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1] 3월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 부의 확정에 따라 3월말 최종 입법 여부가 가려질 간호법·의료인면허취소법이 모든 보건의료 현안 이슈들을 블랙홀처럼 집어삼키고 있다. 이 법안들의 국회 본회의 통과에 반대하는 의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 400만명 보건의료복지단체들과 ‘간호법 제정’을 외치는 50만명 간호사들 간에 갈등은 봉합이 불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정부와 의료계가 중지를 모아 추진해야 할 필수의료 활성화 등 다양한 의료제도 개선에도 제동이 걸렸다. 간호법은 왜 이렇게 의료 갈등 뇌관으로 작용했을까. 이를 둘러싼 각 직역단체들 입장과 해법 등을 살펴봤다.
최근 의료계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논제는 간호법이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범의료계에서는 격렬한 반대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의된 간호법은 3월 30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상정 표결을 거쳐 최종 입법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
간호법 제정 논의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협은 대한간호협회의 독자적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대한간호사협회는 지난 2002년 대선 때부터 간호법 제정을 선거공약에 포함시키고, 2004년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였다. 이후 2005년 처음으로 간호법이 발의됐다.
의협은 “의료체계에 커다란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중대한 사항”이라며 반대했다.
당시 의협은 “각 의료인 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법 개정사항을 함께 검토해 공동으로 의료법령 개정을 추진, 윤리규정 준수 등의 사항을 현행 의료법에 추가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입법 방안”이라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조차 안됐다.
2019년에도 간협은 간호법 제정을 또 한 번 시도했다. 간호법 제정 선포식까지 개최하며 의지를 피력했다.
대한간호협회 신경림 회장은 당시 선포식에서 “간호정책 선포식을 개최한 이유는 세계보건기구가 보편적 건강보장 실현에 기여하는 전세계 간호사를 격려하고자 2020년을 '간호사의 해'로 선정했기에 이를 국민에게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신경림 회장은 “우리나라는 매우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현 보건의료와 복지시스템이 지속가능할지 엄중한 고민과 해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치료 중심에서 예방과 만성질환 관리로, 공급자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그리고 병원 등 기관 중심에서 지역사회 네트워크 중심으로 보건의료 혁신이 시급하다”며 “우리 40만 간호사들은 그 해법이 간호법 제정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선언한다”고 강조했다.
이 시기에는 ‘간호조무사법’이 대척점에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정확히 말하면 대한간호조무사협회를 법정단체로 인정하는 의료법 개정안이다.
당시 홍옥녀 회장은 “우리나라는 간호조무사가 간호사가 되는 길이 원천봉쇄돼 있고 직업이 신분인 양 직종차별이 심각하다”며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동일직군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종속관계가 아니라 직업상 업무의 분업관계이기 때문에 각각의 권리를 고유하게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측은 비슷한 시기 대규모 장외집회를 개최하며 열을 올렸지만 결국 두 법안 모두 논의가 이뤄지지 않으며 사장되는 분위기였다.
코로나19 이후 급물살 탄 ‘간호법’ 제정
간호법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21년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현장에서 사투를 벌인 의료진에 여론이 집중되면서 자연히 간호법에도 힘이 실리게 된 것이다.
2020년 말 간협 회장 4연임에 성공한 신경림 회장 또한 ‘간호법 제정’을 숙원과제로 꼽았다.
여야 의원들이 연달아 법안을 발의했고, 보건복지위원회 심사 단계까지 이르렀다. 다만 직역 간 대립을 의식해서인지 2021년 말 복지위는 이를 제1법안소위에 보류했다.
보건복지부는 간호법에 대해 ‘신중’이라는 의견을 나타내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 자격·업무범위 등이 현해 의료법에서 규정한 통합체계로 이뤄지는 것이 효율적으로 봤고, 보건의료인력과 관련해 지원·육성·처우 등도 별도로 정할 경우 직역간 연계성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이에 간호계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비롯해 간호대 학생들은 동맹휴학과 국시 거부 등 단체행동 준비를 하기도 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의료인 중 제일 노동 강도가 심한 부분이 간호사다.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근거법 하나 없이 상당한 소외감을 느낀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며 간호법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범의료계’가 집결했다.
의협과 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한국노인복지중앙회·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등이 처음으로 ‘10개 단체 긴급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는 추후 13개 단체로 확장된 ‘보건복지의료연대’로 발전한다.
2022년 5월, 임시국회가 다가오자 의협은 2020년 이후 또 한번의 총파업까지 계획하며 투쟁을 준비했다.
국회에서도 논쟁은 격렬했다. 5월 임시국회 때 보건복지위는 당초 의사일정에 간호법 논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민석 보건복지위원장 제안에 의해 협의를 시작했다.
간호법 논의가 시작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격하게 반발했다.
여당 간사인 강기윤 의원은 “예측가능한 의사일정이 아니다”라며 “극단적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제1법안소위원장인 김성주 의원의 간호법 논의 결과 보고가 이어지자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퇴장했고, 결국 간호법은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후 법제사법위원회는 직역 갈등을 비롯해 복지위 내 여야 의원 간 마찰을 의식한 듯 간호법을 회의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으며 계류 쪽으로 매듭을 지으려했다.
이후에는 간협과 보건복지의료연대 1인시위 및 총궐기 대회의 연속이었다. 상임위를 통과한 간호법이 법사위를 거치면 본회의를 통해 입법화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법사위 계류 결정에 보건복지위가 항의하면서 이번에는 ‘본회의 직회부’가 이슈로 떠올랐다. 올해 1월 개최된 법사위에서 간호법은 제2법안소위에 회부됐다.
전체회의 당시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위헌적 요소들이 많고 용어가 일관성이 없어 법 체계를 정비한 뒤 추가적으로 심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전체회의 바로 다음날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법사위가 입법안을 회부만 한 뒤 심사를 미룬다면 국회법에 정해진 절차를 활용에 본회의 직회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2월 개최된 복지위에서는 법사위에 계류된 7개 법안 본회의 직회부에 대한 무기명 투표를 시행하고 찬성 16표, 반대 7표, 무효 1표로 가결했다.
복지위 국민의힘 측 간사인 강기윤 의원은 "법사위에서 소위원회 재개최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만큼 절차를 지키면서 가는 것이 맞지 않냐"며 "법사위에 계류된 법안을 상임위로 끌고 와 논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훈식 의원은 “의료법 개정안은 721일 째 계류 중이다. 수개월 간 처리하지 않고 있다가 본회의에 올린다고 하니 법사위에서 논의할 기회를 달라는 것은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다”고 맞섰다.
의료계 끝나지 않은 투쟁…대안은 있나
본회의 부의가 결정되자 간호계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간협 측은 “간호법은 코로나19 사태로 간호인력이 보건안보의 핵심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여야 가릴 것 없이 법을 제정하겠다며 앞다퉈 발의된 법안으로 2020년 제21대 총선과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여야 모두 국민 앞에서 제정하겠다고 수시로 약속했던 공약”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간호법이 제정되면 숙련된 간호인력이 양성돼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을 증진시킬 수 있게 된다”며 “초고령사회와 코로나19 팬데믹 등 주기적인 공중보건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반드시 간호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총력 투쟁’을 선포했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은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법이 아니다.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를 붕괴시키고,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악법”이라며 “간호사만 특혜를 받고, 다른 보건의료인들은 피해를 입는다. 간호사들이 다른 보건의료직역의 업무를 침탈하도록 허용하고, 간호조무사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사, 치과의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응급구조사, 요양보호사까지 대다수의 보건의료인들이 간호법을 반대한다”며 “그럼에도 야당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은 간호법을 강행처리해 간호법을 반대하는 대다수 보건의료계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모든 보건의료직역이 상생할 수 있는 법안 제정이 가능함에도 이를 도외시하고 보건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간호법을 야당이 강행처리하고 있는 만큼 400만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이 폐기될 때까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수호하기 위해 총력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박명하 위원장을 필두로 비상대책위원회를 설립, 간호법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즉시 총파업을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와 함께 의협과 보건복지부가 참여하는 의정협의체에도 불참을 선언했다.
복지부는 “필수의료 강화 및 의료체계 개선, 의학교육 정상화, 비대면 진료 제도화, 필수의료 인력양성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시급하고 중대하다”며 의정협의체 복귀를 요청했지만 의료계 입장은 현재까지 완강하다.
한편, 의협 비대위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며 반발하고 있지만, 과연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 만한 강력한 타개책이 나올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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