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기기 업계에서 경영권을 매각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업체들은 장기간 이어온 창업자 체제에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찾겠다는 취지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본잠식, 오너리스크 등 기업 불확실성이 적잖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경영권 방어에 힘쓰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까지 내주는 상황을 두고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부정적인 견해도 관찰된다.
국내 치과용 임플란트 업계 1위 오스템임플란트는 국내 사모펀드인 유니슨캐피탈코리아와 MBK파트너스에 경영권 매각을 추진 중이다.
유니슨캐피탈코리아는 지난 25일 MBK파트너스와 특수목적법인 ‘덴티스트리인베스트먼트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오스템임플란트 인수를 위한 공개매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덴티스트리인베스트먼트는 오는 2월 24일까지 오스템임플란트 주식을 주당 19만원에 공개 매수한다. 오스템임플란트는 현재 약 1500만6672주가 발행돼 있다. 미상환 전환사채 전환가능 주식수가 56만9833주가 남아 있다.
덴티스트리는 오스템임플란트 잠재발행주식 중 최소 239만주(15.4%), 최대 1117만주를(71.8%)를 공개 매수한다. 덴티스트리가 책정한 주당 매수 가격 19만원은 오스템임플란트 전거래일 종가 16만2500원보다 16.9% 높다.
덴티스트리는 또 지난 21일 오스템임플란트 창업자 최규옥 회장과 주식매매계약 및 투자합의서를 체결했다.
최 회장 보유 주식 293만주 중 144만주를 공개매수 가격과 같은 가격으로 매수하겠다는 내용이다. 공개매수가 성공하면 유니슨캐피탈코리아 컨소시엄은 오스템임플란트 1대 주주가 되고 최규옥 회장은 9.6%를 보유한 2대 주주가 된다.
분자진단 업체인 랩지노믹스도 루하 사모펀드(PE)에 최대주주 지분과 제3자 배정, 전환사채 발행 등으로 통해 총 1227억원에 경영권 매각을 마무리했다.
랩지노믹스는 진승현 대표 보유한 주식 287만주를 루하PE에 매각했다. 루하PE는 진승현 대표 지분을 비롯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 227억원 참여와 전환사채 400억원 인수 등 총 1227억원을 랩지노믹스에 투자한다.
랩지노믹스는 지난해 8월 루하PE와 제3자 배정 조달방식으로 총 940억원 규모 투자계약 체결 및 최대주주 변경 계획을 공식화 했다.
당시 루하PE는 계약과 공시를 통해 진승현 대표 지분 430만주(12.7%)를 약 900억원에 취득하고 3자 배정 유상증자와 전환사채에 940억원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 경영권 매각은 지난해 8월 계약 당시 밝혔던 인수와 투자 규모, 지분율보다 낮아졌다.
루하PE는 전환사채를 제외한 랩지노믹스 지분 599만9767주를 획득해 지분율 16.16%로 최대주주로 올라섰으며, 진 대표 잔여 주식인 143만8948주(3.88%)에 대한 의결권도 위임받았다.
재활 의료기기 전문기업 네오펙트 역시 경영권 매각에 나섰다.
네오펙트는 지난 8일 최대주주인 반호영 대표이사 등 3인이 보유 지분 195만주(10.16%)와 경영권을 스칸디신기술조합 제278호, 프렌다신기술조합 제271호에 매각키로 했다고 밝혔다. 양수도 대금은 주당 4087원으로 약 80억원 규모다.
원매자인 신기술조합은 지난해 7~8월 결성된 펀드로 운용사는 이스트게이트인베스트다. 네오펙트는 경영권 매각과 함께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으로 자금 수혈도 동시 진행한다.
먼저 스칸디신기술조합제278호, 프렌다신기술조합제271호 등을 대상으로 40억원대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푸티에신기술조합 제213호를 대상으로는 10억원 유상증자에 나선다.
또 이스트게이트인베스트먼트가 최다출자자인 하이브 신기술조합 제270호를 대상으로 총150억원 규모 제2·3·4회차 전환사채도 발행한다. 하이브 신기술조합 제270호는 네오펙트 CB를 50억원어치씩 세 번에 걸쳐 인수할 예정이다.
업체들이 경영권 매각에 나선 이유는 장기간 이어온 창업자 체제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랩지노믹스는 진 대표가 2002년부터 20년 동안 회사를 진두지휘했다. 회사는 신사업을 하려면 대규모 투자금이 필요했으나 투자금을 받을 경우 진 대표 보유 지분이 낮아 경영권 매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다만 그 이면에는 자본잠식, 오너리스크 등 기업 불확실성도 적잖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실제 오스템임플란트는 올해 초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KCGI가 경영권에 대한 공격을 시도한 게 원인이 됐다는 게 지배적이다.
KCGI가 지분을 100% 보유 중인 에프리컷홀딩스는 지난 5일 오스템임플란트 지분을 5.57%에서 6.57%로 늘려 3대 주주로 올라섰다.
오스템임플란트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권 영향'이라고 기재한 KCGI는 지난 18일 오스템임플란트 측에 주주서한을 보내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을 촉구하고 최 회장 퇴진을 압박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덴티스트리와 최 회장이 공동 경영을 이어갈 예정이다. 양측은 오스템임플란트 이사회에 각각 4명, 2명의 후보자를 지명하고, 1명은 합의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네오펙트 역시 코스닥 상장 이후 줄곧 적자 기조를 이어오는 상황에서 침체된 분위기를 해결하는 카드가 절실했던 상황이다.
업계에선 경영권 방어에 힘쓰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까지 내주는 상황을 두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경영권 매각은 결국 창업주가 스스로 한계를 느껴 탈출했다고 보는 것”이라며 “명분을 내세워 경영에서 탈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