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이슬비 기자] 감기약 등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대량 구매해서 마약으로 제조, 유통했다는 소식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등으로 공급·유통·사용 과정이 기록·관리되는 전문의약품과 달리 일반의약품의 대량 구매·오용 등을 관리할 규제할 방안이 마땅히 없어 문제로 지적된다.
문제가 되는 감기약 성분은 ‘슈도에페드린’과 ‘에페드린’ 등이다. 슈도에페드린은 페네틸아민과 암페타민 계열의 교감신경 자극제로,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 마약인 필로폰의 원료물질로도 악용돼왔다.
막힌 코를 뚫는 효과가 있어 비염약 성분으로도 흔히 쓰인다. 에페드린은 암페타민 및 메타암페타민과 구조가 유사, 교감신경을 흥분시킨다.
지난 7월19일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경북 구미의 한 원룸서 필로폰을 제조하던 30대가 구속됐다. 그는 약국과 서울 의약품 도매상으로부터 일반의약품 1000여 통을 구매해 3만명에게 투여 가능한 양인 1kg대, 33억원 어치를 생산했다.
앞서 2019년 서울 도심 호텔에서도 감기약 성분으로 15일 만에 12만명이 투여 가능한 양의 필로폰을 제조하던 외국인 기술자 일당이 적발됐다.
2018년에는 제약사 前직원을 포함한 일당이 서울 신도림 기계공장에서 감기약 7200정으로 필로폰과 외관이 유사한 백색가루를 660g을 제조해 적발됐다. 이는 2만2000명이 투여 가능한 양이다. 이들은 온라인으로 제조법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에는 서울 소재 대학 대학원생들이 실험실에서 감기약과 화학약품을 사용해 430명이 투여 가능한 필로폰을 제조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도 온라인에서 제조법을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식약처는 지난달 24일 슈도에페드린 및 에페드린 함유 일반약 관리방안을 발표해 “약국에서 관련 판매지침을 준수해달라”고 당부했다. 지침에 따르면 해당 제제 일반의약품 중 낱알모음 포장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한 사람에게 최대 4일분만 판매 가능하다.
식약처는 이를 다량으로 구매하거나 소량 포장으로 구입하더라도 반복적으로 구입하거나 목적이 불확실하면 즉시 마약관리과에 신고토록 권고했다.
약업계 등에 따르면 이 같은 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 지난 2013년 이를 해결코자 슈도에페드린 성분이 120mg 등으로 높게 함유된 일반의약품 일부가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됐다.
일반의약품의 해당성분 함량 또한 기존 30mg, 50mg 등에서 5mg, 10mg 등으로 점차 축소·판매됐다. 그러나 적은 함량 성분을 여러 경로를 통해 1000여통씩 다량 구매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약국에서도 해당 성분 제품을 한 고객에게 10개 이상 팔면 약사도 이상하게 생각을 하긴 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를 제재할 수단은 없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해당 사안이 예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며 관련 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관계자는 “마약성분을 함유한 일반의약품 유통 관리 건은 검토 중인 사안이다”며 “약 효과가 낮아 일반의약품으로 유통되고 있는 제품들인데 이미 유통이 허가된 제품을 어떻게 제재할 것인지의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약국에서 대량 판매를 단속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면서도 “자칫 성분명 규제 방향으로 추진되면 이른바 ‘과한 규제’가 될 수 있어 검토·논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관계자는 “약국에서 슈도에페드린성분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때 사용량 등을 기록하고 다량판매를 규제하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식으로 계도 기간을 거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성분명 규제가 시행되면 이는 일반의약품이 전문의약품으로 취급·관리되는 차원의 문제다”며 “이 경우 슈도에페드린이 흔히 쓰이는 기존 비염약은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