액암 전문가 풀을 더 많이 배정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다수의 혈액암 전문가가 위원회에 참여하기는 불가능하다”면서 “해당 시간에 참가할 수 있는 혈액암 전문가는 고형암 전문가에 비해 매우 한정적”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혈액내과 및 소아혈액과는 점점 기피 대상의 과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고형암에 비해 암종이 매우 다양하고, 이식과 결부된 힘든 치료가 포함돼 고형암에 비해 공부해야 할 내용이 많고, 업무 부하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병원마다 혈액내과 전문의 구인이 힘들어 상당수 대학병원들이 인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성용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 보험위원장은 “바쁜 나날 속에서 혈액암과 상관없는 고형암 약제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인 현 암질환심의위원회에는 참여하기가 매우 어렵다. 참여해도 혈액암 약제 심사에 있어 전문성없는 고형암 선생님들 의견 개진에 불쾌감마저 느낀다”고 피력했다.
김 위원장은 “혈액암 항암약제만 논의하는 암질환위원회가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면 양성 혈액질환과 통합해(양성 및 악성 모두 포함해) 혈액 약제 논의를 할 수 있는 심의위원회를 만들어 달라”고 거듭 제안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