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증원 사태로 촉발된 진료공백이 장기화 되면서 전공의들이 몸 담았던 수련병원들 경영지표가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대학병원들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로, 작금의 상황이 더 길어질 경우 ‘대학병원 폐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특히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빅5 병원들이 잇따라 비상경영을 선언한 가운데 재정력이 좋지 않은 중견 대학병원들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는 전언이다.
대한병원협회가 전국 500병상 이상 수련병원 50곳의 경영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 2월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병원 당 의료수입 평균 84억7670만원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50개 병원 의료매출 합계는 2조2406억원으로 전년 2조6644억 대비 4238억원 줄었다. 비율로는 15.9% 감소다.
대형병원일수록 의료수입 감소율이 더 도드라졌다. 1000병상 이상 의료기관 의료수입은 전년 대비 19.7% 감소하며 경영 악화가 특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700~1000병상 미만 수련병원 14.0%, 500~700병상 미만 수련병원 11.5% 감소 등 병상 규모가 클수록 의료매출 감소폭이 비례했다.
특히 전공의 사직 사태가 장기화 됨에 따라 사태 초반인 2월 마지막 2주간보다 3월 한달 간의 전년대비 의료수입 감소율이 2.5배 증가하는 등 손실 폭이 확연히 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진 부족으로 병동 축소 운영에 들어가면서 병상 가동률 역시 큰 폭으로 줄었다.
전공의 사직 사태 기간 중 이들 50개 수련병원의 평균 병상 가동률은 56.4%로, 지난해 75.1% 대비 18.8% 감소했다.
규모별로 살펴보면 역시나 1000병상 이상 대형병원이 –19.2%로 감소 폭이 가장 컸고, 700~1000병상 미만 -15.7%, 500~700병상 미만 –12.3% 순이었다.
입원환자는 30% 가까이 줄었다. 의대 증원 사태 이후 이들 50개 수련병원들은 각 병원마다 평균 8581명이 줄어들며 전년 대비 27.8%의 감소율을 나타냈다.
1000병상 이상 수련병원이 -33.1%로 가장 많이 줄었고, 700~1000병상 미만 병원이 –26.4%, 500~700병상 미만 병원이 –21.9%를 기록했다.
외래환자 역시 전체 평균 13.9%의 감소율을 나타냈다. 병원 당 평균 8581명이 줄어든 수치다.
규모별로는 1000병상 이상 –15.8%, 700~1000병상 미만 –13.3%, 500~700병상 미만 –11.9%의 감소폭을 보였다.
‘비상경영’ 허리띠 졸라매는 병원들···교수 진료 축소하면서 경영지표 더 악화
지방사립대병원‧공공의료기관 모두 위기감 고조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 지 한 달이 훌쩍 넘으면서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대형병원들의 경영난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실제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은 이미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하고 병상·인력 운영 효율화에 들어갔다.
서울대병원은 기존 500억원 규모였던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를 2배로 늘려 1000억원 규모로 만드는 등 의료공백 사태 극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체 60여개 병동 중 10개 가량을 폐쇄했으며, 병동 간호사들을 중심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역시 의대 증원 사태 이후 발생한 적자가 5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박승일 병원장은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내 “511억원의 적자가 발생했지만 정부 보전은 17억원에 불과하다”며 “연말까지 가면 적자 규모는 46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학술 활동비 축소 ▲해외학회 참가 제한 ▲의국비 축소 ▲진료 향상 격려금 지급날짜 조정 등을 시행 중이다.
지방 수련병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순천향대천안병원은 “매일 수 억원의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며 비상경영을 선언했고, 울산대병원과 충북대병원 등도 허리띠 졸라매기에 돌입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중앙의료원 역시 누적 적자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 지난달 19일부터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태다.
문제는 전공의 집단 사직에 이어 교수들 마저 52시간 근무에 따른 외래진료 축소에 나서면서 병원들의 경영지표는 더욱 곤두박질 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 충북대병원은 5일부터 외래 진료 축소에 들어갔고,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은 다음 주부터 토요일 진료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충남대병원 교수들도 ‘주 40시간 진료’ 및 신규 외래진료 축소 방침을 정했고, 전북대병원 교수들 역시 주 52시간 근무에 들어갔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도 소속 다수 교수가 외래 진료 일정을 뒤로 연기해달라고 병원 측에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상국립대병원은 응급‧중증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진료과별 특성에 맞춰 외래진료를 축소했고, 아주대병원 교수들도 조만간 주 52시간에 돌입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학병원 기획조정실장은 “직원들 급여 걱정을 넘어 이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사상초유의 대학병원 폐업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며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재정 여력이 없는 일부 사립대병원의 경우 이미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그야말로 병원 경영상황은 초비상 상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