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에 임상시험 차질…진료 이은 '연구공백'
대학병원 교수 업무 가중, 전(全) 과정 줄연기…글로벌 경쟁력 약화 불가피
2024.10.31 09:52 댓글쓰기



정부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대란’이 반년 넘게 이어지면서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특히 전공의 사직에 이어 교수들도 파업 행렬에 동참하면서 막대한 ‘진료공백’을 넘어 ‘연구공백’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임상시험 올 상반기 총 499건…두자릿수 감소


6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임상시험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임상시험은 개발 중인 약이나 진단 및 치료 방법 등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행하는 시험을 말한다.


임상 총책임은 전문의가 담당하고 환자 모집이나 데이터 정리와 같은 실무 업무는 전공의들이 수행하는 방식이다.


임상시험은 보통 규모가 갖춰진 대학병원에서 이뤄지고 있으나 현재 병원 내 혼란으로 일정대로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임상시험 차질이 현실화하고 있는 모습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승인된 임상시험은 총 499건으로 이는 전년 대비 10.3% 줄어든 규모다.


국내 제약사 임상은 170건, 다국가 임상 등 외국계 제약사 임상은 169건으로 집계됐다. 신약 개발 임상시험은 총 344건으로 지난해보다 3.6% 하락했다. 


특히 연구자 임상 및 제네릭 출시를 위한 생동성 시험은 본임상과 비교하면 더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연구자 임상시험은 전년 동기 대비 19.3% 하락한 46건이었다. 생동성시험 역시 2023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23.2% 축소된 109건으로 조사됐다. 


특히 빅5 병원 전공의들이 본격적으로 사직서를 낸 시기인 3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연구자 임상시험은 26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46건과 비교하면 거의 반토막이 났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교수들의 업무는 크게 진료, 연구, 교육으로 나뉘는데 전공의가 사직한 이후 진료에 투입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늘어나면서 다른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상시험의 경우 기존에 진행하던 것은 유지하겠지만 새로운 과제 승인 등 신규 과제를 진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신약 개발 임상은 물론 연구자 임상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임상 전(全) 과정 삐걱…‘코리아 패싱’ 현실화


특히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도 파업에 동참하면서 임상시험승인계획서(IND) 작성과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심사 등 임상시험 전(全) 과정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IRB 심사는 연구에 참여하는 대상자의 권리·안전·복지 보호와 연구 대상자 임상 연구 참여 타당성을 검토하고 임상시험의 진행 여부를 승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전문가들은 의정갈등이 임상시험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상황이 지속될수록 임상시험 감소폭은 더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글로벌 임상시험 시장에서 국가 기준 5위, 서울은 도시 기준으로는 1위에 오를 만큼 시장을 주도했지만 갈수록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CRO(임상시험수탁) 기업 관계자는 “전공의 공백으로 진행 중이던 임상시험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특히 제약사에서 임상 자체를 하지 않고 미루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미 허가된 의약품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임상재평가도 마찬가지다.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환자 모집이 사실상 중단된 의료기관이 많아서 임상재평가 수행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여전히 의료 공백이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임상재평가를 수행 중인 제약사의 경우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업체들의 입장에선 의약품 처방 및 투여, 투여에 따른 검진, 대상자 의학적 처치 등, 임상시험과 관련한 모든 의학적 결정이 의사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임상시험 차질로 인한 손해는 막대하다.


최악의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도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글로벌 제약사가 다국가 임상시험에서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 동남아시아 등으로 무대를 옮기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도 현실화하고 있다.


학회 활동도 제한…국제 학계 신뢰도 추락 우려


국제 공동연구가 많은 의과학 분야에서 학계 신뢰도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한 뒤 신규 연구에 착수조차 못해 연구자들의 연구 활동과 논문 투고 위축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한의학회지(JKMS) 3~5월 국내저자 논문 투고 수는 전년 동기대비 50%가량 줄었다. 


매주 6건 이상 학술지에 게재됐지만 전체 투고량이 줄어들면서 3건을 게재하는 것조차 힘든 실정이다.


다른 국내 주요 의학학술지 상황도 마찬가지다. JKMS와 함께 3대 국내의학학술지로 꼽히는 연세의학학술지(YMJ)와 대한내과학회지도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논문 투고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8%, 20% 감소했다.


국내 주요 전문학회 학술지 중 하나인 대한이비인후-두경부외과학회지도 지난해 1분기보다 국문학술지 투고 수가 72%나 줄었다.


투고되는 논문 양과 질이 모두 저하되면서 의학 학술지들은 대내외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국제 학계에서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지표인 인용지수(IF)가 떨어지고 학술지를 운영하기 위한 재정적 문제가 커지고 있다.


대부분 학술지는 저자부담금 제도를 통해 운영비를 충당하는데 국내 연구 활동이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에 접어들면서 수입도 끊겼단 것이다.


실제 대한의학회는 7월 10일부터 공식국제학술지 JKMS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논문 처리비용을 30% 인상했다.


원저, 리뷰, 특집 기사와 관련한 비용은 99만원에서 128만7000원, 브리프 커뮤니케이션, 증례 보고서는 65만원에서 84만5000원으로 20여만원 올랐다.


피인용지수(IF, Impact Factor) 4.5로 유력 국제학술지로 떠오른 JKMS가 의정갈등 여파로 발생한 운영 적자 악화를 견디지 못해 내린 극약 처방이다.


의학회 관계자는 “의정갈등 여파로 논문 투고가 대폭 줄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며 “의정갈등 장기화로 교수들이 당직에 동원되면서 심사인력 역시 대폭 줄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하반기부터 연구역량 감소가 뚜렷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들이 주도했던 학회 연구가 대폭 줄어들고 젊은 연구자들도 기회가 적어지는 등 미래 연구동력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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