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산업계·학계가 정밀의료 생태계 조성을 위해 내년부터 100만명 규모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구축할 계획이지만 아직까지 의료기관 및 환자들 협조가 쉽지 않아 고민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미래의료연구부·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보건의료 자원·정보를 수집·연구해 정밀의료 및 바이오헬스 산업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활발히 공개하고 있다.
10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3 바이오코리아’에서 첫날 ‘헬스케어 빅데이터 쇼케이스 사업’의 추진 현황·계획이 공개된 데 이어 둘째날에는 ‘보건의료 연구자원에 대한 정책·산업적 활용 제언’을 주제로 패널토론이 열렸다.
좌장은 질병청 국립보건연구원 미래의료연구부 박현영 부장이 맡았으며 손미진 수젠텍 대표, 안준용 고려대 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부교수, 원성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차동철 네이버헬스케어연구소 센터장 등이 참석했다.
데이터 제공 꺼리는 문화 여전···보상 기반 설득 노력
박현영 보건연구원 부장은 “영국은 연구 시 포괄적 동의를 받고, 데이터를 제공하더라도 전문가들이 활용한다고 하면 흔쾌히 협조하는 분위기라 부러웠다”며 “우리나라는 코호트 연구 시 동의받기가 어렵고 아직 시민단체 등의 반대가 존재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질병청은 수년째 데이터를 개방 중인데 여러 이유로 건강보험공단이 허락하고 있지 않다”며 “법적 근거 및 데이터에 대한 개방적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기술이라기보다는 문화여건이 아직 조성되지 않은 게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9년부터 현재까지 헬스케어 빅데이터 쇼케이스 사업을 통해 암생존자 200명(대장암 80명·유방암 80명·위암 40명), 일반인 100명, 생활습관 개선자(이상지질혈증) 100명 등 총 400명의 데이터가 수집됐다.
향후 질병청은 9년 간 100만명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현영 부장은 데이터 ‘리턴’을 통해 환자 등 데이터 제공자들을 설득할 계획이다.
그는 “정보 취득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된 정보를 돌려주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며 “유전체 정보 뿐 아니라 내 정보 결과를 돌려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된다. 이 사업을 계기로 유전체 분석 기반 의료서비스 시장을 열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차동철 네이버헬스케어연구소 센터장도 “환자들도 자신들에게 이득이 돌아와야 정보 제공에 동의해준다”고 강조했다.
이어 “데이터 제공이 안전한 진료를 하는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기 전까지는 유전자 검사 효과를 설명해도 ‘왜 당신들에게 제공해야 하는가’라는 근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의견을 보탰다.
얼마나 깊은 데이터? 얼마나 많은 데이터?
빅데이터는 데이터 수집 자체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활용을 위해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세히 모아야 하는지 등도 또한 정부, 산업계, 학계 공통 고민이다.
원성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렉스소프트 대표)는 “질병청에서 공개한 데이터 20만명 중 임상데이터가 붙어있는 건수가 공개된 것은 200건에 불과하다”며 “다양한 연구자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도 공유가 어려우니 쓸만한 자료가 적다”고 진단했다.
이어 “보건의료 데이터는 인공지능 모델링도 어렵고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데이터 파편화 문제가 가장 크다”면서도 “양적 측면 뿐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 데이터를 고도화시키고 산·학 연구자들이 많이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결국 빅데이터를 활용해야 하는 수요자인 산업계 입장에서는 ‘차별화된 데이터를 구축해야 한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의학박사인 손미진 수젠텍 대표는 “국가 빅데이터 사업은 그동안 취지에 집중하기보다는 사업을 일단 진행하는 것에 집중해서 아쉬운 결과가 도출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떤 데이터를 모을지, 기존에 공개된 인체자원은행(바이오뱅크)들도 검증되고 타국의 대규모 바이오뱅크와 어떻게 차별화해 데이터를 모을 것인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며 “일단 모으고 생각해보자는 태도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