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증원을 두고 의료계에 대화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2000명 증원'만큼은 지속 고수하며 의료계의 실망만 더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의료계가 의대 증원을 멈출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여긴 집행정지 신청마저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지금까지 진행된 집행정지 신청 중 사실상 유일한 기대주로 남은 의대생 1만3000여 명의 소송이 이 사태의 탈출구가 될 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편집자주]
지금까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제기된 집행정지 신청은 총 8건이며 의대 교수들이 시발점이 됐다.
전국 33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의 대표들은 지난 5일 서울행정법원에 보건복지부 및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2025년 의대 2000명 증원처분 및 후속처분에 대한 취소소송과 더불어 집행정지 신청도 제기했다.
이들은 정부의 증원 처분이 고등교육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고등교육법 제34조의5에서 대입전형 시행계획인 해당 입학 연도의 1년 10개월 전까지 공표한다고 규정했으므로 이번 의대 증원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집행정지 신청 당시부터 법조계에서도 두 가지 문제, 처분성과 적격성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이 행정처분으로 이행되지 않은 상태며, 또 교수들이 원고로 인정받기 위한 불이익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건을 담당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김준영)는 지난 2일 적격성을 문제삼아 각하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서울소재 의대 교수들의 경우 증원이 없었으므로 법률상 이익 침해가 없다"며 "지역소재 의대 교수들도 학생 숫자가 많아진 부분에 대해 고등교육법령이 별도로 교수들의 법익을 보호하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원고 적격을 인정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나마 소득이라면 정부가 지난달 20일 의대 증원 배정을 마치면서 처분성은 인정됐다는 점이었다.
뒤이어 교수‧전공의‧의대생‧수험생 등 18명이 제기한 두 번째 소송 역시 지난 3일 같은 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김정중)으로부터 원고적격을 인정받지 못해 각하결정을 받았다.
재판부는 각하결정문에서 "신청인들에게 집행정지 신청 자격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증원 직접 상대방은 의과대학을 보유한 각 '대학의 장'이고, 신청인들은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에 불과하다"고 봤다.
전공의와 의대생 등 5명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각각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역시 각각 지난 4일과 15일 적격성이 발목을 잡으며 각하됐다.
8건의 소송을 대리하는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는 "각하 결정 취지에 따르면 각 대학 총장이 소송을 내야한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며 "서울고등법원에 항고해 상급 법원의 차원 높은 판단을 구하겠다"며 즉시항고의 뜻을 밝혔다.
이 변호사는 이어 "원고적격이 있는 대학총장들이 행정소송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전국 의대교수들은 각 대학총장에게 '12일 오후 11시까지 행정소송 등을 제기할 의사가 있는지 알려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의대 증원 직접적 피해자 '의대생' 소송, 가장 중요한 판결될 것"
현재 남은 집행정지 신청은 부산대 전공의와 의대생 1만3057명 등이 각각 제기한 4건이다. 의대생들의 소송은 3건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법률대리인 측은 전체 의대생 1만8000여명 중 약 73% 달하는 이들이 제기한 소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의대생이 이번 의대 증원에 따른 불이익을 가장 직접적으로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원고 적격성을 인정받을 가능성도 가장 높다는 판단이다.
이 변호사는 "의대생들은 의대 증원으로 자신들의 대학이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기준 미달로 이어져 의사국시 응시자격이 박탈될 것으로 우려한다"며 "이들의 소송에서 승부가 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은 또 해당 소송에서 의대 증원 방침이 과학적 근거가 없고, 절차적‧민주적‧정치적 정당성도 없으며, 외국 사례까지 조작돼 수험생들 입시에 대혼란을 준다는 점을 피력했다.
이 변호사는 "대입을 5개월 앞두고 대입 전형을 바꾸라고 강요한 것은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학살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유일했다"며 "증원에 필요한 교육, 실습 건물 등이 완성되는 데 최소 6~8년 이상이 필요하나, 입학생들은 이 기간에 강의실과 실습실 없이 부실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다만 앞선 두 번째 소송에서 재판부가 의대생들의 적격성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이들의 주장 역시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전의교협,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제기 예정
한편, 앞서 각하결정을 받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및 가처분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행정소송을 먼저 제기한 것은 법원에서 원고적격이나 처분성을 이유로 각하되는 경우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각하결정에 따라 이제는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2000명 증원이란 공권력 행사를 통해 교수의 자유,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키로 결정했다.
이어 "가처분 신청을 통해 전국 40개 대학이 4월말 대입전형 입시요강을 발표하기 전에 정부의 공권력 행사를 중지시키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