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醫政) 갈등에서 촉발된 '의료대란' 사태가 두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현직 대학병원 교수들이 갑작스레 사망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정확한 사망 경위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는 전공의 공백을 메우느라 과로에 시달린 것 아니냐는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성남시 분당구 소재 某대학병원 호흡기내과 A교수가 지난 20일 장폐색이 발생해 사망했다.
A교수는 응급수술을 받은 후 에크모(채외혈액순환치료)를 받으며 다른 병원으로 전원됐으나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대한내과의사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한 A교수 안타까운 비보에 애도 마음을 표했다.
내과의사회는 "생전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며 진료에 임한 A교수의 따뜻하고 세심한 진료는 많은 분들에게 큰 힘이 됐다"며 "앞으로도 환자들 마음 속에 깊이 각인돼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회원 모두는 A교수가 보여준 헌신적인 의료 가치를 이어가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면서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했다.
앞서 지난달 24일 부산대병원 안과 B교수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B교수는 이날 새벽 4시 30분 쓰러진 채 가족들에 의해 발견됐고, 해운대백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1시간 가량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결국 숨졌다.
"대학병원 교수 86% 이상, 주52시간 초과해 근무"
이들 사망 원인을 단순히 전공의 공백으로 인한 과로와 연결 짓기는 어렵지만 의료계에서는 무관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실제 B 교수 사망 이후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전공의 이탈에 따른 교수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호소하며 고용노동부에 수련병원에 대한 근로감독을 요청한 상태다.
전의교협은 지난 2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전공의 수련병원 근로감독 강화 요청의 건'에 관한 공문을 고용부에 보냈다.
공문에서 이들은 "최근 수련병원 교수들의 급격한 업무 증가로 피로도 가중 및 소진, 과로에 의한 사망사고 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환자 안전에도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다"고 명시했다.
이어 "과로로 내몰리고 있는 수련병원 교수들의 장시간 근무, 36시간 연속 근무 등 위반 사항에 대해 근로감독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수련병원 경영 책임자에게 과로사 예방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준수하도록 지도해 달라는 요구도 담았다.
경기도의사회 역시 잇따른 현직 의대 교수들의 비보에 비통한 심정을 밝히며 이들 교수들에 대한 산업 재해 인정, 국가 유공자에 준하는 예우를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의사회는 22일 입장문을 내어 "윤석열 정부가 지난 2월 초 부터 일방 강행하고 있는 망국적 의대증원 및 필수의료 말살 패키지 정책 결과 전공의 사직, 의대생 휴학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교수들이 외래 및 당직 근무라는 주52시간 근로기준법을 심각하게 초과하는 고강도 업무를 국가 명령에 의해 강요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사회에 따르면 지난 4월 초 빅5 병원 대학병원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교수 86% 이상이 주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다.
주 80시간 이상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교수도 26.4%, 주 100시간 근무하는 교수도 7.9%에 달한다.
또 교수 60% 이상은 이미 설문 시점에 중등도 이상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고 있었고, 대다수는 한 달 이내 신체적, 정신적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입장문에서 경기도의사회는 "의대 교수들의 연이은 죽음을 초래한 윤석열 정부는 희생자에 대한 산업 재해 인정, 국가 유공자에 준하는 예우를 시행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의대 교수들을 악마화하며 살인적 노동을 강요한 결과 초래된 간접 살인에 다름없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의사회는 "대한민국 의료농단 사태, 그로 인한 강제노동 간접살인 사건에 대한 노동을 강요한 국정 책임자 조규홍, 박민수를 처벌하고, 모든 정책을 원점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주52시간 근로기준법 이상의 근로를 강요받다 유명을 달리한 두 교수에 대해 산업재해와 정부의 명령에 의한 희생이므로 국가 유공자에 준하는 예우를 하라"고 목소리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