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울제 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의 처방권을 둘러싼 진료과 간 갈등이 학술대회 행사장으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가정의학과나 신경과 등의 SSRI 처방권 확대 주장에 정신건강의학과는 ‘절대 불가’ 방침으로 맞서는 양상은 관련 학회들의 춘계 학술대회에서도 재현됐다.
포문은 대한가정의학회가 먼저 열었다. 가정의학회는 지난 6일 열린 춘계 학술대회에 영국 보건복지부와 OECD 자문의인 수잔 오코너 박사를 초청, 기조강연을 진행했다.
오코너 박사는 ‘자살예방에서의 가정의학 전문의 역할과 SSRI 사용’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SSRI 처방권에 대해 소견을 전했다.
그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제외한 타 진료과 의사들의 SSRI 처방기간이 60일로 제한돼 있는 국내 상황을 의식한 듯, 이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 현행 국내 규정에는 타 진료과 의사들의 SSRI 처방을 60일 이내로 제한하고, 상용량 또는 기간을 초과해 처방을 할 경우 정신건강의학과로 문의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오코너 박사는 “영국은 모든 진료과 의사에게 SSRI 처방을 2년까지 인정하고 있다”며 “특히 진료과에 따라 처방기간을 60일로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정신과 의사가 SSRI 처방권 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가정의학과 학술대회에서 정신과에 치우쳐 있는 한국의 처방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가정의학회 학술대회 직후 진행된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춘계 학술대회의 화두는 단연 SSRI였다.
가정의학회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SSRI 처방권 확대를 위해 구미에 맞는 외국 석학을 학술대회에 초청, 공론화를 시켰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았다.
신경정신의학회 이민수 이사장은 “일차 의료의 중추인 가정의학과 의사들이 학술대회에서 SSRI 처방권을 다룬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일침했다.
이어 “비전문의에게 SSRI 처방을 2개월로 제한하는 것은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함”이라며 “우울증 있다고 SSRI를 처방하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우선 2개월 동안 치료해 본 후 호전이 없다면 전문가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문의 함으로써 올바른 치료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민수 이사장은 “정신질환은 무조건 약만 쓴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신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하고, 숙련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피력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타 진료과의 SSRI 처방권 확대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별도 TFT를 구성하고 논의를 진행중이다. 학회는 조만간 SSRI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편 가정의학과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신경과 역시 다양한 방법을 통해 SSRI 사용 확대를 추진중이다.
대한신경과학회는 홈페이지에 SSRI 관련 탄원서 양식을 게재하고, 회원들이 다운받아 작성한 후 보건복지부에 제출토록 독려하고 있다.
탄원서에는 "파킨슨 환자들이 SSRI를 처방 받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정신과를 다녀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장기처방 제약을 풀기 위해 정부, 국회 등에 탄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뿐만 아니라 학회는 산하에 대한신경계질환 우울증연구회를 설립하고, SSRI에 대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진행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