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발전에 따라 암을 극복할 수 있는 항암제도 진화하고 있다. 1990년대 1세대 화학항암제(세포독성항암)가 주를 이뤘다면 1990년대 후반부터 2세대 표적항암제가 등장, 큰 관심을 받았다.
표적항암제는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공격, 부작용 부담이 컸던 화학항암제의 단점을 개선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상이 제한적이고 전이암 치료에 있어 한계가 있었다. 일부 부작용에선 심각한 문제를 동반했다.
기존 항암제의 대안으로 개발된 것이 3세대로 불리는 면역항암제다. 기존 약물이 타깃 암에만 작용하는 반면 면역항암제는 다양한 암 종에 적용 가능하고 부작용이 적으며 내성이 생기지 않는 장점이 있다.
현재 시장을 선도하는 면역항암제는 모두 글로벌 ‘빅파마’들의 제품이다. 가장 대표적인 BMS·오노약품공업의 ‘옵디보’, MSD의 ‘키트루다’가 국내 시장 허가를 받았다.
이들은 현재 건강보험 급여를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올 초 허가를 힉득한 로슈의 ‘티센트릭’도 출시를 준비 중이다.
조병철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면역항암제는 내성이 없기 때문에 향후 항암치료는 면역항암제를 근간으로 다른 치료를 더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5년 뒤 최다 매출 의약품은 ‘면역항암제’
5년 후인 오는 2022년 전체 의약품 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의약품이 면역항암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암 치료에 있어 면역항암제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제약산업 분석 전문회사 이벨류에이트파마는 2022년 매출액 예상 순위에서 2015년 현재 143억달러로 가장 많은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애브비의 ‘휴미라’를 면역항암제 ‘옵디보’가 뛰어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2022년 휴미라 매출액을 136억달러로 예상한 반면 옵디보 매출액은 146억달러로 전망했다. 휴미라는 전 세계 의약품 중 가장 많은 매출액을 올리는 의약품인데 5년 뒤 옵디보가 휴미라를 앞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밸류에이트파마는 ‘키트루다’ 역시 매출액이 껑충 뛸 것으로 예상했다. 2015년 5억달러 매출에 그친 키트루다는 오는 2022년 이보다 10배 이상 많은 59억달러를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키트루다의 오는 2022년 매출액 예상 순위는 9위다.
로슈가 개발해 현재 FDA의 허가를 받은 ‘티센트릭’의 경우 오는 2022년 53억달러의 매출이 예상되며 14위에 랭크됐다.
‘시장성 인정’ 글로벌사, 면역항암제 개발 박차
다른 글로벌사 역시 면역항암제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암젠은 새로운 이중특이성 면역 항암제 개발을 진행하기 위해 독일 생명공학기업 임마틱스 비오테크놀로지스 GmbH(Immatics)와 손을 잡았다.
양사는 각종 암을 표적으로 하는 차세대 T세포 관여(engaging) 이중특이성 면역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최대 13억달러 이상을 지불키로 하면서 연구협력 및 독점적 라이센스 제휴계약을 체결했다.
베링거인겔하임과 애브비는 CD-40 수용체에 관여하는 면역항암제 'BI655064'에 대한 글로벌 제휴를 체결했다. 애브비는 지난해 210억불에 파마사이클릭스를 합병하는 등 항암제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세번째 항PD-1 면역항암제의 상용화에 근접하고 있다. 개발중인 ‘더발루맙(durvalumab)’이라는 약물은 최근 방광암 적응증으로 미국 FDA로부터 ‘혁신 치료제’ 지정을 받았다.
최근 미국에선 화이자와 독일 머크(Merck KGaA)가 공동 개발한 면역항암제 바벤시오(Bavencio, avelumab)가 피부암의 일종인 전이성 메르켈 세포 암종(MCC) 치료제로 12세 이상의 환자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
대부분 제약사의 신약 개발 무게추가 항암제로 옮겨가고 있는 가운데 면역항암제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국내사 중에선 동아에스티, 녹십자, 한미약품, 유한양행, 대웅제약, 안국약품 등 상위사들이 보다 적극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승인된 임상시험 628건 가운데 항암제는 202건으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 중 면역항암제는 154건으로 항암제 임상시험의 76%에 달했다.
먼저 동아에스티는 지난해 말 면역항암제 후보물질인 MerTK 저해제 ‘DA-4501’을 483억원 규모로 미국 제약사 애브비에 기술수출했다.
아직 임상1상조차 진입하지 않은 물질분석 단계라 최종 상업화 가능성이 높지 않음에도 항암제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는 애브비가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미약품은 중국 바이오기업 이노벤트 바이오로직스와 면역항암 이중항체의 공동 개발 및 상업화를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면역항암 이중항체는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면역항암 치료와 암세포만 공격하는 표적 항암 치료가 동시에 가능하다. 2019년 임상 1상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녹십자 자회사 녹십자셀은 간암 면역세포치료제 '이뮨셀LC주'에 대한 임상 3상을 마쳤다. 현재 이뮨셀-LC의 글로벌 상업화가 추진 중이며, 국내에서는 간암 1차 치료제로 사용하고 있다.
녹십자의 또 다른 자회사 녹십자랩셀도 NK세포치료제 'MG4101'을 개발 중이다. MG4101은 현재 간암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이 종료됐다.
대웅제약과 자회사 한올바이오파마 역시 역항암항체의 후보 물질을 도출하는데 60억원의 연구개발 비용을 공동으로 투자했다. 이들은 테스크포스팀을 발족해 면역항암항체 후보물질을 개발한 후 해외 시장 진출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국약품은 지난해 인간항체 라이브러리 확보에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한 와이바이오로직스로부터 면역항암치료제를 도입키로 했다.
계약을 통해 안국약품은 와이바이오로직스에서 개발한 면역관문억제항체의 비임상시험과 임상시험을 추진한다. 체계적인 신약개발과정을 거쳐 글로벌 수준의 제품으로 상업화하는 것이 목표다.
가능성 높은 바이오벤처 러브콜···‘파이프라인 확보’
유한양행은 지난 5년 동안 바이오벤처에 1200억원 넘게 투자를 진행했다. 이중 절반 이상이 항암제 관련 바이오벤처다.
유한양행이 2011년 45억원을 투자한 엔솔바이오사이언스는 면역항암제 임상을 준비하고 있고, 2015년 100억원을 투자한 바이오니아는 면역항암제 'YH-siRNA2' 관련 후보물질을 탐색하고 있다.
작년에 미국 항체신약 개발업체 소렌토와 120억원을 투자해 공동 설립한 이뮨온시아는 전임상 단계의 면역항암제 3종류를 보유하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작년 10월 스웨덴 비악티카와 차세대 항암제 개발을 위한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동아에스티는 유전자 발현과 이를 조절하는 후성유전학에 기반한 신약 선도물질의 글로벌 개발·판매권을 확보해 연구에 들어갔다.
보령제약은 작년 7월 면역세포 치료제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바이젠셀에 30억원을 투자, 면역항암제 개발을 위한 전략적 협업체계를 구축했다. 올해 전임상을 시작으로 개발단계 희귀의약품 지정을 통해 빠른 허가를 받겠다는 계획이다.
녹십자 역시 바이오벤처 와이바이오로직스와 공동 연구를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면역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아직은 임상 단계 전이지만, 글로벌 진출 가능성이 높은 품목들은 임상 단계로 조속히 끌어 올리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바이오벤처사, 면역항암제 개발 열기 이어가
국내 바이오 벤처들의 면역항암제 개발 열기도 뜨겁다.
신라젠은 우두 바이러스를 활용해 간암을 치료하는 면역항암제 ‘펙사벡’의 국내외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펙사벡 임상은 오는 2019년 완료돼 2020년경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라젠은 또다른 면역항암 신약물질인 ‘JX-970’에 대한 임상1상을 조만간 실시, 다국적 제약사 기술수출을 준비 중이다.
유전체 분석기업 테라젠이텍스의 자회사 메드팩토는 김대기 이화여대 약학대학 교수 연구팀으로부터 기술이전받은 면역항암제 신약후보물질 ‘TEW-7197’에 대해 미국 임상2상을 승인받은 상태다.
크리스탈지노믹스와 와이바이오로직스는 각 사의 대표 항암 신약물질로 병용요법 치료제로 공동개발하기 합의했다.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크리스탈지노믹스의 분자표적항암제 'CG200745'와 와이바이오로직스가 개발 중인 면역항암제를 임상시험 등에 활용하게 된다.
제약계 한 관계자는 “기존 합성의약품 신약 개발에 투자하던 다국적제약사 중 일부는 진행 중인 개발을 포기하고 면역항암제로 선회했다”면서 “이는 결국 앞으로 제약시장을 선도하는 먹거리 중 하나가 면역항암제가 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상황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