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면서 의료계도 정부도 국민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민은 응급상황에서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정부는 응급의료시스템 구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의료계는 의대정원 확대 등 반대의견 수용을 떠안게 됐다. '응급(應急)'은 말 그대로 급한 정황에 대처한다는 의미지만 현 상황을 보면 응급에 대한 대처가 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 불신 확대에도 의료계는 자구책이 없는 현실적 한계에 봉착해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현재 각계에서 제기되는 응급실 문제에 대한 의견과 적절한 해결 방안에 대해 모색해 본다.
응급실 이슈 올해에 부각됐다? ‘NO’
올해 알려진 응급실 뺑뺑이 사건만 벌써 3건이다. ‘경기도 용인시 70대 노인 교통사고’, ‘대구 10대 여학생 추락사고’, 5세 아동 고열 응급실 5곳 전전 후 재이송 사망‘ 등 이슈가 끊이질 않고 있다.
5세 아동의 경우 단순 응급실 뺑뺑이 문제로 볼수 없지만, 전혀 연관이 없는 사안은 아니다.
과거부터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수 차례 지적됐던 문제지만 ‘도대체 왜 해결이 안되는가’라는 의문이 여전히 따라붙고 있다.
응급실 대응책 개선은 올해가 처음일까? 물론 답은 ‘NO’다.
지난 2015년 복지부는 응급실 뺑뺑이로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전국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20개에서 41개소로 확대하고, 응급수가 1300억원 투입을 예고했다.
이 외에도 경증환자의 응급실 방문 시 외래본인부담을 올리고 입원본인부담을 적용해 과밀화를 해소한다는 방침을 구상했다. 이것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의 시작이었다.
당시 복지부 관계자는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전문의가 상주하고 전용 중환자실을 갖추고 있어 중증응급환자가 골든타임 내 적절한 응급처치와 수술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응급의료 법률 시행 8년 지났지만 현실은 ‘제자리’
8년이 지난 지금 현재로 보면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물론 개선된 부분은 일부 있겠지만 그 결과는 응급실 뺑뺑이 사망사건으로 나타났고 새로운 대책 수립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난 2016년부터 매년 응급의료기관 평가를 통해 주요 병원들을 응급시스템을 평가하지만, 사실상 실효성이 부족한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응급의료기관 평가는 ▲전담전문의 ▲전담간호사 ▲병상포화지수 ▲재실시간 체류환자 ▲적정시간내 진료율 ▲최종치료 제공률 ▲전입중증응급환자 진료 제공 등을 평가한다.
많은 부분을 점검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응급환자 대응은 여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지 않으며 응급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평가들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평(平)이 지배적이다.
응급실 뺑뺑이 원인으로는 ▲응급의료인력 및 병상 등 인프라 부족 ▲응급실 과밀화 ▲경증과 중증 혼재 ▲비효율적인 응급의료전달체계 ▲지원대책 부족 ▲제도적 미비 등이 주로 지적된다.
정치권, 분석 착수…응급의료체계 전반 검토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정치권도 원인 분석에 나섰다. 소아전문의 부족 사태까지 더해지면서 필수의료에 대한 위기감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에 따르면 2018부터 2022년까지 119 구급대의 1차 재이송 건수는 3만1673건, 2차 재이송 환자는 5545건으로 총 3만7218건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응급실 뺑뺑이 원인은 전문의 부재(31.4%), 병상 부족(15.4%)으로 확인됐다. 뺑뺑이 사건 10건 중 3건이 전문의가 없어서 제대로 치료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어 입원실(3.0%)과 중환자실(2.3%) 부족 순이었다. 수술실 부족(0.1%)은 극소수였고, 환자와 보호자 변심(4.6%), 1차 응급처치(2.4%), 의료장비 고장(1.6%) 주취자(1.2%) 등의 사유도 있었다.
최 의원은 “복지부는 권역응급의료센터 등 인프라 확대를 예고했지만, 운영 중인 응급실도 의료진이 없어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설만 늘리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전문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응급실 문제, 상급종합병원까지 불똥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과밀화로 최근 된서리를 맞은 곳이 있다. 바로 빅5 병원 중 하나인 삼성서울병원이다.
삼성서울병원은 빅5 병원 최초로 의료질평가 등급 하락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응급실 장기대기시간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 것으로 알려졌다.
등급 하락으로 삼성서울병원은 65억원의 의료질평가지원금이 삭감될 예정이다. 이번 사태로 응급실 과밀화 문제는 국내 최대 병원도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이 다시금 부각됐다.
삼성서울병원 입장에서는 억울함이 존재한다. 여타 병원의 경우 의료질평가와 관련된 요인을 주기적으로 관리했지만, 삼성서울병원은 최대한 환자를 수용했다는 항변이 외부로 알려지면서다.
즉, 응급실 과밀화로 환자 체류 시간이 길어져 ‘응급의료 적정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말못할 사연이 있던 것이다.
해당 경우가 사실이라면 응급실 뺑뺑이 없이 환자를 받은 병원에게 억울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대책 마련이 절실해 보인다. 병원도 불가항력적이라는 상황에서 예외일 순 없기 때문이다.
다만 중증응급환자의 경우 과밀화로 환자를 거부하지 않더라도 효율적이고 신속한 대처가 없다면 소용이 없는 만큼 추가적인 개선이 절실히 요구되는 대목이다.
복지부, 의대정원 확대 등 특단 대책 강구
복지부는 이번 응급실 뺑뺑이 사태에 대한 원인으로 전문인력 부족을 꼽았다. 인력과 직결된 의대정원 확대는 의료계의 가장 민감한 사안 중 하나로 이를 해결책으로 지목한 것이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확대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강력히 고수했던 만큼 불편한 상황을 직면하게 된 셈이다.
복지부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부족 문제에 대해 수가를 통해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인프라 확충, 합리적 보상과 더불어 근무 여건으로 필수의료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의미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라며 “고령화로 건강 수요가 늘어 의사가 부족한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에 따라 지역별 컨트롤타워인 지역응급 의료상황실에서 환자 중증도와 병원별 가용 자원 현황을 고려해 환자 이송을 지휘·관제할 예정이다.
또 이송환자를 의무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했는데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과밀화를 막기 위해 경증환자는 구급대가 권역별 응급의료센터 이하 기관으로의 이송을 원칙으로 담았다.
다만 이송병원에서 환자를 의무적으로 수용한다는 내용을 두고 의료계 반발이 큰 만큼 추가적인 대책 및 논의가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소방당국도 추가 대책을 내놨다. 지역 실정에 맞도록 이송 지침을 정비하고 시도 119 상황실의 인력을 늘리는 등 단계별 대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 경증·중증 환자의 이송 병원을 구분하고 구급대와 병원이 환자정보를 공유해 구급대원의 전화 없이도 병원이 수용 가능 여부를 밝히면 해당 병원으로 바로 이송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선결조건 ‘경증환자 분류·불가항력적 사고 책임 면제’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사망사고 원인은 개별 병원의 이기적인 환자거부가 아닌 중증외상응급환자에 대한 전반적인 인프라 부족과 병원 전(前) 환자 이송, 전원체계 비효율성으로 평가했다.
의사회는 “중증도 분류는 후속진료를 전제로 이뤄지는 행위지만 119로 내원한 모든 환자를 분류소로 진입시킨 후에는 전원이 필요할 경우 접수와 비용이 발생해 분쟁 소지가 있다”고 지목했다.
특히 현 대책이 변동없이 통과될 경우 대학병원급 및 권역급 상급종합병원 진료 지연이나 치료 결과 악화로 인한 법적인 책임 문제가 다수 발생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수용거부 역시 후속진료와 최종진료 부족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환자 수용 여부의 판단은 상황마다 다를 수 있는 만큼 법적으로 강제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것이다.
의사회는 또 “감기환자나 교통사고 경증환자도 119를 타고 내원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응답 대장을 전수 기록토록 한 복지부 처분은 현장 전문의들에게 새로운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과도한 제한적 규정들은 이송지연 등에 따른 책임이 현장 의료진에게 전가돼 민형사상 소송의 근거가 돼 수많은 송사를 유발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응급의학회는 경증환자의 119 이송 중단과 상급종합병원 이용을 줄일 수 있는 보다 강력하고 적극적인 대책이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외에도 ▲환자 분류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 명확화 ▲응급환자 강제수용 시 발생할 법적 책임 감면 등을 주요 개선안으로 요구했다.
대한응급의학회 최성혁 이사장(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의학과)은 보건당국이 제시한 해법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이후 복지부는 ▲지역응급센터 통한 응급환자 이송 시 병원 수용 의무화 ▲권역응급의료센터 경증환자 이송·진료 제한 등을 최우선 대책으로 제시했다.
기존의 응급실 환경에서 중증 환자 수용을 위해 경증 환자를 빼낸다는 발상 자체가 국민 정서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가령 감기에 걸린 암환자는 평소 진료 받던 의사가 있는 대형병원으로 오기도 한다”며 “단순 경증환자로 분류했다가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일단 환자를 받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